가까운 곳에 행사가 있는지 아침부터 꽤 요란하다. 늦은 약속을 잡아놓고 마음을 놓았던가 깜박 잠이 들었던가 보다. 목이 말라 냉장고를 열었더니 마땅히 마실 게 없다. 간단하게 가게에 갈까 생각하다 아니지, 내친김에 마트에 들려 찬거리를 사기로 한다.
과일장사 부부는 오늘도 과일 전을 펼친 모양이다. 그런데 바르게 서 있어야 할 트럭 머리가 옆으로 돌려져 있다. 어라~?! 생각해보니 어젯밤 늦게 귀가한 탓에 주차할 공간을 찾지 못해 포장마차 옆에 주차해 놓은 걸 깜빡했다. 포장마차야 밤에 여는 것이고 또 다른 차들도 여러 대 세워져 있으니 그곳이 마땅하다 생각했었는데 말이다. "어머나, 생각을 못 했네요. 미안합니다." 말하니 아주머니께선 "아이고 아녜요. 저희 주차장도 아닌데 죄송합니다." 한다. "다음에는 다른 곳에 대어 놓을게요." 했더니 아주머니는 "어쩜 말씀도 예쁘게 하실까요. 감사합니다." 미안해하시며 따라오시는 거다. 멀리 떠나올 때까지 두 분은 백미러 속에 계셨다.
정확히 언제인지는 모르겠다. 생각해보면 1년은 족히 넘었을 것이다. 눈보라 치는 겨울에도 그 자리에서 과일장수는 대봉 감과 바나나를 팔았던 것 같다. 머리가 희끗한 중년의 남자는 트럭 위에 감자나 채소 그리고 과일 몇 가지를 팔았다. 가끔은 여자가 같이 있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부인이겠지' 생각만 했었는데 이렇게 말을 섞어보기는 처음이다. 마트는 집에서 10분 정도 거리에 있고 소량 구매가 가능하니까 편리함에 주로 마트를 이용한다. 가끔 마트에서 찬거리를 사들고 종종걸음으로 오게 될 때는 애써 그쪽을 바라보지 않았다. 아마도 괜한 미안함이었을 것이다. 식구가 많다면 한 무더기씩 샀을지도 모르겠지만 혹은 단골이 되면 내 성격에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계속 이용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얄팍한 계산을 했을 것이다. 그런데 오늘은 또 다른 미안함이 든다.
무릇 사람이란 자기 편한 데로 생각하기 마련이어서 마땅한 곳에 펼쳐 놓고 장사를 오랫동안 하다 보면 마치 제 땅인 양 생각되기 마련이라 다른 사람이 밀고 들어오면 못 마땅히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겠다. 착한 그 중년의 부부가 온종일 바람벽에 서서 번 돈으로 큰 청과물 상회를 차릴 날이 오기는 할까... 두 분이 함께 하시니 그나마 마음이 괜찮다. 혼자보다는 둘이 좋다는 것은 외롭지 않기 때문이겠다. 기쁨은 배가 되지만 힘들 때는 서로 의지하게 되기에 일어서는데 그만큼의 시간도 빨라지겠지. 두 분이 행복하셨으면 좋겠다.
이틀 사이 벚꽃은 팝콘처럼 터졌다. "내 나이가 어때서~~ 사랑에 나이가 있나요~♩♪" 낭랑한 꼬마의 노랫소리가 벚꽃 향기에 실려 바람결에 흩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