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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원 May 28. 2016

장례식에 가다



“유턴입니다. 유턴입니다. 유턴입니다~!!” “그만해, 알았으니까!” 나는 그만 버럭 화를 냈다. 쓰잘데 하나 없는 생각 하나가 꼬리에 꼬리를 물더니 그예 고속도로 분기점에서 네비 소리를 놓쳐버리고 남해고속도로로 들어섰는데 네비는 방향을 재설정할 생각이 없는 듯 계속 유턴을 하라고 내게 강한 명령을 하고 있었다. 고속도로에 유턴할 곳이 어디가 있겠는가, 네비의 '유턴하라'는 반복 어조는 사뭇 위협에 가까워서 무섭기까지 했고 나는 스스로가 한심스러워 내뱉었지만 그렇다고 네비를 끌 수도 없었다. 나는 심한 길치인 데다 초행길이었으므로 네비가 낭떠러지로 안내한다 해도 네비 말을 들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지인 아버님 장례식에 다녀왔다. 고인은 83세... 지인의 부친께서는 명망이 높으셨던 분으로 조문객이 꽤 많았다. 자손들을 잘 두셨던지 입구에는 화환이 가득했고 조문객이 끊이질 않았는데 장례식에 사람이 많다는 것은 고인이 생전에 많은 덕을 쌓았음을 입증해주는 것이리라. 부귀도 명예도 살아온 모든 인생을 다 내려놓고 떠나야 하는 그곳을 우리는 저승이라 부른다. 어느 누군들 죽음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사망’이란 말을 듣게 될 때 가장 아깝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한 사람의 죽음으로 인해 그 사람의 ‘지적재산’도 함께 사장되기 때문이다.      



신문에서 가끔 '부고란'을 보게 될 때가 있다. 인간의 수명이 사고사나 질병이 아니라면 사망하는 나이가 대부분 80대 정도가 되더라. - 물론 100세가 넘어도 건강하신 분도 많지만 평균 수명이 그렇더라는-  내게 남아있는 날을 계산해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다.     


사람들은 80세가 넘는 죽음을 '호상'이라고 상주에게 애써 위로의 말을 전한다.  장례식장에서 어떤 이가 연세가 높으신 분들을 빗대어 '산에 있으나 집에 있으나 마찬가지인 사람'이란 농담을 듣고 정말이지 깜짝 놀랐다. 그 자리에 나이 많은 분이 참석한 것 같아 보이진 않았지만 어째서인지 나는 그 말이 참으로 싫었다.  

 

탄생의 순간 나는 나였고 10대를 거쳐 성인이 되고 중년이 된 지금에도 혹은 7~80 이 돼도 나는 나다. 내가 다행히도 건강하게 살아내어 80줄에 들어섰을 때 젊은이들이 '당신은 이제 죽어도 될 나이'라고 한다면 가당키나 한 말인가. 늙어 서러운 나이에 마음도 몸도 늙고 곁에 있는 친구들은 하나같이 떠나는데 가야 할 길을 타인이 굳이 말해주지 않아도 너무 잘 아는 사람이 노인이다. 그런데 산에 있으나 집에 있으나 마찬가지라니, 농담 삼아 말하던 그 사람이 늙어 자신이 젊은이에게 같은 소리를 듣게 된다면 그는 어떤 기분이 들까... 우리는 어느 누구나 예비 노인이다.  

    

노인은 위대한 스토리텔러다. 소설가에 비할 바가 안 되는 산 증인 한 분이 영면하신, 참으로 슬픈 일이다. 종교가 있는 분은 또 다른 세상을 꿈꾸지만 이승에서의 죽음은 세상이 끝남이다. 아무 일 없는 듯 세상은 여전히 잘 돌아갈 것이고 자손들도 곧 까마득히 잊어갈 테니.... 죽음은 그래서 아프다.


'화순 만연사' 아름다운 사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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