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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원 Sep 18. 2016

젊은 부부

   

지진으로 땅이 흔들리던 날, 꼭 해야 할 일을 미루고 미루다 더 이상은 안 될 것 같아 민원 창구에 가서 서류를 떼던 중에 지방세 하나가 연체되어 있다는 말을 들었다. 다른 구청에 전화를 걸고 난 후 은행 자동화 기기에 카드를 넣자 기계는 카드를 계속 밀어내며 은행 창구에 문의하라는 메시지가 떴다. 가지고 있던 통장을 넣고 시도를 해봤지만 마찬가지였다. 생각해보니 지갑형 케이스에 넣은 휴대폰을 열어놓은 체 가방에 넣은 모양, 휴대폰의 전자파가 카드와 통장의 마그네틱을 손상시킨 것 같다. 통장은 창구에서 복구를 했지만 카드는 재발급을 받아야 한다는 말에 스스로에게 화가 났다. 손쉬운 인터넷뱅킹이 있고 폰 결제도 있긴 하지만 PC로 서류를 떼는 것 말고 송금은  잘 안 한다. 믿지 못해서? 송금이 잘못될까 봐? 글쎄다. 송금 방법을 알려면 그다지 어려운 건 아닐 텐데 그 과정이 귀찮다. 

  

추석이라서 딸아이가 집으로 오는 KTX를 탔다는 전화를 받고 나서 시간에 맞춰 역에 나가려고 준비하는데 아파트가 흔들렸다. 뉴스를 보니 남부지방이 지진이 난 모양으로 이제 더 이상 한반도가 안전지대가 아님을 강조하며 누스는 곳곳의 지진 소식을 전한다. 카톡은 불통이었고 딸에게 전화를 하니 기차가 흔들림은 못 느꼈다며 지진 소식에 이어 기차가 연착될 것이라는 방송을 들었다고 했다.    

  

깜깜한 아파트 주차장, 카톡이 한꺼번에 터진다. 아이가 도착할 시간이 남은 것 같아 운전석에 앉아서 톡을 열어보니 카톡 내용 역시 지진 얘기들로 가득하다. 차에 시동을 걸고 좌우를 보며 자동차가 없는 걸 확인하고 오른쪽으로 핸들을 꺾었는데 '우지끈~' 소리에  놀라 살펴보니 글쎄, 바로 옆에 차가 주차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예 차 전조등의 눈알을 빼놓고 쫘~악 긁어버린.... 결국 자동차사고로 그날 하루 정점을 찍고야 만, 정말 힘든 하루였다.  



사각지대라 안보였다고 스스로 위로를 했지만 하루 종일 정신줄을 놓고 다닌 것을 자책하며 망연자실 차를 바라보고 있는데 부부인 듯한 아이를 안은 젊은이 둘이 내게 다가왔다. 아마도 사고를 보았던 모양으로 걱정이 되었던지 “차 앞에 전화번호가 찍혀있을 거예요.” 알려준다. 차 주인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았다. 그러자 “경비실에 말씀하시고 또 전화로 메모를 남겨두시면 전화를 주지 않을까요.” 한다. 참으로 알 수 없는 것은 처음 만난 그 부부가 함께 있으니 마음이 적잖이 놓이고 든든하더란 것이다. 그들은 한참을 기다려준 후에 내가 '고맙다'며 어서 들어가란 말을 듣고 나서야 자리를 떴다.      


기차역에 가서 딸아이를 데리고 왔지만 사고 얘기를 해줄 수가 없었다. 전화는 10시가 넘어서야 왔다. “부재중 전화가 떠서 전화드려요.” 앳된 여자 음성이라서 조금 마음이 놓였는데 혹시 문자를 보셨냐는 말에 보진 못했는데 무슨 일이냐 길래 자초지종을 말했더니 내 목소리에 걱정이 묻어났을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사람이 안 다쳤으니 다행입니다. 제가 내려가 볼게요.” 한다.     


젊은 부부다. 이곳저곳 살피더니 “어쩌나요. 조금 긁혔으면 그냥 놔두시라고 할 텐데 등이 빠져서 등은 수리를 해야 될 것 같아요. 혹시 아시는 카센터가 있으시면 그곳에 맡기세요.”  “내일 당장 차를 쓰셔야 할 텐데 어쩌실까요?” 마음 한 구석에선 ‘택시 값이나 렌터카를 불러야 하겠지?!’ 생각하고 물었는데 세상에나... “그동안은 저희가 버스를 타고 출근을 하겠습니다.” 한다. 참 예쁜 부부다. 나이를 물어보았더니 36세란다.  한참 동안이나 아이를 안고 함께 걱정해준 젊은 부부나 지금 이 부부가 어찌나 예쁘던지 힘들었던 하루가 힘이 되던 날이었다.     


다음날 차를 카센터에 맡기고 버스를 타고 오던 중에 앞에 차사고가 났다. 남의 불행을 나의 위안으로 삼는 것이 얼마나 큰 모순인지... 심난했던 마음을 달래며 가슴을 쓸어내린다. 차 안의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제발이지 많이 다치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하나같이 걱정을 하더라.


살아가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데 일면식도 없던 사람에게서 이렇게 힘이 되기도 하고 또 많은 상처를 받기도 한다. 예쁘고 순수한 젊은이들이 그 사랑을 온전히 보전할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이 두 젊은 부부가 건강하게 열심히 잘 살아내어 행복한 가정을 이루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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