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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원 Sep 23. 2016

정 (情)


잠에서 깨자마자 녀석은 급하게 달린다. 모래상자로 들어가 모래를 파헤치고는 한두 발 앞으로 옮기더니 ‘쉬~’를 하고는 모래로 덮는다. 이 어린 고양이는 어미가 가르쳐 줄 틈도 없었을 텐데 또 그것이 생존의 법칙이라지만 볼 때마다 기특하다. 녀석이 우리 집에 온 지 23일째다.    


  결국 정에 못 이겨 데려왔다. 


사람이나 짐승이나 어린것은 참 예쁘다. 꼬물꼬물~ 보드랍고 따뜻한 생물체인 녀석은 어찌나 곰 살 맞는지 품을 파고들며 마치 껌딱지처럼 군다. 내가 발을 옮길 때는 앞발로 잡아당기거나 걷게 되면 저도 달려가니 행여 밟힐까 봐 조심스레 걷게 되고 거울에 비친 제 얼굴을 보고는 뒤에 무엇이라도 있는 양 확인하려 드니 나를 웃게 만든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정을 떼는 게 참 어려웠다. 그래서 되도록 인연을 짓지 않으려 노력하는 중이다. 특히나 사람과 친한 반려동물은 데려오면 책임과 의무가 따르는 일이라서 많은 고민을 해야 한다. 컴퓨터에 앉아 있으려니 책상 위에 올라와 녀석은 잠이 들었다. 그러고 보면 이 꼬맹이는 내 반경 1m 안에 바짝 붙어있더라. 어쩌랴 이 노릇을...       


아직도 우린 고민한다. 가족 카톡에 아이들은 '아기 고양이는 잘 있냐'는 말과 함께 이제는 엄마가 꼭 키워야 한다는 둥~ 혹은 내가 큰 나비와 잘 지내는 동영상을 올려주기도 하고 ‘엄마가 힘들 테니 못 키울 거면 기억이 각인되기 전에 보내야 상처가 덜하다.’는 둘째의 주장까지...   




8년 전 한여름 장마철에 딱 이만한 크기의 어린 고양이가 한쪽 눈이 먼 채로 큰딸의 품에 안겨 집으로 들어왔었다. 아파트였고 강아지는 좋아했지만 고양이는 딱 질색했던 터였는데 어미를 잃은 어린 생명이 안쓰럽고 가여워 어쩔 수 없이 키우게 된 큰 고양이가 있다. 큰딸은 시집을 간 후에도 제 책임이라며 사료와 모래를 택배로 보내주고 있다.       



동물도 성격은 제각각이라 큰 고양이는 과묵하여 있는지 없는지 모를 정도다. 이 조그마한 녀석이 들어오자 큰 녀석은 후다닥 놀라 도망가기 바빴는데 이 꼬맹이가 큰 고양이를 어찌나 쫓아다니더니 곧 친해져서 둘이 잘 논다는 것이다.   

      



epilogue :  그 후 우리는 녀석을 두 달 정도 더 키웠는데 큰 고양이와 달리 성격이 어찌나 자유롭던지 집안 구석구석을 헤집고 돌아다녔다. 좁은 아파트보다는 자유롭게 풀어주는 것이 나을 것 같아 넓은 정원을 가진 지인께 부탁을 드렸더니 감사하게도 흔쾌히 승낙하셔서 녀석을 보내주었다. 제 수명대로 잘 살아가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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