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겨도 져도 화가나는 기적의 스포츠, 야구.
화 뿐일까. 희로애락의 정수다.
대체 야구가 뭐길래 바쁜 일상 속에서도 나는 야구에서 느끼는 이 모든 감정을 글로 남기려 하는 것일까?
찬찬히 생각해 보았다.
왜 야구를 좋아하게 되었을까?
나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야구 결승전을 보고 야구를 좋아하게 된 베이징 키드다. 학창시절 공부하기 싫어하는 학생이었던 나는 철없게도 학원 선생님께 수업을 일찍 마치고 야구 결승전을 봐야 하지 않겠냐며 노래를 불렀다. 나와 내 친구가 수강생의 전부였던 터라 우리 둘은 한마음 한뜻으로 투쟁했다. 선생님은 꿈쩍도 하지 않고 수업을 하시는 듯하다가 못 이기는 척 일찍 끝내주셨다. 보충 수업을 하겠다고 덧붙이셨지만 나 몰라라 하며 집으로 튀어 갔다.
그래서 좋다고 하며 야구를 보러 갔느냐? 아니다. 당시 나는 야구를 "싫어"했었다. 갑자기 이게 무슨 소리인가 하면, 나는 초등학교 때 수학 문제집에서 야구선수가 등장하는 할푼리 문제만 나오면 틀렸었고 이 때문에 엄마한테 잔뜩 혼이 났었다. 이때의 안 좋은 기억이 몇 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아서 '야구'라는 말만 들으면 나를 향한 것인지 애꿎은 야구를 향하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증오심이 들끓었다. 그렇다 보니 학원을 일찍 마친다고 해도 정말로 야구를 보려고 한 것은 아니고 잠이나 자야지 했다.
그런데 신이 나서 집에 왔더니 아무도 없을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엄마가 계셨다. 나는 일찍 마쳐달라고 투쟁했던 나의 행위는 축소하고 얼마나 중요했으면 선생님이 빨리 마쳐주겠냐고 했다. 그러나 엄마의 표정은 굳어만 갔고, 다급하게 보충수업 이야기를 덧붙이고서야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선생님은 보충 수업을 왜 해주시나 했더니 이런 상황을 예견하셨나 보다.
상황이 이렇게 됐는데 야구를 안 볼 수가 없었다. 나는 투수가 공을 던진다, 타자가 공을 친다 정도만 알았기 때문에 중간중간 엄마의 설명을 들으며 시청했다. 나름 흥미진진하게 보다보니 경기는 흘러 흘러 드디어 9회 말. 당시 나는 설명을 들어도 상황을 100% 제대로 이해하진 못했다. 그래서 대한민국이 3:2로 이기고 있음에도 우리나라 선수들의 분위기는 싸늘하고, 상대팀인 쿠바는 양손에 물병을 들고 당장이라도 뿌릴 듯 축제 분위기인 모습이 의아했다. 아마 그때가 1사 만루 상황이었을 것이다. 당시 심판이 스트라이크를 줄만한 공에도 볼로 판정해서 주자가 쌓여갔고, 결국엔 만루 상황까지 온 것이다. 상대의 안타 하나에 역전패까지 당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자 포수 강민호 선수가 참다못해 심판에게 항의를 했는데, 심판은 강민호 선수를 퇴장시켜버렸다.
1회부터 던지던 류현진 선수는 마운드에서 내려갔고 정대현 투수가 올라왔다. 나를 다소 안심시키는 여유로운 표정의 정대현 선수가 2스트라이크를 빠르게 잡았다. 그리고 긴장 속에서 제 3구를 던졌고 쿠바의 구리엘 선수가 그 공을 쳤다. 천만다행으로 그 공은 병살타가 되었고 우리나라 선수들은 일제히 마운드로 달려가서 얼싸안고 기뻐했다. 야구를 모르는 나에게도 전해진 이날의 열기와 승리에 매료되어 나는 야구 팬이 되었다.
그리고 야구 팬이라면 응원하는 팀이 있기 마련인데, '태어나 보니 대구였다'라는 것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필요 없을 것 같다. 나에게 있어서 야구팀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야구 흥행에 자극받은 글쓰기
2024년 프로야구는 6월 15일 500만 관중을 돌파하며 흥행 가도를 달리고 있다. 일상에서도 이것을 체감할 수 있는데, 주변에서 야구 이야기가 많이 들린다.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도, 카페에서 수다를 떨 때도 옆 테이블에서 야구 이야기하는 것을 심심찮게 들을 수 있다. 그리고 하루는 지하철에서 여고생 세명이 특정 선수의 타격폼을 주제로 대화를 나누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이런 야구 흥행이 내 열정을 더 자극했다.
그리고 내가 애정 하는 유튜브 채널 중 <야구잡썰>이 있는데, '내 팀은 내가 깐다'라는 콘셉트로 몇몇 구단의 팬들이 패널로 나와서 본인이 응원하는 팀의 일주일간 경기 내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메인 콘텐츠이다. 이번에 시즌을 시작하는 영상에서 패널분들 각자의 야구 이야기에 대한 글을 모아 책을 내셨다고 해서 구매해서 읽었는데, 나도 나만의 야구 이야기를 쓰고 싶어졌다. 더 자세히는 내 인생에서 야구의 의미와 나의 희로애락을 기록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내 글을 보고 공감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여기에 더해서 내 직업이 숫자를 다루는 만큼, 숫자의 스포츠인 야구를 글로 풀어보는 것도 해보고 싶었다. 그러던 중 직장동료 김 작가님(우리끼리의 별명)이 브런치에 글을 쓰신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이참에 나도 글을 본격적으로 써보게 되었다.
'덕업일치'라는거 나도 한 번 해보자.
앞서 숫자를 다루는 일을 한다던 내 직업은 데이터 분석가다. 그렇다고 야구를 볼 때 중계에서 보여주는 것 이상으로 데이터를 신경 써서 보는 것은 아니었다. 일과 일상을 분리하고 싶었달까. 하지만 어느샌가 KBO stats와 스탯티즈 같은 통계 사이트를 탐독하고 있었다. 팬들이 분석해서 업로드한 기록들을 보며 흥미로워하고 진짜인지 검증도 해보고 세이버매트릭스 책을 사고 데이터를 분석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통계 사이트에서 클릭클릭해서 복사 붙여넣기 하는 작업에 답답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나는 코드나 쿼리에 익숙한 사람이라 아예 통계 사이트를 크롤링 해서 나만의 DB를 구축하고, 필요할 때마다 원하는 형태로 보고 싶었다. 하지만 해야지 해야지 해놓고선 미뤄둔 지 몇 년째가 되었다. 그러다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일상적인 야구 이야기에 더해서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으로도 글로 쓰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야구를 보는 나의 일상에 대한 글과 야구 데이터 분석에 대한 글을 9:1의 비율로 생각하고 있다. 데이터 분석 글은 기획부터 결과를 정리하기까지 생각보다 오래 걸리고 에너지가 많이 들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작업이 익숙해지면 조금씩 야구 분석의 비율을 높여 갈 생각이다.
덕업일치라는거, 나도 한 번 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