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윤경 Mar 17. 2016

김창주라는 남자(1939.5.2~) 9

핫코다산에서 찾은 동심 (일본 아오모리 여행기 3)

 아오모리 명상 여행 셋째 날, 1,584m 높이 핫코다산 정상에 가기 위해 케이블카에 올랐다.

 100명이 한 번에 탈 수 있다는 케이블카에는 50명 남짓한 우리 일행 외에도 스키어들로 가득했다. 이 높은 산에까지 스키를 즐기러 오는 사람들을 보니 용감하고 멋있어 보였다. 이곳은 3-4월까지 자연설이 내리기 때문에 자연이 만들어준 최고의 스키장이라 했다. 정상에 내린 우리는 긴 장화로 갈아 신고 산으로 올라갔다. 깊이 쌓인 눈에 발이 푹푹 빠졌다. 몸은 무겁고 무릎은 좋지 않은 나는 몸이 눈 속으로 가라앉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딸의 손을 잡고 잠시 걸어봤으나 멀리 걷는 건 불가능했다.

 하늘과 닿을 듯이 눈이 쌓여가는 산상에서의 설경은 또 다른 절경이었다. 다른 생각을 할 틈이 없었다. 그저 “야, 좋다!” “정말 아름답다!” 탄성만 내지를 뿐이었다. 함께 한 일행들 모두 눈 천지에 뛰어들어 소리 지르고 뒹굴었다. 발은 깊은 눈 속으로 빠져들고 눈보라가 몰아쳐 앞이 잘 보이지 않아도 자연이 만들어준 놀이터에서 우리는 동심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이 곳에 케이블카가 없었다면 내가 올라올 수 있었을까? 아름다운 자연을 만인이 즐길 수 있도록 배려하는 개방된 국민들 의식과 선진 된 시설에 감탄했다. 나처럼 무릎이 안 좋은 사람, 노약자도 하늘이 이룬 자연의 경치를 만끽할 수 있으니 말이다. 좋은 것을 좋게 즐길 수 있도록 해 놓은 배려가 고마웠다. 

 설악산엔 아직 케이블카가 없다. 젊은 시절 여러 차례 올랐던 산을 못 가본지 꽤 오래되었다. 앞으로도 갈 수 없을 듯하다. 우리 국민 문화 수준도 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을 텐데, 이 곳에 와서 보니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는 고집스러운 이들에 대한 안타까움이 더욱 커졌다. 

 마음 같아서는 하얀 눈 속에서 나도 하얗게 변해 깨끗해질 때까지 머물러 있고 싶었다. 불평과 갈등, 원망과 저주, 질투와 시기, 나를 불행케 하는 요소들을 이 눈 속에 다 파묻어 버리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케이블카에 몸을 실었다. 침착한 듯 보이나 우울하고, 평온한 듯 있으나 무표정하고, 과묵한 채 하나 억지로 입 다물고 지내왔던 나 혼자만의 세계 역시 그곳에 다 털어내 버렸다. 명쾌하고 즐겁게 그리고 나로 인해 함께 한 이들이 즐거워하는 유쾌한 내가 되고 싶은 마음으로!


매거진의 이전글 김창주라는 남자(1939.5.2~) 8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