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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후 네 시 Oct 27. 2015

플레이 리스트 #3

오래전 그날(with 이적) by. 윤종신

  35사단 106연대 2 대대 작전과 상병 전지훈. 1년 전 늦봄의 나였다. 군인이었고 다른 군인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집에서 출퇴근을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상근이었다.


  보통 6시에 일어나 준비하고 161번 버스를 타고 출근했다가 17시가 되면 161번 버스를 타고 퇴근했다. 하지만 그날은 이상하게도 버스가 오지 않았다. 배차간격은 45분. 평소 같으면 느긋하게 음악이나 들으며 기다렸겠지만 오늘은 대구에 사는 여자친구가 오는 날이었다. 시외버스터미널로 마중 나가겠다고 했는데  약속시 금방이었다. 저번에 말다툼 후에 처음 얼굴 보고 만나는 거라 지체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귀찮더라도 다른 버스를 타고 환승하기로 했다. 대학가로 향하는 970번 버스를 탔다. 그리고 빨간 목도리를 한 '그녀'를 보았다.


  조금 더 먼 과거로 돌아가 고3 10월 말쯤이었다. 운 좋게도 특례로 합격되어 교내에서 유일하게 정시니 수시니 하는 것과는 상관없는 학생이 되어있을 때다.

  "조퇴할게요."

  담임 선생님이 끄덕인다. 야자 때 애들 모아서 게임 이야기나하는 놈이 학교에 남아있어 봐야 뭘 하겠나-라고 말하는 눈을 뒤로 하고 쾌재를 부르며 학교를 나왔다. 정류장에 앉아서 어떤 버스를 탈지 고민했다. 161번 버스는 집까지 직통이지만 배차간격이 길어 오려면 아직 멀었다. 900번대 버스는 자주 오지만 대학가에서 환승을 해야 했다.


  결국 집에 가서 게임을 해야 한단 급한 맘에  970번 버스를 탔고 환승을 위해 대학가에서 내렸다. 그리고 그때 정류장에 서있는 '그녀'를 보았다. 아직 목도리를 할 만큼 춥지는 않았지만 새빨간 목도리를 두른 대학생으로 보이는 여자였다. 첫눈에 반한다는 것이 그런 걸까? 연예인같이 빼어난 외모도 도무지 왜 반했는지도 이유는 모르겠는데 그냥 말 그대로 반해버렸다. 무엇 때문에 반했는지 생각하려는 찰나, 내가 방금 내린 그 버스는 '그녀'를 태우고 가버렸다.


  3주. '그녀'를 만나기 위해서 3주 동안 매일 조퇴를 하고 970번 버스를 탔다. 하지만 결국 '그녀'를 만날 수는 없었다.


  그런 '그녀'가 저 앞에 앉아있었다. 나는 버스의 맨 뒷자리에, 그녀는 정면 맨 앞자리에. 저 목도리와 뒷모습은 그때의 '그녀'임이 확실했다. 얼굴을 확인하지 않아서 모르지만 그냥 그런 느낌이 들었다. 기분이 묘했다. 나는 여자친구와 싸운 후 그녀를 만나러 가고, 내가 첫 눈에 반해버린 '그녀'가 여자친구를 만나는 그 길에 같이 가고 있었다. '그녀'가 나보다 먼저 내리거나 뒤를 잠시라도 돌아봤으면 확인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러지 않았다. 나는 먼저 내렸고 여자친구를 만났다.


  이제 와서 그때 말을 걸어본다거나 얼굴을 확인해보지 않았던 것에 후회나 미련이 남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그 날 여자친구와 잘 화해하고 서로를 더 이해하게 되었고 그 이후로 싸워본 적이 없이 잘 사귀고 있으니까. 다 어느 버스를 탄 날에 빨간 목도리를 한 여자들을 보면 문득 떠오른다.


  과연 내가 봤던 그 날의 그녀는 '그녀'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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