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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우성 변호사 Mar 10. 2024

(9) 르네 마그리트, 그림 한 장으로 묻다

[색채 너머로(Beyond the Colors)] (9) 르네 마그리트, 그림 한 장으로 묻다: 우리는 무엇을 보는가?


1928년, 벨기에의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는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는 도발적인 제목의 그림을 선보였다. 이 그림은 사실적으로 묘사된 파이프 아래에 "Ceci n'est pas une pipe"(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는 문구가 쓰인, 언뜻 보기에는 모순된 작품이었다. 


처음에는 파리의 한 갤러리에서 전시되었던 이 그림은, 당시에는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몇 년 후, 마그리트의 친구이자 시인인 폴 누제가 이 그림에 대한 에세이를 썼고, 이를 계기로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는 미술계에서 조금씩 화제가 되기 시작했다.


1960년대에 이르러, 이 작품은 새로운 조명을 받게 된다. 프랑스의 저명한 철학자 미셸 푸코가 마그리트의 이 그림에 대해 깊이 있는 분석을 시도한 것이다. 푸코는 "이것은 단순한 파이프의 그림이 아니라, 파이프의 그림과 텍스트 사이의 관계를 탐구하는 작품"이라고 평하며, 이 작품이 표현과 실재 사이의 복잡한 관계에 대한 중요한 질문을 제기한다고 주장했다. 푸코의 해석은 마그리트의 작품에 새로운 철학적 깊이를 부여했고, 이를 계기로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는 현대 미술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마그리트의 이 작품은 마치 요리사가 음식 사진을 보여주면서 "이건 먹을 수 없어요"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우리는 종종 이미지와 실제 사물을 혼동하지만, 마그리트는 이 작품을 통해 둘 사이의 중요한 차이를 강조한다. 그의 그림은 마치 우리에게 "이 그림 속 파이프로 담배를 피울 수 있나요?"라고 되묻는 것 같다.


이 작품은 단순히 그림 속 파이프와 진짜 파이프의 차이를 지적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20세기 언어철학의 거장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은 "언어는 세계를 직접 표현하지 않고, 우리가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을 조직한다"고 말했다. 마그리트의 작품은 이와 유사하게, 이미지가 현실을 직접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현실을 인식하는 방식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흔히 "백 번 듣는 것보다 한 번 보는 것이 낫다"라는 속담을 통해, 직접 보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러나 마그리트의 작품은 이러한 통념에 도전한다.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는 그의 선언은, 우리가 보는 것이 항상 실재를 그대로 반영하는 것은 아니며, 이미지는 종종 우리의 인식을 오도할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이는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를 연상시킨다. 플라톤은 우리가 보는 세계는 이데아의 그림자일 뿐, 진정한 실재에 대한 직접적인 인식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마찬가지로, 마그리트의 파이프 그림은 실제 파이프의 그림자와 같다. 우리는 그것을 파이프로 인식하지만, 그것은 진정한 파이프가 아니다.


이는 또한 간디의 유명한 말, "당신의 믿음은 당신의 생각이 되고, 당신의 생각은 당신의 말이 되고, 당신의 말은 당신의 행동이 된다"를 떠오르게 한다. 우리가 어떤 이미지를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이는지가, 결국 우리의 행동과 현실 인식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마그리트의 작품은 단순히 시각적 환영을 폭로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그것은 우리의 인식 자체에 대한 성찰을 요구한다. 우리가 보고 믿는 것이 과연 얼마나 실재에 가까운지, 그리고 우리의 해석과 판단이 얼마나 주관적인지를 돌아보게 만든다. 이것은 단순히 예술의 영역을 넘어, 우리의 일상적 인식과 사고방식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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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김상욱, 남경숙 및 외 6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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