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리보다 먼저 온 것들

by 조우성 변호사

논리보다 먼저 온 것들


서른 살 때, 나는 완벽한 논리로 모든 것을 설득할 수 있다고 믿었다. 회의실에서, 법정에서, 일상의 대화 속에서. 옳은 말, 명확한 근거, 흠 없는 구조. 그것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순간마다 막혔다. 상대의 눈빛이 흐려졌다.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마음은 닫혀 있었다.


마음은 논리의 손님이 아니었다


고대 중국의 이야기가 있다. 지자 이윤이라는 현인이 있었는데, 그는 천하를 다스릴 지혜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 지혜를 받아들일 군주가 필요했다. 탕왕을 설득하기 위해 이윤이 택한 방법은 놀랍게도 논리가 아니었다. 그는 솥과 도마를 들었다. 요리 도구였다. 70번의 논리적 말보다 한 사람의 입맛을 사로잡는 쪽을 선택한 것이다. 탕왕은 이윤의 음식을 맛보며 "이 자는 내 욕망을 이해하는구나. 내 마음을 아는구나"라고 느꼈다. 비로소 귀를 열었다. 지혜는 그 다음이었다. 마음이 먼저 열린 후였다.

우리는 여기서 착각한다. 설득이 정보 전달이라고. 상대를 움직이는 것이 근거의 합리성이라고. 하지만 사람은 기계가 아니다. 누구나 무언가에 설득되기 전에 먼저 그 사람을 '좋아해야' 한다. 차가운 이성 너머에 따뜻한 호감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이윤의 솥이 가진 힘이었다. 도구가 아니라 신호였다. "나는 당신을 안다"는 신호. "나는 당신의 입맛을 먼저 생각했다"는 신호.


요리 전에 온 것


서른 때의 나는 본요리만 차렸다. 완벽한 구성, 훌륭한 맛. 하지만 손님의 입은 이미 닫혀 있었다. 음식이 식을 때까지 들어가지 않았다.

삶이 조금 길어지면서 알게 된 것이 있다. 먼저 내놓을 것들이 있다는 것. 따뜻한 차 한 잔. 상대의 말을 끝까지 듣는 침묵. 진심 어린 칭찬 한 마디. 이 모든 것이 애피타이저다. 본요리가 아니라. 아니, 어떤 의미에서는 이것들이 본요리고 우리의 논리는 '덤'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의견을 나누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우리는 호감을 나누고 있는 것이다.

직장에서, 가족 안에서, 사람을 만나는 모든 자리에서 이것이 작동한다. AI가 정보를 완벽하게 전달해주는 시대라고 해서 인간관계의 온도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 역이다. 수백 개의 채널에서 정보가 흘러나올 때, 사람들은 더욱 갈증난다. 누군가의 따뜻한 관심을. 나를 구체적으로 본 누군가의 시선을.


지금 어떤 솥이 피워 올리는가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번거로운 것, 단순한 것들을 다시 차리는 것이다. 상대의 이름을 정확히 부르는 것. 그의 말 속에 숨은 불안을 먼저 헤아리는 것. 나의 의견을 주장하기 전에 그의 생각을 먼저 묻는 것. 이것들이 이윤의 솥이었다.

요즘은 모두가 바쁘다. 솥을 걸고 불을 피우고 음식이 익을 때까지 기다리는 일이 사치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서른의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이 있다. 상대의 마음은 결코 빠르게 열리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무언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있다면, 그 길은 항상 '호감'이라는 주방을 지나간다는 것.

당신의 관계 속에서 지금, 어떤 솥이 어떤 향기를 피워 올리고 있는가. 그것이 충분히 따뜻한가. 충분히 천천한가. 논리는 그 다음이다. 먼저는 호감이다. / 우리가 사람을 설득한다는 착각을 내려놓을 때, 비로소 관계가 시작된다. / 이윤의 솥은 비어있지 않았다. 그것을 아는 마음이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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