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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기문 Sep 14. 2015

84년생의 대한민국을 시작하며

머리말

나는 조지 오웰의 동명 소설과 같은 해인 ‘1984년, 에 태어났다.


그 시절, 대한민국은 두 번째 군사정권이라는 가혹한 겨울을 나고 있었지만, 1980년의 5.18 민주화 운동을 씨앗 삼아 싹 틔운 민주의식은 봄의 태동을 만들어냈다. 해방 직후 35달러에 불과했던 1인당 국민소득은 10,000달러를 넘어섰다. 비록 정치적 발전과 경제적 발전의 속도가 일치하지 않았지만 대한민국의 발걸음은 긍정을 향하고 있었다.


분명, 우리가 태어난 시절은 조지 오웰이 1949년에 발표한 소설 ‘1984년’보다는 밝은 시절이었다. 흑백에서 빨주노초파람보로 채색되어 가던 시대였다. 1980년대의 대한민국은 불안이 아닌 안정이라는 토대 위에, 절망이 아닌 희망을 주춧돌 삼아, 시대를 건설해 나갔다. 그리하여 한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환희 위에서 태어나고 성장했던 우리는, 반만년 우리 역사에서 가장 따스한 봄날의 주역이 되기에 충분할 터였다.


시대에 빛깔이 있다면 당신과 나의 유년기인 90년대 초반과 중반은 황금빛이었다. 서태지와 아이들을 필두로 대한민국의 대중문화는 르네상스를 맞이했고, 문민정부가 들어선 후 군사 정권은 청산되었다. IMF시대가 왔지만 이 나라가 가진 특유의 저력으로 이겨냈다. 21세기를 맞이하고 80년대 생들은 자연스레  대한민국 신세기 중흥의 기수가 되어야 했다.


하지만 이제 그 믿음은 바랜지 오래, 지금의 시대는 조지 오웰이 쓴 ‘1984년’의 색깔을 닮아있다. 기적 위에서 태어나고 성장한 세대는 기적이 아닌 좌절을 마주하고 있다. 포기하고 또 포기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껍데기만 남아 버렸다. 박제가 되어버린 세대, 우리는 어떻게 하면 온기를 되찾아, 이 얼어붙은 시대의 서리를 녹여낼 수 있을까?


10년 후, 20년 후에도 이 아픔을 겪지 않고 다음 세대에 물려주지 않으려면, 우리는 진정한 어른으로 성장할 필요가 있다. 2008년 김난도 교수가 집필한 ‘아프니까 청춘이다’는 100만 부를 넘어서는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분명 김난도, 그의 책은 이 시대의 아픔에 큰 위로가 되었음이 분명하다. 그렇지만 광휘에서 태어난 당신과 내가 어찌하여, 이 회색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지에 대한 통쾌한 설명이 없다. 그저 위로만 있을 뿐이었다.


아프기 때문에 타인의 따스한 위로가 필요하지만, 다른 세대에게 모든 것을 전가해서는 안된다. 스스로 아픔의 원인을 찾아내고 치유할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2030 세대 또한 사회 구성원의 일원이기 때문이다. 다른 세대와 이 사회를 맞들지 못하고, 이야기하지 못한다면 ‘위로와 격려만 받아야 할 존재’, 즉 아이의 모습을 벗어날 수 없다. 이제는 다른 세대의 시선이 아닌 우리 스스로가 세상을 마주 보아야 한다. 무엇 때문에 이 시대가 아픈지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우리가 40이 되고 50이 되었을 때, 더 나은 대한민국의 풍경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이제는 삶의 치열함에 치여 중요한 것을 보지 못하는 무주의 맹시를 걷어내고, 침묵을 깨야한다.


나는 당신과 같은 사회 구성원의 일원으로서, 1984년생으로서, 대한민국을 이야기하는 21개의 화두를 준비했다. 이 글이 나와 같은 세대인 당신과의 대화가 되고 , 내가 살아온  서른두 해에 대한 고백이 되고, 시대라는 대기에서의 호흡이 되길 바라마지 않는다. 덧붙여서, 이 글이 더 많은 이들이 우리의 시대를  이야기할 수 있게 하는, 시작의 불씨가 되었으면 한다. 그리고 그 불씨에, 미약하지만 온기가 담긴 숨결을 불어 넣을 수 있다면 나는 흡족해할 것이다.


‘한 덩어리의 ‘귀지’를 갖기 보다는 차라리 4주간의 치료를 요하는 중이염을 앓고 싶다.'라는 박태원 작,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에 나오는 구절을 인용해 말하고 싶다.



나는 우리의 침묵이라는 귀지를 갖기 보다는 작문과 담론이라는 기분 좋은 중이염을 앓고 싶다.


어느덧 안중근 의사의 나이를 앞질러버린  2015년 가을의 문턱에서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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