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_무라카미 하루키
이제 시작인 건가. 도무지 잠을 잘 수가 없다. 바람 하나 불지 않고 온 몸은 끈적거려 여간해선 잠이 오지 않는다. 왜 우리집엔 에어컨이 없는가!선풍기가 최선인가! 이게 사는 건가!하고 신세 한탄하다 겨우 잠이 들면, 그렇게 모기가 찾아와 또 한 번 잠을 방해한다.
이쯤 되니 잠을 자지않는 게 낫겠다 싶다. 낮도 밤도 괴로울 바에 잠을 포기하고, 조금이라도 시원한 밤에 밖으로 나가 무엇이든 하는 편이 나을 것 같다. '모두가 잠이 들어 나를 신경쓰지 않고, 나도 남들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는 그런 밤'이라면 더할 나위 없을 것 같다.'
+ 잠_무라카미 하루키
잠을 자지 않는 다는 것은 곧 고통이다. 잠은 기본적인 욕구이자 충족되지 않으면 죽음에 이르게 하는 생명 유지의 요소이다. 하지만 그녀는 잠을 자지 않는다. 억지로 잠을 피하는 것이 아닌, 자연스레 잠을 자지 않게 되었다. 그녀에게 잠은 생명 유지 수단이 아닌 일종의 죽음이었고, 그 죽음의 시간이 종료되었을 때 숨을 쉬고 있는 그녀의 일상은 또 다른 죽음의 연속이었다.
잠을 자지 않고 깨어 있는 동안의, 그러니까 다른 사람들의 패턴에 따른 행동을 취하지 않고 온전히 자신으로 남는 동안의 그녀는 살아 있었고, 살아 있음으로 해서 잠은 필요치 않았다.
잠 따위는 필요 없어, 라고 나는 생각했다. 잠을 못 자는 것 때문에 내가 '존재 기반'을 잃는다고 해도, 설령 미쳐버린다 해도, 그래도 좋아. 상관없어.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