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민영 Apr 19. 2017

어느 날 400억 원의 빚을 진 남자

나의 아버지, 그의 달리기를 응원하며

아버지의 죽음으로 갑작스럽게 400억의 빚을 지게 된 사람.  빚더미에서 벗어나기 위해 허덕이는 작가의 이야기를 읽으며, 나는 자꾸만 나의 아버지가 떠올랐다.


플라스틱 제품을 만들어내던 아버지가 '빚'의 굴레에 갇히기 시작한 건 2007년 여름이었다. 어쩌면 훨씬 이전, 내가 모르는 시간들이 숨겨져 있을지도 모르지만. 당시 아버지를 포함해 세 명 정도가 동업을 하고 있었는데, 회사가 어려워지자 다들 발을 빼기에 급급했다고 한다. 그중 허울뿐인 '대표'라는 직함을 가지고 있던 아버지는 내가 모든 책임을 지겠노라며 회사의 모든 부채를 떠 앉았다.


가장이었던 아버지는 한순간에 일자리를 잃었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명과도 같은 신용을 잃었다. 당시 대학생이었던 나는 학자금 대출과 이런저런 아르바이트로 서울 유학 생활을 이어갔고, 엄마는 어느 식당의 '주방 이모'가 되었다. 아버지가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우리는 희생자적 선택을 한 아버지를 원망했다.


아버지는 너도나도 한다는 파산신고도 하지 않았다. 시간이 걸려도 빚을 갚겠노라 선언하셨다. 그런 사람이다. 바람에 부러질망정, 흔들리지는 않겠다는 사람.


10년 가까운 시간이 지나고 나의 아버지는 마이너스 인생에서 원점으로 돌아왔다. 이미 남들은 아파트를 몇 채씩 가지고, 노후 준비를 하고, 은퇴할 나이다. 그런데 나의 아버지는 이제야 다시 출발선에 섰다. 자기계발서라고 생각했던 이 책을 읽으며 내가 울컥했던 이유는 여전히 열심히 달려야만 하는 내 아비가 아른거렸기 때문이다. 그는 거대한 자본주의 대한민국에서 트로피를 손에 거머쥐지는 못할 가능성이 크다. 무척 열심히 달리지만, 분명 넘어진 사람이 있으면 일으켜주고 뛰지 못하는 사람이 있으면 업어줄 테니까.


'돈 잘 버는 아빠가 최고!'인 시절이 아니던가. 그런 의미에서 아버지는 최고 일리 없다. 그런데, 나는 알고 있다. 나의 아버지 같은 사람이 많아지면, 이 곳은 좀 더 나은 곳이 될 거라는 사실을.



'도저히 더는 못 하겠어. 이제 끝이야. 죽는 편이 나아.' 이런 생각이 들더라도 딱 한 번만 더 일어서 보세요.
 나는 '아침이 오지 않는 밤은 없다.'는 말을 굳게 믿습니다.


아버지는 극단적인 선택을 결심한 적이 있다고 고백했다. 다행이다. 살아주셔서.

아직 아침은 아니지만, 저 멀리 어렴풋이 동이 터 오르고 있는 것 같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