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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주미 Oct 04. 2021

<스트릿 우먼 파이터>, 이토록 다양한 여성 리더십

스우파 보면서도 난 자꾸 일과 조직에 대해 생각했어

<스트릿 우먼 파이터>란 프로그램이 세상에 나와줘서 너무 좋다. 아이돌 무대만 자주 보이던 방송에서 이렇게 외모도, 성격도, 댄스 스타일도 모두 다른 수십명의 댄서들을 볼 수 있다는 게 이미 하나의 큰 메시지처럼 느껴져서다. 내가 특히 더 좋아하는 부분은, 각 팀이 미션 때마다 어떻게 해야 (저지들에게) 잘 보일까, (대중들에게) 잘 팔릴까를 고민하다가도, 결국 '우리가 잘 하는 걸 하자!', '우리가 하고 싶은 걸 하자!'의 결론으로 돌아가게 되는 모습이다. 이렇게 재미있는데, 다양성과 자기다움까지 돌아보게 한다고요? 너무 짜릿하잖아...


특히 이번 5화 방송은 리더십과 팀워크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각 팀의 리더들은, 단단한 실력이 뒷받침 된다는 공통점을 제외하면, 정말 서로 다른 리더십 스타일을 보여준다. 나의 평소 리더십 스타일을 닮은 사람, 내가 과거에 보인 리더십 스타일을 닮은 사람, 나에겐 부족한 리더십 스타일을 가지고 있어 부러운 사람, 내가 개인적으로 가장 희망하는 리더십을 구현하고 있는 사람 등등... 난 여성의 리더십일수록 선악의 이분법적 구도로 몰고가기 보다 최대한 다양한 모델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게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예능 프로이지만 스우파가 그것까지 해버렸다!


그래서 또, 예능 보다가 일과 조직에 대해 떠오른 이야기를 쓰게 됐다. 스우파에서 볼 수 있었던 대표적인 리더십의 유형, 그리고 그 리더십이 각각 고유한 특징을 가진 팀 구성원들과 어떻게 상호작용 하는지 생각해봤다.



01 완벽한 허니제이 언니에게 필요한 두 가지: 위임, 그리고 든든한 중간관리자


리더의 말
"거기를 내가 뭔가 (너희들에게) 믿고 맡기기엔… 너무 중요한 부분이야."
"늘 혼자 하는 게 익숙했거든요. 그래서 같이 하는 방법을 잘 몰랐던 것도 있어요."  


팀원의 말

"팀원들 각자의 색깔을 못 보여주는 건 아쉬워요."

"저희가 쌤한테 직접 말씀 드리기가 솔직히 어렵잖아요."  



다양한 리더십 유형이라고 말하긴 했지만, 홀리뱅의 리더십은 개인적으로 아쉬운 부분이 보였다. 4회차에서 보여진 모습도 그렇고, 허니제이님은 아직 어떤 리더십을 보여야 할지 갈팡질팡하고 있는 듯 했다. 그리고 이건 혼자만의 실력으로 승승장구하며 리더의 자리에 오른 사람이, 이젠 더 크게 바라보며 팀을 꾸려야 하는 위치가 되었을 때 흔히 마주하는 혼란이기도 하다.

출처: 네이버 TV 스트릿 우먼 파이터 영상 캡처 https://tv.naver.com/v/22669530/list/740608


일잘러로 인정 받아 빠르게 승진한 초보 팀장이 있다. 팀원들보다 할 수 있는 게 많고, 더 빠르게 더 좋은 결과물을 낸다. 그러다 보니 팀에서 이뤄지는 모든 일은 자신의 손을 거쳐야 마음이 놓인다. 자신의 컨펌을 거쳐야 할 일들이 줄줄이 쌓인다. 한편, 팀장은 일에 허덕이는데 팀원들은 팀장의 다음 지시를 하염없이 기다려야 한다.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없는데 퇴근 시간만 늦어진다. 많은 시간이 지나도 팀원들에겐 주도적으로 일해 볼 수 있는 경험이 별로 없다. 결과적으로 일은 잘 마무리 되는 것 같은데 자신은 성장하는 것 같지 않다. 점점 일하기 싫어진다. 이 모습을 본 팀장은 답답해하며 더 많은 일을 자신이 또 가져가게 된다. 다시 도돌이표.


하지만 우린 인정해야 한다. 이건 아주 많은 초보 팀장이 겪었거나, 겪게 될 흔한 시나리오라는 걸. 그래도 유난히 안타까웠던 부분이 있다면 허니제이가 팀원들에게 직접 '믿고 맡기기가 어렵다'는 표현을 해버린 것. 팀원들 역시도 리더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계속 불만의 목소리를 흘리고 있었다. 홀리뱅의 팀원들은 아마 "그래도 우리 리더가 실력은 있고 거기서 배워갈 건 있으니까" 라는 이유로 참고 있는 게 아닐까? 하지만 그게 언제까지 가능할까?


이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허니제이에게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은 '위임'의 연습이다. 일정 부분이라도 팀원들에게 권한을 줘서 믿고 맡겨 보고, 그로 인해 저지 평가든 대중 평가든 좋은 결과를 확인함으로써 ‘성공적인 위임'을 경험하는 게 필요해 보인다. 그리고 말만 쉬운 이 위임이 정말로 쉬워지려면, 조직 내에 어느 정도 믿고 맡길 수 있는 중간 관리자가 있는 게 큰 도움이 된다. 스우파 버전으로는 '세컨드 계급' 이라 할 수 있는 중간 관리자. 홀리뱅에서는 제인이 그 위치이려나? 그래서 나는 제인님이 다른 팀원들과 함께 리더에 대한 불만을 얘기하기 보다는, 좀 더 언니 편에 서서 팀원과 리더 간의 관계를 부드럽게 만들어주는 역할을 해주면 좋았을텐데 하고 생각한다. 충분히 존재감 있는 실력있는 댄서니까 가능할텐데, 아직 허니제이의 신뢰를 얻었다는 모습이 잘 보이지 않아서 아쉽다.



02 모니카 언니는 처음부터 끝까지 찐이다


리더의 말
"왜 직업에 대한 아이덴티티를 생각 못 하는거지?!(빠직)"

"웃으면서 연습하고 좋은 결과물을 내놓는 리더분들도 분명히 많이 계시는데 저는 그런 타입이 아니다 보니까…"


팀원의 말

"누군가를 통솔해서 함께 무언가를 한다는 자체가, 뒤에 숨은 리더의 미친듯한 노력이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우리  아무도 갖지 못한 걸 가졌어요. 바로 모니카"



이번 5화에서 팀원으로서의 립제이가 얼마나 큰 역할을 하는지도 깨닫게 됐다. 단순히 홀리뱅과 둘만 놓고 비교해 봤을 때, 비슷하게 실력 좋고 비슷하게 캐릭터 강한 리더들인데도 왜 모니카가 이끄는 프라우드먼의 리더십이 더 안정적으로 보일까? 나는 그게 모니카가 완벽히 신뢰하고 있는 립제이라는 중간관리자의 존재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밤을 새가며 디테일을 챙겼는데도 녹화 하루 전날의 리허설에서 여전히 많은 부분이 엉망이었을 때, 모니카가 그 모든 화와 불안과 서운함을 솔직히 토로할 수 있는 팀메이트는 립제이였다. (립제이에게 유난히 더 강하게 표현한 것 같아 보이지만, 그만큼 더 그를 믿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걸 다 받아낼 수 있는 멘탈 맷집도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건 아니다. 결과적으로 립제이가 팀에서 완충 역할을 잘 해주기 때문에, 다른 멤버들이 모니카를 댄서로서 뿐만 아니라 리더로서도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구도 역시 좀 더 쉽게 이뤄졌다고 본다.   

리더십과 상관없는 화면이지만 팬심에 가져온, 이번 프라우드먼 무대에서 가장 소름 돋은 순간.


그리고 댄서라는 업에 대한 모니카의 프로페셔널리즘은 진짜 어나더 레벨이다. 아마 이 언니는 평소에도 '본질', '의미' 이런 단어 많이 쓰는 사람일거야. Mnet이 어떤 것을 노렸든 간에, 모니카는 자신이 이 프로그램에 참가하는 목적과 의미를 뚜렷하게 인지하고 있다. 주로 누군가의 백업 댄서로서만 존재하던 댄서들에게 조명을 비춰주는 소중한 기회의 무대라는 걸, 그리고 이 무대를 통해 자신들의 색깔을 펼치겠다는 걸. 상대 팀이 화려한 아이돌 게스트로 무대를 채우려 한다는 소식에, "왜 직업에 대한 아이덴티티를 생각을 못 하는거지?"라는 말로 버럭할 수 있는 것도 모니카이기에 가능하다. 이 언니는 여러모로 찐이다. (그리고 이번 무대도 진짜 찐이다! 와아, 이 언니에게 무대는 하나의 이야기이자 메시지구나. 소름 돋은 다른 무대도 있지만, 프라우드먼 무대에선 무릎을 꿇었달까. 하지만 이 글은 안무 스타일에 대한 글이 아니므로 여기까지...)


이렇게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진지한 리더는, 그 일이 가지는 의미나 영향력을 팀원들에게도 꾸준히 전달할 수 있기 때문에 그 것 자체가 하나의 동기부여가 된다. 프로그램에 참여를 결정한 직후 모니카가 팀원들과 가장 먼저 한 것도, 아마 이 참여가 의미하는 바를 설명하는 단계가 아니었을까? 그게 결코 일을 덜 힘들게 만들어주진 못하지만, 동기부여된 팀원들이 더욱 오래 버틸 수 있는 힘을 준다고 믿는다.  

출처: 네이버 TV 스트릿 우먼 파이터 영상 캡처 https://tv.naver.com/v/22670226/list/740608


하지만 모니카 같은 리더와 일하고 싶다면, 이 사람에게서 다정한 미소나 칭찬 같은 건 기대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다. 이 언니의 작품에 대한 높은 기대치와 진지함 때문에, 적어도 무대를 끝마치기 전까진 따뜻한 말 한마디 듣기 어려울 것이다. 따뜻한 말 한마디가 뭐야, 눈물 쏟으며 혼날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할 듯. 본인도 인정했듯 "웃으면서 연습하고 좋은 결과물을 내놓는 리더분들도 분명히 많이 계시는데 저(모니카)는 그런 타입이 아닙니다."


자신의 리더십 스타일에 대한 명확한 인식, 그러면서도 절반만큼의 미안함이 담긴, 개인적으로 가장 공감되는 말이었다.



03 아이키의 궁디팡팡은 친절하고 정확해


리더의 말
"아 이 친구들이 진짜 너무 잘하고 싶구나... 마음을 놓이게 하고 싶었어요."

"저희 윤경이, 제가 본 것 중에 가장 섹시했습니다."


팀원의 말

"이런 게 바로 팀워크죠!"

"쌤이 칭찬해 주시면 그냥 '와 이건 내가 할 수 있겠구나' 하는데..."



아이키가 이끄는 훅(Hook)이 모니카가 얘기한 '웃으면서 연습하고 좋은 결과물을 내는' 팀 중 하나가 아닐까? 훅의 팀원들은 연습실에 등장할 때부터 파이팅을 외치며 으쌰으쌰 & 화기애애 모드다. (하지만 내향인은 못 살아남을 것 같은 하이텐션...) "이런 게 바로 팀워크죠!"라는 한 멤버의 말에서 자신들의 팀워크에 대한 자신감과 애정도 묻어났다.


확실히 훅의 팀워크는 '전형적으로' 바람직하게 여겨지는 팀워크의 유형을 띄고 있다. 온화하고 유쾌한 리더와 웃으며 그를 따르는 팀원들. 이건 아이키라는 캐릭터 강한 인물이 이끌어내는 팀의 분위기이도 하지만, 현재와 같은 멤버 구성에서 아이키가 선택할 수 있는 가장 현명한 리더십 스타일이기도 한 것 같다. 이 팀은 방송 초반부터 '아이키와 아이들'이란 오명에 시달린 것처럼, 리더와 나머지 멤버들 간에 인지도, 실력, 심지어 나이에서도 많은 차이가 있어 보인다. 팀원들은 성장 의지는 강하지만 아직 경험과 실력은 객관적으로 부족한 상황이다. 이런 조직 구성에서 모니카 같은 리더가 들어온다면? 완전히 다른 결과물을 나을 것이다, 아마 좋은 쪽보다는 나쁜 쪽으로. 다행인 것은 이들의 리더는 아이키라는 점.   

출처: 네이버 TV 스트릿 우먼 파이터 영상 캡처  https://tv.naver.com/v/22670656


아이키는 현재와 같은 조직 구성에서 멤버들에게 필요한 건 칭찬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실수를 지적당하면 의기소침해지기 쉬운 주니어들에게, 굳이 잘했던 포인트를 찍어 칭찬해 주는 쪽을 택한다. 여기서도 중요한 건 구체적이고 정확한 칭찬이다. 그는 (또 다른 회차에서) 워스트 댄서로 지목받은 윤경이라는 멤버에게 "경쟁 멤버들 중 가장 섹시했다"고 하지 않았다. 그게 사실이 아니라는 건 서로 다 아니까, 그런 칭찬들로 격려를 받지 못한다는 것도 아니까. 대신에 아이키는 "내가 본 중 가장 섹시한 너의 모습이었다"라는 표현을 택했다. 이렇듯 주니어 멤버들에게는 당장의 객관적 실력보다는 성장과 변화에 대해 칭찬해 주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예를 들면 “지금까지 보여준 결과물 중에 가장 좋았다", "지난 주보다 훨씬 잘한다", "수정해 온 버전이 훨씬 낫다" 등등... 하지만 당장 며칠 만에 안무를 완성해야 하고, 결과물이 별로면 바로 탈락할 위기에 있는 경쟁 구도에서도 아이키처럼 보살 같은 태도를 유지할 수 있는 건 별개의 능력이다.  


04 일할 때 꼭 감정을 써야 하나요? 각자 알아서 잘하면 되는데 - YGX


마지막으로 얘기하고 싶은 YGX 팀의 경우, 리더 역할을 하고 있는 리정 한 개인보다는 이 팀의 전체적인 조직 구성이나 일하는 방식에 더 주목하게 된다. YGX는 멤버들 간에 어떻게 소통하는지에 대해 다른 팀들만큼 많이 비치지 않기도 했고, 아직 YGX의 메가 크루 미션 상세 장면이 방영이 안된 시점이라 (현재 5회까지 나온 상태) 정보가 많지는 않다. 그래도 지금까지 본 내용을 바탕으로, 내가 이상적으로 바라는 팀의 형태에 가까운 게 YGX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YGX는 초반부터 스스로를 어벤저스팀으로 불렀다. 그냥 각자 꺼 잘하는 사람들이 모인 팀이라는 뜻으로 받아들여졌다. 이 때문에 다른 팀으로부터 '비즈니스 모임'이라는 디스를 당하기도 했는데, 확실히 우리가 그동안 익숙해져 있는 끈끈한 선후배 관계, 언니동생 관계 같은 것은 잘 보이지 않는다. 리더가 팀원들을 발탁했을 것으로 보이는 다른 팀에 비해, 이 팀은 일단 '잘 하는 애들 모이자!' 한 다음에 그냥 안무를 제일 잘 짜는 리정이 리더로 '선발'된 느낌.


그래서인지 5화에서 잠깐 보인 장면을 봐도 리정은 존댓말을 하며 연습을 이끌어 갔다. 가족 같은 분위기와는 거리가 있는 모습이긴 하다. 그렇다고 이 팀이 서로에게 애정과 존중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각자의 전문 영역을 확실히 존중해 주기 때문에 보일 수 있는 건조함이 있다. 이 팀을 볼 때마다 직장이 가족과 같은 필요는 없다는 문장을 계속 떠올리게 된다. 각자 자기 일을 책임지고 잘 하는 사람이 모이면, 일터에서 감정을 소모할 일이 적고 얼굴을 붉힐 일도 잘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이런 YGX의 모습은 요즘 늘어나고 있는 프리워커들을 느슨한 조합을 연상하게도 한다. 다만 한가지, 겉으로 보기엔 참 깔끔한 이런 조직 구성이 위기 상황을 맞닥뜨렸을 때는 어떻게 될까? 과연 누가 키를 잡고 얼마나 강한 추진력으로 문제를 헤쳐나갈 수 있을지는 가끔 의문이 들 때도 있다.   



이렇게 제일 눈에 띄는 네 팀의 리더십 유형을 적어봤는데, 어떤 리더와 가장 잘 어울릴 수 있는지는 결국 내가 어떤 사람인지에 따라 크게 좌우된다. 내가 이미 리더의 위치에 있다면 팀원들의 성격이나 조직 구성이 어떠냐에 따라 기존에 잘 통했던 리더십이 다른 경우엔 안 먹힐 때가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결론은 모든 리더의 스타일이 특색이 있으면서도 나름의 장단점이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고, 방송에서 이런 차원의 다양성까지 볼 수 있는 게 좋았다는 거다. (물론 다양성을 모두 품는다기엔 아쉬움이 많다. 이젠 자기만의 방식으로 각자 승리하는 그림을 보여줘도 되는 시대일 텐데 여전히 탈락 제도를 가져가는 부분이라거나...아, 안돼! 이제 글을 마무리하자.)  


그러니까 또, 이번에도 예능 보면서 일과 조직에 대해 생각해버렸다는 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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