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주미 Feb 06. 2022

그런 질문으로는 친해질 수 없습니다

내가 더 이상 하지 않는 질문들

“아버지는 뭐 하시는 분이에요?”


얼마 전에 다녀온 한 회사의 면접에서 받은 질문입니다. 전 이게 그냥 영화 대사로만 존재하는 문장인 줄 알았는데 말이죠. 어느 지역 출신이냐는 질문도 있었습니다. 아직도 면접에서 이런 걸 묻는 사람이 있더라고요. 그리고 삼진아웃에 이르게 만든 질문이 하나 더 남았습니다. “제가 사주를 좀 믿는 편인데… 생년월일이 어떻게 되나요?”  


나중에 얘기를 들은 친구들은 첫 질문에서 이미 그 자리를 도망쳐 나왔을 거라고 했습니다. 도대체 왜 그런 무례한 질문들을 몇 차례나 감수하고 있었는지, 스스로도 어이가 없으니 변명을 좀 해봅니다. 그런 질문들이 모두 한자리에서 쏟아진 건 아니었다고요. (세 차례에 걸쳐 만나는 동안 조금씩 조금씩 끼어든 질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회사가 어떤 곳인지 탐색하는 데 정신을 더 집중하고 있었다고요. (정작 회사를 대표한다는 사람이 보여주는 강력한 적신호에는 반쯤 눈을 감은 채로 말이죠.)


하지만 더 큰 이유는 따로 있었습니다. ‘당신이 후보자로서 마음에 드니 더 알아가고 싶다’는 그들의 말에 제가 스스로 속아버린 것 같아요. 이게 다 저와 친해지고 싶어서 하는 질문이었다는 믿음이 불쾌감도 눌러버린 거죠. 그 믿음도 사실이 아니라는 걸 알아차리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앞선 질문에 제가 마지못해 답변하면 상대로부터 항상 “어쩐지…”라는 반응이 뒤따랐거든요. (그거 아시나요? 이런 상황에서 ‘어쩐지’라는 단어 뒤에 붙는 말은 칭찬의 의도이든 비난의 의도이든 상관없이 대부분 불쾌합니다. 상대가 이미 나를 어떤 사람이라고 단정한 상태라는 뜻이니까요.)


어쨌든 이런 에피소드가 있었던 덕분에, 저는 친해지기 위해서라는 핑계를 대더라도 해서는  되는 질문들을 다시 한번 떠올려보게 됐습니다. 상대방을 충분히 알지 못한 상태에서 ‘이런 질문으로 대화를 시작하면  분위기가 편해지지 않을까착각하며 우리가 건네는 수많은 질문들이요. 예를 들면 이런 건데요. 대학생 시절, 유명 포토그래퍼의 라이프 스토리를 듣는 어느 강의의 Q&A 시간에 “혹시 2 계획은 없으신가요?”라는 무례한 질문을 했던 흑역사가 있습니다. 그분이 자녀 계획을 가지고 있는지, 있더라도 아주 힘들게 노력하고 계신 상황인  아닌지 아무것도 모르면서요. 쭈뼛쭈뼛하다가 뭐라도 질문 하나를 남기면 분위기가 편해지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었지만,  질문을 던진 당시에도  자신이 자랑스럽지는 않았던 기억이 납니다.


성인이 된 이후로, <이제 더 이상 하지 않는 질문들>의 목록은 계속 늘어나고 있습니다. 충분히 친한 사이가 아니거나 상대가 먼저 알려주기 전에는 굳이 하지 않는 말들입니다.

“여자(남자) 친구 있어요?”라는 질문을 더 이상 하지 않습니다. TV 예능 프로그램에서 우락부락한 MC가 던진 이 질문에 예상보다 훨씬 당황하는 출연자의 표정을 본 후부터입니다. 남의 연애 여부를 묻는 것 자체도 실례지만, 그가 이성애자일 것임을 단정하고 남자분에게는 여자 친구를, 여자분에게는 남자 친구를 언급하는 질문을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어느 동네 사세요?”라는 질문을 더 이상 하지 않습니다. 사는 동네로 누군가를 판단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래서 자신의 동네 이름을 밝히는 것이 불편한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고 나서부터입니다.

사회에서 공적인 관계로 만난 사람에게 “대학 전공이 뭐였어요?”라는 질문을 더 이상 하지 않습니다. 모두가 당연히 대학을 다녔을 것이라고 전제하는 질문이기 때문입니다.

잘 모르는 사람에게 “부모님은 잘 지내시죠?”라는 질문을 더 이상 하지 않습니다. 한쪽 부모님을 먼저 잃은 친구가 있고 나서부터입니다.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가족 구성과 복잡한 가족 관계가 존재하고, ‘엄마아빠’를 한 세트로 하는 보호자 구성이 당연하지 않은 가족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사람 사는 세상인데 이 정도 질문도 못하면 너무 인간미 없지 않냐고 하는 분들도 있을 것 같습니다. 분위기 띄우자고 하는 안부인사 같은 거였는데 뭐 그리 심각하냐고요. 그런데 안부인사의 주제는 오늘의 날씨나 점심 식사 여부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요? 우리가 정말 상대방에 대한 호기심을 가지고 있다면, 그에게 건네는 질문도 좀 더 정성 들여 빚어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사람의 가족/지역/학교에 대한 단순 정보를 얻는 대신 그 사람이 요즘 어떤 것을 좋아하고 무슨 생각을 하고 지내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질문으로요.


“요즘 세상에 그런 질문으로는 친해지기 어렵습니다.” 그때의 면접 자리에서 이 말을 못 한 것이 아쉽네요. (아, 위에서 말한 회사는 최종 입사 제안을 받았지만 가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10년 전에 던진 부메랑이 돌아왔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