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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주미 Sep 02. 2021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직업적 욕망 찾기

의미 있는 일, 좋은 영향력을 가진 일, 그리고 나다운 일

최근까지 회사를 다니면서도 ‘뭔가 다른 일’에 대한 욕구가 계속 솟아나고 있었다. 이러이러한 일은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아졌는데, 그러니까, 저러저러한 일을 해볼 순 없을까… 하는 생각들. ‘저러저러한 일’은 무엇일지, 갭타임을 가지는 동안 내 직업적 욕망을 좀 더 구체적으로 정의해보고 싶었다. 지난 몇 달 동안에도 수시로 생각이 바뀌고 업데이트되어 어떻게 결론이 날지는 모르겠다. 일단 현재까지 생각의 흐름을 한번 정리해두는 게 필요할 것 같다.



시작은 지난 5월 밑미(meet me)에서 진행한 커리어 카운슬링 프로그램이었다. 커리어 엑셀러레이터 김나이님이 매일 하나씩 던져주는 질문을 통해 일을 바라보는 관점에 대해 고민해 보게 되었는데, 18일차의 질문이 아직까지도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을 낳고 있다.


일을 포함한 나의 삶에서 절대 포기할 수 없는 것은 무엇인가요?

 

최초의 내 답변은 ‘의미’였다. (그런데 매우 소극적인 차원의…)

김나이님의 질문에 대한 당시 내 답변은 일의 ‘의미’였다. ‘재미’를 포기하고 ‘자율성’을 포기하더라도, 마지막까지 포기할 수 없는 한 가지 가치. 나는 모든 일을 시작할 때 의미를 찾는 일이 선행되어야 하는 사람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경력이 어느 정도 쌓일 때까지는 내가 적극적으로 원하는 일을 했던 게 아니라, 내게 주어진 일을 해왔기 때문에 더더욱 그랬다는 생각이 들지만.) 이 업무 경험을 통해 어떤 새로운 것을 배우게 되는지, 우리 조직이나 팀에는 장/단기적으로 어떤 도움이 되는 일인지, 이 일의 결과가 사람들이나 세상에 어떤 식으로 영향을 줄 수 있는지 등에 대한 답변이 스스로 정의되기만 한다면 강한 책임감으로 열심히 달릴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그다지 내키지 않는 일을 해야 할 때도, 그 일을 해야 하는 의미를 (없으면 만들어내서라도) 찾아 스스로를 납득시키는 습관이 생겼다. 그래야만 몸과 머리가 움직였으니까. 예를 들어, 퇴사 1~2개월 전 이미 번아웃이 심하게 온 상태에서 또 새로운 프로젝트를 리드해야 했을 때, 내가 찾은 (또는 만들어낸) 의미들은 이랬다.


‘우리 팀에 최초로 A 업무 분야의 포트폴리오를 쌓을 수 있는 기회야’

‘(일이 아니었다면 평생 관심 없었을) 요즘 뜨고 있는 B 산업의 트렌드를 익힐 수 있는 기회야’

‘우리 팀이 당분간 경쟁 PT를 걱정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매출 규모가 큰 프로젝트야’ 등등…


모두가 재미를 좇고 있는 시대에, 최소한의 의미만 있어도 일을 추진할 동력이 생기는 사람이라는 건 어찌 보면 강점이 될 수도 있다고 위안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내가 일의 ‘의미’를 너무 소극적이고 좁은 뜻으로만 사용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내가 찾아낸 일의 의미들이 가슴을 뛰게 하는 직업적 열망으로 연결되는 게 아니라, 하기 싫은 일을 어떻게든 해야 할 때 쓰이는 심리적 트릭인 것만 같았다. 자기위안을 위한 억지스러운 의미부여를 하며 일해온 지 오래되었구나 싶었다.  



세상에 좋은 영향을 주는 일을 하고 싶어. (사실 그거면 다 되는 줄 알았지…)

내가 말하던 ‘의미 있는 일’의 구체적이고 정확한 본질을 다시 떠올려봤다. 그건 궁극적으로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거나 사회에 좋은 영향력으로 기여하는 것이었다. 세상에 좋은 영향력을 미치는 일을 하고 있다는 감각, 그게 일의 즐거움이자 직업적 욕망이었다.


이런 기준이 비교적 일찍부터 생겨난 건, 주니어 때부터 겪은 몇 가지 부정적인 경험의 영향이 있는 것 같다. 공공기관에서 근무하며 국가적 관광 캠페인을 지원해왔지만, 내 사업의 실적 보고가 내가 싫어하는 정권의 업적을 빛내는 데 쓰이고 있다는 걸 깨달을 때의 현타, 비난의 소지가 가득한 기업의 디지털 홍보 담당하며 이들을 옹호하고 방어해 주는 메시지를 만들 때의 회의감. 최소한 악에 일조하는 일은 하고 싶지 않았는데, 어떤 종류의 일은 내가 더 열심히 할수록 더 크게 방향을 잃는 기분이었다. 내가 이 한 뼘의 구석에서 열심히 일하는 게 넓은 시야에서 내려다볼 때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그 의미를 의심하지 않고 일할 순 없을까?


일의 의미에 대해 생각이 계속 꽂혀 있던 중에, 평소에 좋아하는 팟캐스트인 <책읽아웃>에서 얼마 전 너무나 깊이 공감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임팩트 투자를 진행하는 제현주 대표를 초대한 자리였다. 투자 전문가로 일하다가 퇴사하고 6여 년간 다른 모색을 해본 기간이 있었는데, 그 시간 동안 어떤 점이 달라졌는지에 대해 제현주 대표는 이렇게 대답했다.


“지금은 내가 뭘 하는지 알고 하고 있다는 게 가장 큰 차이이다. (중략) 내가 하고 있는 이 일이 무슨 의미이고, 내가 이 정도로 열심히 하는 게 세상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 걸까? 라는 질문을 지금은 더 이상 하지 않는 것.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어떤 맥락 안에 놓여 있다는 것을 잘 이해하고 있다는 것.” (출처: [김하나의 측면돌파] 제현주 작가 "ESG? 임팩트 투자? 그게 대체 뭐야?")


돌고 돌아와… 결국 ‘나다운’ 일을 찾고 싶어.

이제 의미 있는 일을 할 수 있는 직장을 찾으면 될 거라 생각했는데… 뭔가 부족했다. 나에겐 일에서 의미가 가장 중요하다고 얘기했더니, 전 직장 후배 둘이 일제히 “제약기업 같은 곳 잘 어울릴 거 같다고 생각했어요!”라고 했다. (응? 물론 인류의 건강을 위해 일하는 곳도 좋지만 말이야...) 좋은 일 하는 회사에서 일하고 싶어서 최근에 들어온 제안을 거절했다고 얘기했더니, 엄마는 “청소기 만드는 회사도 얼마나 좋은 일 하는 회사냐?”라고 했다. (아 맞는 말이죠… 그러니까 음…)     


그래서 돌고 돌아와 내린 현재의 결론: 내 직업적 욕망은 “의미 있으면서도 나다운 일”이다. 의미 있지만 내 가치관이나 관심사와도 부합하는 일 말이다. 


왜 나다운 일이 중요한 걸까? 앞에서 언급한 팟캐스트 에피소드에서 진행자인 김하나 작가도 말했듯 “내가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기업을 사람들이 사랑하게끔 만드는 카피를 쓰다 보면, 그런 일을 오래 하다 보면 영혼이 잠식되는 부분이 있다.”고 했다. 나는 광고/홍보/마케팅 등 커뮤니케이션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일수록 일에서 나다움을 찾는 게 특히 더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하곤 한다. 직접적으로 기업이나 브랜드의 대리인이자 메신저가 되어야 하는 업무일수록, 자신의 가치판단이나 호불호를 내려놓고 유체 이탈한 상태로는 오래 버티기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상대의 관심과 애정을 얻는 메시지를 만들어야 하는데, 내 마음을 거스르는 일을 (또는 그다지 마음이 가지 않는 일을) 하면서 얼마나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그러니까 가능하다면, 삶에서 생겨나는 고민이나 배움을 일과도 연결시킬 수 있다면 좋지 않을까? 어차피 워라밸을 지키기 힘든 사람이라면, 일하는 나와 일상의 나 사이의 교집합을 최대한 크게 만들어 두는 게 어떨까? 그런 의미에서 (전세계의 헬스케어 시스템에 일조하는 것도, 인류를 가사 노동에서 해방시키는 것도 다 좋은 일이지만) 내가 더 관심 있는 일이란 크게 이런 것들:    


개인의 성장을 돕는 것. 사람들의 자아 발견, 내적 성장을 돕거나, 커리어 성장을 돕는 것 모두가 될 수 있다.

환경에 도움이 되는 것. 환경 보호나 기후위기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을 개선하고 행동을 바꾸는 모든 종류의 활동이 가능하다.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것. 너무 범위가 넓지만 특히 요즘엔 여성 문제에 관심이 많다. 여성들 스스로가 편견을 깨고 자긍심을 가질 수 있게 하는 종류의 활동이면 좋을 것 같다.   



일단 나는 이 정도의 기준 안에서 다음 직장을 탐색해보기로 했다. 그 곳에서 커뮤니케이션 기획자로서의 강점을 살려, 내가 설계한 메시지나 스토리텔링을 통해 사람들에게 좋은 생각의 씨앗을 심어주고, 긍정적인 행동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역할을 한다면 좋겠다. 물론 내가 해온 일과 앞으로 하고자 하는 일 사이에 갭이 있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당장 다음 직장에서 직업적 욕망을 실현하진 못할 지도 모른다. 좋은 기회가 생겨 당장 다음 직장에서 실현하게 되더라도 여전히 실패할 수도 있다. 조직을 선택할 때는 이것 말고도 고려해야 할 부분이 많으니까. 아니면 내가 그 일을 잘 해내지 못할 수도 있고. 하지만 실패하더라도 나 자신으로서 실패하는 쪽을 선택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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