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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아나 Jun 02. 2017

맹점의 가치

진화를 연구하던 인류학자들은 인간과 오랑우탄 등을 연구하면서 '모르는 척' 하는 것이 때로는 생존에 도움이 된다고 밝혔다. 고의적이던 무의식적이든 뇌는 처리하기 애매한 일부의 정보를 과감하게 누락시킨다. 그런데도 오히려 개체의 생존 가능성은 높아졌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초보운전자가 처음 교통사고를 냈을 때, 뇌가 일시정지되는 현상(1) 그리고 똑똑하던 사람이 군대에가서 이등병이 되면 바보가 되는 현상(2) 등 과는 무관하다.^^ 이것은 공포와 뇌의 처리용량 폭증으로 인한 일시정지에 가깝다. 


편견이나 편향이란 정상적인 상태에서 정상적인 정보를 인지했는데도 불구하고, 뇌가 이기적으로 해석하거나 정보를 방치하는 것을 말한다.

가령 버스 노약자 보호석에 앉아서 갑자기 피곤해지면 바로 앞에 서 있는 할머니가 30대 주부로 보이는 현상 같은 거다. 인류학자에 따르면 이런 놀라운 발상의 전환은 노약자석에 앉은 젊은이가 창조력을 발휘한 것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생존을 위해 뇌가 조장해온 것이다. 우리 감각과 뇌에서 맹점이 작동하는 순간이다.


물론 때로 이런 현상은 양심불량이나 도덕성의 결여에 더 가까울 수도 있지만, 어떤 사람들은 정말로 자기에게 유리한 정보만 인지한다. 그러니까 알면서도 양심의 가책을 안 느끼는 것과는 달리, 아애 뇌가 해당 정보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다. 가령 돈을 꿔가면서 '꼭 갚을 께'라고 말하는 사람의 표정을 자주 관찰해보라. 이 사람이 양심이 없는 건지 뇌의 일부가 고장난 건지를 구분할 수 있는 기회이다. 친한 친구에게 돈을 꿔주면 그 친구를 잃는다지만, 사실은 당신은 인간의 맹점을 관찰할 기회를 얻은 것이다. 


실제로 사이코패스나 양심이 없는 사람보다 이런 식으로 뇌가 자기 편할 대로 동작하는 범주의 사람들이 훨씬 많다. 그리고 늘 남들의 잘못이나 오류는 커보이기 마련이고 자신의 맹점을 자신이 인지하기는 어렵다. 내가 관찰해온 바에 따르면, 인지 오류가 없는 사람은 전혀 없다. 이글을 읽는 당신도 이글을 쓰는 나도 모두 포함되는 진실이다. 혹 그런 사람이 있다면 인간으로 분류해서는 안되고 신으로 봐야 한다는 게 나의 입장이다.


오죽하면 부처님도 부처가 되는 수행의 요건으로 '직관'을 말씀하셨는데 여기서 말하는 직관은 남자의 바람을 직관적으로 눈치채는 그런 식스센스가 아니라 直觀 (직관) , 즉 사물과 현상을 왜곡하지 않고 바로 파악하는 것을 말하는데... 사실 이게 인위적인 노력으로 개선되지 않는다는 놀라운 사실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내가 수백명을 주관적으로 관찰해본 결과, 이런 편향이나 맹점이 전혀 없는 사람은 없다고 완전하게 단정지었다. 어제도 자신이 상위 0.001%에 이를만큼 똑똑하다는 자칭 천재 한 분과 저녁식사를 했지만, 이런 결론은 전혀 바뀌지 않았다. 인간의 사고력도 불완전하지만 -소크라테스께서 말씀했듯이- 인간이 진실을 인식하는 능력도 불완전하다. 정보를 편향되게 인식하는데, 그런 정보를 바탕으로 한 이성적 사고활동이 올바를 리는 만무하다.


하지만 뇌는 왜 이런 맹점을  방기해온 걸까? 2차세계대전 이후에도 유럽의 지성인들은 엄청난 회의주의와 양심의 가책에 시달렸는데, 그 이유는 인류가 자랑해온 지성으로도 2차대전의 광기를 전혀 제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상당수 지성인들은 전쟁의 폭력을 조장하는데 적극가담하였다. 한마디로 우리의 이성은 우리 자아 깊은 곳에 숨은 바보스런 면을 모르는 척 방치하고 있다.


분명 인간은 정신의 존재이기 때문에 뇌의 한계를 극복하는 길이 아애 없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선천적으로 인식 편향이 심한 사람들은 좋은 교육을 받는다고 해도 좀처럼 편향이 줄어들지는 않는듯하다. 단지 자신의 편향에 정당성을 주장하거나, 자신의 편향을 숨기는 능력이 늘어날 뿐이다.


몇 가지 방법이 있는데 이게 확실한 효가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한 가지는 자신이 편향적일 수 있는, 다시 말해서 인간은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고 자신도 인간이라는 점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것은 결코 자존감을 낮추는 일은 아니다. 오히려 베트남전을 연구한 미국의 심리학자들에 따르면 지나치게 긍정적인 사람이나 지나치게 비관적인 사람보다는 현실적인 성향의 사람들이 전쟁의 상처를 더 빨리 벗어나는 것으로 밝혀졌다. 우리가 자칫 매사 긍정적인 사람들이 더 정신력이 강할 거라고 믿는 것은 오류일 수 있다. 우리도 생활속에서 지나치게 긍정적이거나 비관적인 생각으로부터 자기 중심을 지키는 연습이 필요할 수 있다.


둘째는 남의 말을 귀기울여 듣고, 늘 꾸준한 독서를 이어가는 것이다.

독서를 할때 한가지 논조의 책만 읽는 것도 깊이 있는 전문성을 위해 좋은 선택이지만, 다양한 시선과 주장을 가진 책을 교차해서 독서하는 것은 덜 편향적인 사람이 되는데 도움이 된다.


셋째는 주변에 현명한 사람을 가까이 하는 것이다.

어차피 아무리 똑똑한 사람도 세상일을 다 잘알수는 없다. 물론 주변 사람들도 사실 당신만큼 오류를 자주 범하는 편향적인 사람이다. 그렇지만 그런 인간의 모순이 오히려 우리가 서로 아껴주며 우애와 사랑을 품고 살아야 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당신에겐 좋은 친구와 변지 않는 가족, 동료가 필요하다. 


나 역시도 늘 자기 중심을 잃지 않는 좋은 동료를 찾고 있다. 내 주위에 그런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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