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반아나 Jul 03. 2018

아시아나 항공 납품 사건을 보며 떠오른 대기업 갑질

아시아나 기내식을 납품하는 업체 사장이 자살했다는 기사를 보았다.

아시아나 기내식을 납품하는 업체는 정상적으로 생산을 했으나 포장과 품질검사에서 문제가 생겨 3일간 기내식이 항공기에 실리지 못했고, 이로 인해 항공기가 지연되고, 항공사는 고객에게 30~50달러의 상품권으로 보상을 했다.


대다수의 댓글러들은 자살한 사장을 고객 밥을 굶긴 책임감 없는 선택이라며 악플을 달았다.


하지만 의문은 생긴다.

과연 납품사 사장이 욕먹을게 두려워서 자살했을까?

항공기 지연 시 발생한 비용을 아시아나가 전액 부담했을까?

아시아나에 납품할 정도면 식품기업 운영을 한두해 한게 아닐텐데... 왜 제 때 납품을 못했을까?


그동안 수많은 기업들을 만나 이런 저런 들은 얘기를 모아 우리나라 대기업 납품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적어보겠다. 물론 아직까지 아시아나가 갑질을 했다는 기사는 없었다. 나는 단지 그동안 기업 컨설팅을 하며, 들은 이야기를 엮어낼 뿐이다.



1. 최저가 깍는 노인 대기업

대기업들을 비롯한 상당수 사업은 입찰방식이다. 사업마다 입찰요건은 다 다를 테지만 대부분이 다 최저가 방식이다. 우리가 타는 자동차 부품부터 먹는 음식까지 모두 최저가 낙찰로 선정된 업체의 납품을 받아 쓴다. 여기까지는 기분이야 좀 나쁘지만 자본주의의 원리라고 넘어갈 수 있다. 입찰에 참여한 기업 역시 자신들이 스스로 써낸 가격으로 납품하는 것이니 누구도 욕할 순 없다.


그러나 대기업들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 이미 입찰 전에 선정 기업을 정해두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는 자신들이 원하는 품질을 갖춘 기업을 정해두고 있다는 좋은 취지로 받아들여보자. 그런데 대기업 담당자는 입찰이 마감되면 여기서 끝내지 않고 미리 선정된 기업에게 가서 다른 기업이 제출한 최저가에 납품가를 맞출 것을 요구한다. 업체 입장에선 계약하고 싶으니 일단 가격을 다시 깍아서 제응모한다.


울며 겨자먹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구매담당 임원은 늘 실적이 필요하다. 따라서 올라온 결재서류에 10% 더 깍아오라며 되돌려 보낸다. 그래야 자신이 뭔가 일을 한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이런 황당한 요구를 중소기업은 거절해야 맞지만, 여기까지 와서 거절하기 어렵다. 게다가 이런 요구를 거절하게 되면 반드시 후환이 따른다. 한번 요구를 거절하면 해당 대기업은 물론 모든 대기업 관계사까지 그리고 구매담당자와 친분이 있는 어떤 기업에도 다시 납품하기 힘들다.


이에 따라 처음부터 낮은 마진으로 제출한 입찰가는 최저가가 아닌 최악가격으로 돌변한다.



2. 빚을 지고 시작해야 하는 대기업 계약

마진이 적다고 대기업을 욕해야 할까? 적은 마진은 공급자 입장에선 악이지만 구매자 입장에선 선이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다. 대기업에 납품하기 위해 중소기업은 빚을 지는 것을 감수해야 한다.

왜 빚을 지고 시작하게 될까?


첫째는 대기업이 보증금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납품에서 뭔가 문제가 생기면 보증금에서 까기 위해서 이다. 이에 따라 계약에 분쟁이 생기면 중소기업은 항의도 못해보고 당할 여지가 많다. 누가 잘못했던 대기업은 피해액을 납품기업에 전가시킬 것이다. 이미 보증금을걸어놨기 때문에 소송까지 가지도 못하고 날아가는 업체도 많다.


둘째는 생산 설비를 증설해야 하기 때문이다.

월 1000개를 생산하던 기업에게 월 5000개가 주문이 들어오면 이것은 좋은 일이 아니다. 공장은 하루아침에 생산량이 늘지 않는다. 시설을 증설하고 인원을 충원하고 자재를 더 사야 한다.


셋째는 계약조건이 붙기 때문이다.

여기서 계약조건이라는 것이 흔히 말하는 갑질의 시작이다. 대기업 갑질이라는 말을 이제 처음 꺼냈다.

계약을 위해 특정 기업의 원료를 사용할 것을 지시한다. 특정 기업의 주식을 사거나 특정 물품을 강매시킬 수도 있다. 특정 기술이나 특정한 기계를 사지 않으면 계약을 맺을 수 없다. 

자신들이 개발한 기술로 납품하는데 추가로 로열티를 내도록 계약을 맺어오라고 한다. 이런 것을 입찰할 때는 몰랐던 경우가 많다. 따라서 추가로 비용이 더 들어가게 된다.


넷째는 품질이 더 높아보이는 비용도 납품업체가 감수하기 때문이다.

똑같은 제품인데 왠지 더 있어보이기 위해 쓸데없는 인증이나 검사, 품질과 하등 관계없는 절차 등을 추가시킨다. 물론 이것 역시 납품사가 부담해야 한다. 또한 대기업 내부의 복잡하고 긴 업무 프로세스에 대응하는 것 역시 소규모 중소기업에게는 힘든 일이다. 

더블어 불필요한 뚜겅을 단다든지... 냄새가 안나는데도 냄새가 안나는 것을 더 확실히 하기 위해 약품처리를 추가해야 한다. 중소기업이 원래 쓰던 용기가 아닌 특정 규격의 용기에 옮겨 담는 등의 요식행위 등도 있을 수 있다. 대기업은 특정 프로세스를 수십명이 나누어서 처리 하기 때문에 해당 담당자가 한마디 할 때마다 납품사는 기하급수적으로 절차가 늘어날 수도 있다. 물론 센스있는 담당자가 중간에서 잘 커버해주면 이런일은 줄어든다. 그런 센스 있는 담당자도 많지만 그렇지 않는 사람도 많기에 이 글이 길어지는 것이다.



3. 대기업도 용돈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렇게 까지 계약을 위한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계약하러 들어간 순간 뜨악하게 된다. 대기업에 직접 납품하는 것이 아니라 대기업이 설립한 자회사에 납품하여 다시 자회사가 대기업에 납품하는 경우이다. 대기업은 왜 이런 자회사를 만들까?

우선 재벌3~4세 들 용돈만들어주기 위해 그런 경우나, 퇴직자들이 퇴직 후 노후보장을 위해서 만들어주는 경우가 흔하다. 그외 이유도 있는데 참 말하기 거시기 하다.

엿튼 대기업이 용돈이 필요해서 라고 해두자...

문제는 납품업체는 여기서 한번 더 납품가를 깍이는 경우를 만날 수 있다. 그게 아니라도 진정한 갑질을 경험하게 된다.



4. 정말로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미운가??

대기업 갑질의 대부분은 대기업 임원이나 회장이 하는게 아니다.그 사람들은 하청업체 사장 얼굴도 모른다. 구매담당이나 해당부서 담당들은 납품업체에게 갖은 위세를 부린다. 납품업체들은 여기서 한번 더 갑질을 당하게 된다. 접대도 해야하고 경조사에 얼굴도 비춰야 한다. 중소기업은 생각지도 않은 돈과 시간과 인격적 소모를 감당하게 된다.

갑자기 찾아와서 미팅한다고 하고 저녁 늦게까지 집에 안가면 술 한잔 사달라는 뜻이다. 그리고선 갑자기 비싼 술을 시키고 나서 계산서는 내일 자기 앞으로 보내라고 하는 위인도 있다. 


게다가 이런저런 성과를 만들어줘야 한다. 가령 품질개선 보고서를 써야 하는데 담당자가 보고서 쓸 내용이 없다면. 하청이나 납품업체들이 품질개선을 해서 보고서에 쓸 내용을 만들어준다. 물론 정말로 품질이 개선된다면야 국가경쟁력 발전에 도움이 되겠지만. 납품업체들이 노동력과 설비개선 등을 해서 서류상에만 존재하는 혁신을 달성하는 일도 부지기수다. 가령 불량이 천개에 하나가 나왔는데 경영혁신을 통해 만개에 하나가 나오게 되면 성과는 담당자 몫이고 그에 따른 비용부담은 납품업체가 진다. 

게다가 현장을 잘 모르는 관리직이 말도 안되는 지시를 내려서 납품업체가 어쩔 수 없이 이를 수행하다가 비용이 추가되는 수도 있다. 

이 역시 최초 납품계약을 할 때 생각했던 비용이 아니기 때문에 업체의 수익성은 악화되고 빚은 그만큼 늘어간다.



5. 모든 책임은 납품업체가...

불량이 발생하면 책임지는 것은 당연하다. 문제가 생기면 누구도 납품업체 편을 들어주는 담당자는 없다. 한번 더 힘없는 설움을 겪어야 한다. 낮은 마진으로 인해 인건비도 내려갈 수밖에 없는데 그런 직원들이 위기대응 능력이 훌륭하긴 어렵다. 결국 문제가 생길 때마다 사장이 직접 현장에 달려들어 해결하든지 돈으로 물어내든지 하는 수밖에 없다. 

그마저 실패하면, 이미 마진도 거의 없고 이런 저런 계약 비용으로 빚까지 진 상태에서 책임을 떠 넘기면 납품업체는 망한다. 그것도 중소기업이 감당할 수준이 아닌 생전 보지도 만져보지도 못한 천문학적인 빚이 날라올 수 있다.

돈은 그렇다 치고, 앞으로 대기업에 찍힌 죄로 동종업계에서 재기할 수 없게 되는 것 역시 무섭다.



6. 신기술 연구는 중소기업이 수익은 대기업이

혁신은 중소기업이 하고 혁신에 따른 성과는 대기업이 가져간다. 대기업은 오로지 갑질만으로 R&D 비용 한푼 안들이고 수익개선을 이룬다.  

중소기업이 신기술을 도입해서 원가가 절감되면 대기업이 그만큼 납품가를 낮춘다.  이외에도  기술 빼가기나 우수인재 빼가기 등 우리가 이름으로만 알고 있는 갖은 행패를 우리가 아는 대다수의 대기업이 상시적으로 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물론 모든 기업은 아니다. 착한 기업이나 착한 담당자도 있다. 대기업에 납품해서 수백억 수천억 부자가 된 중소기업도 있다. 


게다가 위의 사항들이 모두 아시아나 사태와 관련있다는 뜻은 아니다.

그렇지만 이미 우리나라 현실에서 이 시간에도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남북 평화 체제 시 투자해야할 사업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