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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리 May 02. 2016

돌싱 천국

                                                                                                                                                                                                                                                                             

나는 돌싱..이라는 단어가 괜찮은 단어라고 생각한다.

이혼남이나 이혼녀보다 

다시 싱글로 돌아왔다는 표현이 훨씬 소프트하고

우회적이며 유쾌하다.

그런데 내 주변에 있는 이혼남, 이혼녀는 대부분 '돌싱'이라는 단어를 싫어한다.

제 3자에게는 우회적이든 직접적이든 유쾌하게 표현했다 정도일지 몰라도

본인 스스로에게는 '돌아온 싱글'이라는 표현도 거슬리나 보다.

그들에게는 '이혼했다'라는 사실 자체가 아픔이다 보니 관련된 모든 것들이

유쾌할 수 없으리라.

요즘은 워낙 이혼율이 높고 돌싱들도 많아서

사회적인 인식들이 많이 바뀌었다고 한다.

심지어 40대가 되도록 결혼 한번 안해본 싱글은 뭔가 문제가 있는 거고

그렇기 때문에

경험이라도 있는 돌싱이 더 낫다라는 얘기도 들어본 적 있다.

 

돌싱...

우리는 그들에 대해 솔직히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38세 우종은 대기업에 다니는 샐러리맨.

그는 2012년도 꽃피는 봄 5월에 결혼을 했다.

1년 반 정도 만난 여자였고, 자주 싸웠지만 정도 들기도 했고

어느덧 30대 중반을 넘긴 자신의 나이와 현실을 직면하여 그는 결혼을 결심했다.

나도 오랫만에 연락받아 그의 결혼식에 갔었다.

선남선녀 커플은 결혼식에서 참 빛나고 행복해보였다.

그런데.. 시간은 흐르고... 우종은 결혼생활을 힘들어 했다.

초반에는 맞추기 다 힘들다며 토닥거렸던 것이 얼마 되지 않아

오랜만에 만난 우종이 나에게 이혼을 할 거라고 말한 게 2012년 11월.

결혼한지 6개월만에 이혼이라니...

그냥 수많은 유부남들의 넋두리이겠거니..했는데 

다음달인 12월, 우종은 정말 이혼을 했다.

얘기를 들어보니...

 

어느 커플이건간에 싸우지 않는 커플은 없다지만 일반적으로는

싸워도 화해하고 오해를 풀고 위로하며..다 그렇게 살아가지 않나.

                                                                    

듣고보니 둘다 다혈질에 싸우면 화해가 되지 않는 관계였던 것이다.

서로 소통하는 방식에 있어 문제가 있었나보다.

이해심의 한계나 자존심..뭐 그런 문제가 아닐까 싶다.

                                                                    

풀리지 않던 서로에 대한 앙금이 누적되고 있을 무렵 

말싸움을 하다가 와이프가 분노에 차서 우종의 노스페이스 점퍼를 가위로

갈기갈기 찢었단다..ㅋㅋㅋㅋ (웃어서 미안 ...)

이 모습을 본 우종은 자신의 한계를 참기 힘들었고, 그 순간 이혼을 결심했다고 한다.

본인도 결혼한지 6개월만에 이혼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지만

그 모든 걸 불식시킬 정도로..

집에 가는 게 지옥행인 것처럼 괴로웠다고 한다.

이혼 후, 그는 지금 더욱 건강해지고 더욱 밝아졌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게 본인은 '돌싱'이라며 ...

당당하게 말을 하고 다닌다.

희연은 37세 싱글녀

그녀는 유학을 장기간 다녀오고 일을 바쁘게 하다보니

결혼할 시기를 놓쳤다.

정신차려 보니 노처녀-라는 딱지를 붙인 채 

제대로 된 남자를 만날 기회가 없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

이젠 따지지 말고 나를 좋아해준다면 무조건 직진- 이라는 일념으로

그녀는 작년 가을에 42살짜리 남자를 한 명 만났다.

그는 사업을 하는 남자였는데 젠틀하고 다정한 남자였다.

둘다 경제적으로도 안정돼 있는 상황이었고 성격도 잘 맞았다.

골프도 같이 치러다니고, 해외여행도 다니고...

오랜만에 달달한 연애를 하며 희연은 이 남자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5개월 정도를 만났고, 그녀는 그가 프로포즈 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희연이 분노에 찬 목소리로 전화가 왔다.

희연 : 정말 어이가 없어서....알고 보니 이혼남이더라구.

          중학생 딸도 하나 있고.

논걸 : 엥?? 그걸 5개월동안 숨겼단 말이야?

희연 : 내 말이 그거야.

          처음부터 솔직히 말했으면 오히려 이해했을지도 몰라.

          지금와서 얘기하는데 피가 거꾸로 솟더라니까!!

논걸 : 그래서..뭐래..

희연 : 내가 너무 좋아서 말을 못했대. 

           말을 하면 내가 떠나버릴까봐..참내

           나 이제 어떡하니..

그 이후로 희연은 배신감에 치를 떨면서도 그와 2달간을 더 만났다.

하지만 결국에는 자신에게 그 엄청난 팩트를 숨긴 사실이 너무 괴로워

그와 헤어졌고, 한동안 많이 힘들어했다.

오랫동안 알고 지냈던 수애언니는 현재 43세.

20대 중반에 일찍 결혼해서 아이를 하나 낳았는데

편이 완전 개쓰레기라 불행한 결혼생활을 했다.

폭행까지 쓰는 남편에게 여러 상해를 입고 난 30대 초반에야

그녀는 이혼을 했고,

생계를 위해 유학생활로 배운 영어강사를 하며 아들과 둘이 살고 있었다.

그러다 학원의 외국인 친구의 소개로 알게 된 이탈리아 남자, 반데라스.

그는 수애보다 1살 많은 미술가였고 여러모로 한국 남자와 성향이 비슷했다.

다시 사랑에 빠진 수애언니는 반데라스의 프로포즈를 받았고,

그의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러 가기 위해 이탈리아로 갔다.

사실 그녀는 가기 전 부터도 걱정이 많았다.

딱 하나 있는 아들 반데라스에게 아티스트 교육까지 시켜줬는데

머나먼 타국 한국이라는 곳까지 가서 심지어 아들도 하나 있는

이혼녀와 결혼하겠다고 찾아온 아들... 그들을 어떻게 맞이할까..수애언니는 많이 두려웠다고 한다.

이탈리아의 남부 작은 시골,

이태리어 밖에 쓰지 못하는 시부모님 앞에서 그녀는 미안한 마음으로

고개를 떨구고 인사를 드렸다.

남자친구 반데라스가 통역을 영어로 해주었는데

반데라스의 아버지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너희가 결혼을 하겠다면..딱 한가지만 약속해다오.

  절대로 수애의 아들에게 상처주지 않는다는 것을"

수애언니는 반데라스 부모님의 넓은 아량과 이해심에 큰 감동을 받았고

반데라스가 통역해준 말을 듣고 눈물을 펑펑 쏟았다고 한다.

결국 그녀는 반데라스와 결혼했고, 한국에서 예쁜 아이 둘을 낳아

이태리 레스토랑을 운영하며 알콩달콩 잘 살고 있다.

얼마 전 나의 친한 친구 '지민'이 프랑스에 여행을 갔다.

게스트하우스에서 알게 된 한국 남자.

S전자에 다니며 지민보다 1살 더 많은 오빠.

인물도. 성품도 괜찮아서 괜찮다 싶어 서로 연락처를 주고 받고

한국에 와서 밥 한끼 같이 먹기로 했다고 한다.

즐거운 여행을 끝내고 온 '지민'은 한국에 들어왔고

2주 뒤에 설레는 마음으로 그에게 문자를 보냈다. 

- OO씨~전 한국 들어왔는데..혹시 귀국하셨어요?

  식사 언제 할까요..?

잠시 후 온 장문의 답장.

- 지민씨. 연락 먼저 줘서 고마워요.

  한국와서 다시 연락하니 디게 방갑네요..^^

  전 다음주 아무때나 괜찮아요. 지민씨 괜찮은 날짜에 제가 맞출께요.

  날짜만 알려주시면 장소도 제가 괜찮은데 잡아서

  알려드릴께요..

  .....

  그런데 지민씨.. 제가 드릴 말씀이 있어요..

  이거 오바라고 생각 드실 수도 있는데요..

  미리 말씀드려야 할 것 같아서요.

  저..사실 돌싱이에요.  

  나중에 말씀드리면 좀 놀라실 것 같아서요. 

  그럼 날짜 잡으시고 알려주세요~^^

지민은 보통 돌싱..이라면 나이 많은 아저씨겠거니..했는데

자신보다 1살 많은 그 잘생기고 젊어보이는 오빠가 돌싱이라니..

살짝 놀랐다.

물론 이렇게 미리 말해 준 것을 보니 정직하고 바른 사람이다. 싶은 생각은 들었는데

이제 내가 돌싱을 만나야 할 정돈가..싶은 생각도 솔직히 들었다고 한다.

돌싱에 대한 에피소드는 차고 넘친다. 

미국이야 워낙 이혼율이 높았으니 첨부터 그러려니 했는데

요즘 우리나라 이혼율은 정말 놀라울 정도이다.

가히 돌싱 천국이다..

어릴 때는 '이혼'이라는 것이 대단한 인생의 실패인 듯

어둡고 음침한 세상의 사람들만이 겪는 드라마 속 이야기라 생각했는데

이제 30줄 중반에 들어서니 

이혼을 흠으로 생각하는 마인드는 촌스럽다는 얘기까지 듣는다.

돌싱의 세계도 참 다양한 사람과 삶이 있는 것 같다.

누군가는 결혼생활의 속박이 싫거나 인내심과 배려가 절대 부족해서..

또 누군가는 정말 사랑했지만 삶이라는 현실에서 안맞았거나

아니면 사랑이라 착각한 선택의 비극이거나...

이별의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새로운 시작을 할 때에도..

어떤이는 돌싱임을 숨기려 하고..또 어떤 이는 당당하며..

또 누군가는 더 큰 사랑에 감동을 받기도 한다.

 

우리의 이혼율이 높아지는 것은

한정된 인생의 행복을 보장받기 위해, 아니다 싶으면 바로 결정내리는 

스마트해진 사람이 많아져서일까...

아니면 예전에는 좀 참고 이해하던 부분에 각박해진 

개인주의적 성향이 짙어져서 그런것일까..

분명 이혼이란 부정적인 현상이지만, 

예전 시대에 불행을 견디고도 결혼생활은 유지해야 한다는

유교적 상황을 생각한다면 또 다른 생각이 들기도 한다.

                                                                                                                                                                                                                                                                                                                                                                                                                                                                                                                                                                                                                                                                                                                                                                                                                                                                                                                                                                                                                                                                                                                                                                                                                                                                                                                                                                              

솔직히 말하면 나도 돌싱은 좀... 망설여진다.

돌싱이 뭐 어때-라며 외국사람들처럼 쿨해지고 싶은데..

"그래도 기왕이면.."이라는 생각이 자꾸 앞선다.

내가 결혼 경험이 없는 것에 대한 자부심도 아니고

돌싱에 대한 딱히 편견이 있는 것도 아닌데..이상하게도 그렇다.

돌싱이라는 것 또한 어찌 보면

사랑이라 믿고 선택한 관계의 실패이다.

우리가 남친. 여친과의 관계에 실패했던 경험처럼 말이다.

아이가 있다는 상황은 제외하고 말한다면,

결혼과 같은 제도 즉, 가족간의 큰 이벤트를 경험했느냐 아니냐의 차이일 뿐이다.

그런데 내가 왜 망설일까..곰곰히 생각해보니..

사실 '결혼'이라는 제도를 경험한 것 때문에

걸리는 게 아닌 듯 하다.

누구나에게 결혼은 큰 일이고 평생을 함께 할 반려자를 정하는 중요한 선택인데

남친. 여친이 아니라 그 중대한 결정을 이미 할 정도로 

사랑했던 사람이  이미 한번 있었다는 게 찜찜하고

그게 사랑이 아니었다면, 사랑하지도 않았는데 결혼을 한

그 사람의 선택이 찜찜하다.

그리고 어떤 식으로든 연결 지어질 다른 여자가 있다는 것도 찜찜하다.

나라고 실패할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닌데도,, 이런 마음이 드는 게 희한하다.

이런 찜찜한 마음은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 대한 질투일까.

아니면 누구나 있는 과거를 갖고 시비를 거는 옹졸함일까.

내가 경험하지 못한 것에 대한 열등감일까.

중고차보다는 새차를 타고 싶은 본능일까....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하고

누구나 인생이 뜻대로만 되지 않으며

완벽한 선택을 할 수 없다.

그래서 나는 그들은 편견이나 연민의 눈으로 보는 것을

거두기 위해 조금씩 노력하려 한다.

대한민국에서 너무나도 평범한 영향을 받고 자란 

이 촌스럽고 편협한 시각을 말이다.

 

누군가는 나를 나이 많은 노처녀라 연민의 시각으로 보는 것처럼

누군가는 겉모습만 보고 쉽게 판단하는 것처럼

누군가는 돈이 없다고 사람을 무시하는 것처럼

                                  

누군가는 장애인을 폄하하는 것처럼

우리는 누군가의 색안경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나와 가치관이 다른 사람들의 비판에서 

절대 자유로울 수 없다.

모두가 다 그렇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사연. 이야기를 잘 알지 못한 채

우리 모두 각자의 아픔이 있는데도

자신만의 기준으로 판단을 한다.

원래 그렇다. 그래서 사람이다.

서로서로 그렇다면..뭐 어떤가.

그러므로 남이 날 어떻게 보든지 간에

내면의 아픔..

스스로 치유하며 당당하고 유쾌하게 살아가는 것.

그 속에서 우리는 자유로워질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난 유쾌하게 그들을 환영하고자 한다.

"돌싱들이여, 웰컴투 싱글 마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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