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MBC <진짜 사나이> 여군 특집에서
두 가지 장면이 화제가 되었다.
맹승지라는 개그우먼이 소대장으로부터
팔굽혀펴기 지시를 받았는데
"못하겠다. 무릎을 끓고 하겠다며,
여자는 원래 이렇게 하는 것"이라며 눈물을 보였고,
소대장은 군인이 되라고 했지 남자가 되라고 한 적 없다며
제대로 화를 낸 장면이다.
또 하나는 걸그굽 멤버인 혜리가 훈련을 다 마친
퇴소식 중간에 남자 분대장과 작별 인사를 나누다가
눈물을 흘리며, 앙탈을 부린 장면이다.
두 장면에 대한 시청자와 네티즌의 반응은
다소 엇갈렸지만.. 난 뭐 관심없고
그것과는 별개로 난
군대라는 조직을 사회생활로 이입시켜 보았다.
난 궁금했다.
사회생활에서 눈물, 애교와 같은 여성성은
혹시 정말 효과가 있는 전략은 아닐까...?
40대 초반 여자 선배 은수는
직원 30여 명 정도의 광고 회사 대표이다.
그녀는 본인의 영업 스타일에 회의를 느낀다고 말했다.
원래 본인은 여성스러운 편인데,
많은 남자들과 일을 하고 상대로 영업을 하다보니
일부러 더 남자처럼 행동하게 된다는 것이다.
군대식으로 더 깍듯하게.
말투도 좀더 강하고 털털하게.
마음 상하는 말을 듣고도 웃어넘기고.
남자들에게 '여자'로 보이기보다
'전우' '동료'로 보이고 싶다는 강박
여성성으로 어필한다는 소리를 들을까 두려워
의식을 너무 하다보니,
본인의 남성성이 과도하게 안착이 된 것이다.
물론 그녀의 선택 때문에 별의별 추잡한 일이
다 생기는 업계에서
본인은 단 한번도 삼류 가십이나 구설수에
엮이는 일이 없었지만...
이제 그녀는 어느 순간에 본인이 사회생활을
그리하다보니 본인 성향이 아예 바뀌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다.
사회생활 뿐만 아니라 일상 생활에서도
무의식적으로
남자 처럼 행동하고, 남자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며...
이제는 자기 자신의 진짜 모습도 헷갈린다는 그녀.
반면 동종업계 한 PR 대행사의 40대 중반 여자이사는,
골프 영업의 달인으로 유명하다.
그녀는 오히려 그녀의 여성성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편이다.
고객사와 함께 골프를 치러 가면,
"오빠~ 나이스 샤앗~~"
"어머~ 이 오빠 오늘 왜이랭~~"
술을 함께 마셔도
"지금은 사적인 자리로 생각하고
편하게 술 드시져 오빠~"
이런 식으로 애교와 경계선 모호한 호칭으로
남자들의 마음을 스르르 녹여버린다고 한다.
물론 절대 그 이상의 과도한 행동은 하지 않는다.
단지 그때 남자들이 듣기 좋아할 만한 멘트를
영업차원에서 날려주는 것일 뿐.
어째든 결과적으로 그 PR회사는 불경기인 요즘에도
일이 끊기지가 않는다고 한다.
" 일하는데 여성적인 매력으로 어필하는 건
자존심 상하는 일 아닌가?
남자들이 겉으로는 좋아할지 모르겠지만
결국엔 속으로 그 여자를 다 폄하해.
요즘 남자들이 뒷담화 더 심한 거 알지?
저 여자 헤프네. 가볍네. 생각한단 말이야.
장기적으로는 더 안좋다니까?"
"아니, 어차피 결과물이 중요한 거지.
과정에서 융통성을 발휘하는 게 어떻다는 거야?
수영 강사나 헬스 강사들이 마케팅 차원에서
주부들에게 남성적으로 매력 어필하는거 몰라?
그 사람들이 날 어떻게 말하든지 간에
내가 스스로 당당하면 되고,
남자들의 본능과 단순함을 활용할 수 있는 것도
다 능력 아닌가?"
"일의 퀄리티로 승부해야지.
그런 아양이나 애교 부려서 일할 거면
실력이 아닌 다른 요소로로 승부하는 거나
마찬가지 아니야??"
"답답한 소리 하네.
일의 퀄리티만이라고?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는 건
절대 한가지 요소로 좌지우지 되는게 아니야..
남자들도 영업할 때 아부 떨고 다 해
여자라고 그런다는 걸 이상하게 보는건
여자에 대한 더 큰 차별이란 말이야"
여자 선배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뭐가 정답이라고 말할 수가 없었다.
자신의 가치관과 스타일에 따른 선택을 하는 걸 수 밖에.
어차피 그 많은 선택이 서로 영향을 주면서
사회가 움직이고 삶이 만들어질테니까.
나도 가슴에 손을 대고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 나는 일을 하는 데 있어, 단 한번도 나의 여성성을
어필하거나 이용한 적이 없었는가?
나 또한 페미니즘 성향을 다소 갖고 있는 지라
사회 생활에서 여성으로서 역차별은 자존심 상하는 일이라고
생각한 적이 많았다.
<진짜 사나이>의 소대장이 얘기 한 것처럼
회사는 여자냐. 남자냐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이윤이라는 결과물을 창출하는 '능력'을
요구하는 집단이니,
여자의 매력은 아예 접어두는 게 맞다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결과물을 위한 과정 속에서
나 또한 교모하게 나의 여성성을 사용한 적이
단 한번도 없다라고 말할 수가 없다.
옆 부서의 도움을 급하게 요청할 때,
나도 모르게 눈웃음을 친 적을 있었고
남자 선배가 일을 부탁할 때 업무량을 피하기 위해
체력이 딸린다며 연약한 티를 고스란히 낸 적이 있었고
경쟁 비딩을 들어갈 때 몸매가 드러나는 딱 붙은
스커트를 일부러 입은 적도 있었다.
프로페셔널을 추구하는 커리어 우먼으로서
자랑스러운 일이 아니란 것을 알지만
매 순간 이 모든 것은,
내가 얻고자 하는 목표를 위한 세컨기술이라
합리화했던 것 같다.
아니, 좀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본능적으로 이용했지 이런 합리화를 할
여유조차 없었다.
우리는 살면서 여러 가지 전략을 통합적으로
쓰는 경우가 있다.
한 가지 기술만으로는 경쟁력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각자가 가진 기술을 적절히
때와 장소를 보고 투입시킬 때
우리의 포텐셜이 빛을 발하게 된다.
마케팅도, 기술도 모두가 통합을 외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우리가 가진 여성성 또한
충분히 전략적인 기술이 될 수 있음에
솔직히 동의를 하는 바이다.
그러나 문득,
내가 알고 있는 이 '여성성'이라는 개념 자체가
너무 한쪽으로 치우쳐진 인식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사회생활에서, 프로페셔널을 원하는
비즈니스 무대에서
여성성의 기술은
애교를 부린다던가. 딱 붙은 스커트를
입는 것처럼 일차원적인 기술로 먹히는
만만한 구조가 아닐 것이다.
그러기에 세상은 감정적이면서도 이성적이고
본능적이면서도 너무 똑똑하다.
여성성이란 반드시 남자들과
차별화되는 형태의 것이라기 보다,
보편적으로 여성이 좀더 능숙한 부분을 말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난 그 부분을
간과하고 있었다.
물리적으로 강한 것보다는
내적인 강인함.
부드러우면서도 카리스마 있는 리더십
마음을 열 수 있는 대화의 스킬
공격하기보다 화합하려는 마인드
상대의 감정을 이해할 수 있는 포용력..
보편적으로 구분해 놓은 남녀의 다른 점을
기준으로 했을 때
이러한 것들이 여성들로 하여금
좀더 유리하게 사용할 수 있는 전략이 아닐까.
세상은 투쟁하고 쟁취해서 서로의 것을
빼앗아야 하는 곳이라는 사고방식이나,
여성성이란 애교와 아양, 성적 매력과 연관되어 있다던가
하는 나의 편견 또한 정신적 중세에 머물러 있는
유치한 생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우리 업계 1위의 대형 광고대행사에서
이례적으로 신입사원부터 임원까지
직장생활 25년만에 최초의 여자 임원이 된
여성 리더가 있었다.
그 분은 대외적으로도 능력을 인정 받았고,
내부적으로도 후배들의 전폭적인 존경과
지지를 받는 분이었다.
20대 중반 내가 막 사회생활을 시작할 무렵
그녀의 강의를 한번 들은 적이 있었는데,
그녀는 내가 예상했던 여성 리더의 모습과는 달랐다.
그녀는,
화려한 외모를 가지고 있거나 여성적인 매력이
돋보이는 사람도 아니었고
그 시대에 남자들이 드글거리는 조직문화에서
살아남기 위해
악바리 같은 기운을 가지고 있거나 도도하고 강렬한
인상을 가진 사람도 아니었다.
그저 그녀는 부드럽고 편안하고 차분하고 수수한 사람이었다.
그런 그녀의 첫 모습에 다소 실망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녀의 강의를 들으면서
점점 그녀의 매력과 힘에 빠져들었고
내가 들었던 강의 중에 정말 큰 인상을 받은 스피치 중 하나였다.
담담한 그녀의 말에는 겉으로 보여지는 화려함이나
이색적이고 기발함 보다는
그녀가 그 동안 묵묵히 쌓아왔던 경험과 노력,
그리고 후배에게 들려주고 싶어하는 진정성이
있을 뿐이었다.
그녀의 이야기에서 난,
그 어떤 여성의 매력보다 더 큰 '품위'라는 걸
느꼈던 기억이 있다.
사회에서 남자를 이기고 지고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여자인 것이 변하지 않는 이상
여자로서 이 사회에서 포지셔닝해야 할
나의 모습은,
온전히 나에게 달려 있을 것이다.
진정한 여성성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것을
각자가 세팅해 놓고 나면
아마 우리는 애교나 눈물이 아닌
다른 전략으로도
충분히 우리의 여성성을
어필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