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친구 중에 ‘경자’라는 분이 있다. 그 분은 엄마보다 7살 정도 많은 아줌마이다.
나는 우리 대부분이 엄마의 친구를 그렇게 부르듯 그 분을 ‘경자이모’라고 부른다.
옛날부터 엄마는 경자 이모네는 부자라고 말을 했다.
내 눈에 경자 이모는 보통 아줌마처럼 뽀글뽀글 파마머리에
말솜씨가 걸쭉한 그냥 아줌마처럼 보였는데 엄마는 늘 경자 이모를 부자라고 말했다.
경자 이모네 집에 놀러 가도 대궐 같은 집도 아니었고 고급스러운 수입가구도 없었고,
수입 자동차를 몰고 다니거나 화려한 옷이나 가방을 뽐내지도 않았다.
그래서 어릴 적부터 내 눈에 경자 이모는 대단한 부자처럼 보이거나 느껴지지 않았다.
그냥 경자 이모였다.
경자 이모는 내가 집에 놀러 갈 때면 토마토에 설탕을 뿌려서 주곤 했는데
속으로 ‘경자 이모는 설탕을 참 적당하게 넣는구나. 우리 엄마는 설탕을 너무 많이 넣어서 토마토가 너무
달짝지근한데…’하는 생각을 했었던 거 같다.
경자 이모에겐 아들 두 명과 딸이 한 명 있었다.
제일 큰 오빠, 나랑 동갑내기 둘째 아들, 그리고 막내딸.
어릴 적 장난만 심하게 치는 동갑내기 둘째 녀석보다는 항상 순박하게 웃기만 하는 큰 오빠와 놀고 싶어
오빠의 주변에서 수줍게 서성거렸던 기억이 있다.
오빠는 다정하게 나와 책을 읽기도 하고, 곤충에 대해서 자신의 지식을 총동원해서
아는 체 하며 열심히 설명해주기도 했었다.
내가 열 두 살이 될 무렵, 우리가 서울로 이사를 오고 나서 경자 이모네 놀러 갈 일은 없었다.
어릴 적 엄마 친구 아들, 혹은 동네 친구 정도의 추억만 희미하게 남긴 채 우리는 각자 살아왔다.
그러던 한달 전 나는 엄마를 통해 경자 이모의 소식을 전해 들었다.
막내딸은 무용을 전공하고 교사인 남편을 만나 아이를 하나 낳고 살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둘째 나와 동갑내기 녀석은 대기업에 잘 다니면서 이 여자 저 여자 아직도 연애만 하며
잘 산다고 한다.
나는 큰 오빠의 안부가 궁금했다.
“큰 오빠는? 오빤 어떻게 지낸대? 결혼은 했겠지? 이제 서른 아홉이니까”
오빠는 서른 한 살쯤,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약 8년 전 결혼을 했다고 한다.
경자이모의 친구 중에 진숙이라는 오래 된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의 딸과 결혼을 했다고 한다. 딸은 중학교교사라고 했다.
오랜 친구와 사돈을 맺다니… 참 기분 좋은 일 아닌가.
그러나 이야기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오빠와 여자는 결혼식을 올리고 신혼여행을 떠났는데 이상하게 여자 쪽이 잠자리를 거부했다고 한다.
결혼식 때문에 피곤할 수 있으니 그러려니 했는데 돌아와서도 이상하게 여자는 계속 잠자리를 피했다고 한다.
여자는 학교에서 당직이 잦아지고 친구와 여행을 간다고 집에 하루 이틀씩 외박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상한 느낌을 받은 오빠는 당직이 있다고 한 날 학교에 예고 없이 찾아가봤고,
여자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알고 보니 여자는 오빠와 결혼하기 훨씬 전부터 만나던 2살 어린 연하남이 있었다.
연하남은 같은 학교에 계약직으로 근무하던 체육 교사였다고 한다.
경자이모의 친구이자 여자의 엄마인 진숙이 아줌마는, 자신의 딸을 더 좋은 조건의 집에 시집을
보내고 싶어 했고, 결국 돈 많은 경자 이모 집에 시집을 보내기 위해 억지로 둘을 헤어지게 만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오빠와 결혼까지 하도록 밀어 붙인 것이었다.
결혼을 한 이후에도 여자는 사귀던 남자를 잊지 못하고 계속 몰래 만나온 것이다.
귀하디 귀한 큰 아들을 이 지경으로 만들게 된 경자 이모는 소송을 하겠다는 둥 난리를 쳤는데,
결국 오빠는 소송이라는 것이 당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하는 사람의 마음도 피폐해진다며,
자기는 괜찮으니 이쯤에서 접자라고 얘기했다고 한다.
이후 오빠는 한국을 떠나 베트남에 가서 6년간 일만 죽도록 했고, 배가 나온 아저씨가 되어 한국에 돌아왔다는
얘기가 이 스토리의 마지막이었다.
죽도록 일을 해서 떼돈을 벌었다거나, 완전 예쁘고 잘난 여자를 만나 결혼을 준비 중에 있다는
내용으로 마무리되길 기대했는데…
나는 그 얘기를 듣고
“왠 막장 드라마야! 하여간 대한민국 아줌마들, 속물 근성 때문에
자식 인생 망치고 그것도 모자라서 남의 자식 인생 망치는 사람까지 여럿 있다니까!” 며 흥분하며 욕했다.
실컷 욕을 하며 떠들고 방에 들어왔는데
문득 어릴 적 순박하게 웃으면서 나에게 곤충을 열심히 설명하던
오빠의 모습이 떠올라 마음이 좀 시큰거렸다.
그들의 디테일한 과정까지는 내 알 수 없으나 문득 이런 생각을 해보았다.
능력 없고 술만 마시는 남편 때문에 여기저기 식당 일을 하며 개고생만 하다 보니
딸이 자기처럼 고생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 경제적으로 유복한데
시집을 보내고 싶은 진숙이 아줌마의 마음은
그렇게 욕을 먹을 만한 것인가.
그러한 엄마의 삶을 알기 때문에 성화와 기대를 끝까지 저버리지 못해 결국 엄마가 원하는 결혼을 했지만,
사랑하는 남자를 저버리지 못한 그 여자에게 과연 우리는 돌을 던질 수 있을까.
서른 한 살의 나이에 엄마 친구의 딸과 결혼하면서 자기에게 마음이 없다는 것도 눈치채지 못한
그 둔감함을 멍청하다고 욕할 수 있을까.
그렇게 애지중지하던 큰 아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준 경자 이모의 속 썩은 그 마음을
우리가 헤아릴 수 있을까.
사실 사람의 상황은 입장이라는 만능거울을 비춰보면 이해하지 못할 일이 없다.
다 각자의 아픔 때문에, 각자의 입장 때문에 이해가 충돌하고 상처가 충돌하는 것이다.
사연을 들여다보고 사람을 들여다보면 사실 다 짠하고 다 아프기 때문이다.
사람은 본디 이기적인 동물이기 때문에 자신의 입장, 자기의 상황을 모두 울부짖는다.
모든 이야기들에 변명이 따라 붙을 수가 있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자신의 입장만을 울부짖고 자신의 입장만을 요구하며 살 수는 없다.
그건 욕심이다.
경자이모가 부자라서 딸을 시집보내고 싶은 유혹을 느낀 아줌마의 마음보다 무서운 욕심
내 딸. 우리입장만 생각하는 그 마음의 욕심이다.
물질. 욕망에 대한 그 욕심보다 무서운 것은
남에게 줄 상처따윈 보이지 않은 채 내 입장만 보이는
그 좁고 어리석은 시야가 더 무서운 욕심이다.
누군가가 양보하고 배려하지 못하면 반드시 다른 누군가에게 피해와 상처, 희생을
요구하게 된다. 경자이모의 큰 오빠가 그랬듯이 말이다.
나의 입장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나의 상황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나의 욕심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나보다 남을 더 생각하는 마음’ 이렇게 지극히 단순한 인격의 기준이 모자라
우리는 오늘도 너도나도 자신의 입장만 이해 받길 바라며 욕심을 부리는 삶을 살고 있다.
어쩌면 세상은
자신의 입장만 볼 수 있는 안경을 낀 사람들의 욕심과
남의 입장을 더 보는 안경을 낀 사람들의 상처로 유지할 수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상처는 늘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치유되기 때문에
누군가는 사랑을 갈구하면서 평생을 살아가고
또 누군가는 사랑을 베풀면서 평생을 살아가는 건가 보다.
상황과 입장이라는 지긋지긋한 변명을 둘러싼 채 자신의 욕심만 바라보는
그 모든 사람들에게 우리는 돌을 던져야 할 때가 온 것은 아닐까.
우리 자신에게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