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엘리 Aug 08. 2016

이별사고


후덥지근한 도시.   


지구는 마치 갓 삶아서 손을 댈 수도 없는 감자처럼 뜨거운 열기를 뿜어낸다.  

너무 더운 나머지 지구가 폭발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고,   

해도 해도 너무하다 싶을 무렵, 마침 하나님이   

“인간들아, 고생이 많다. 옛다, 서프라이즈 선물!”이라고 말하는 듯  

마른 하늘에서 예상치 못했던 소나기가 거짓말처럼 쏴아ㅡ하고 내린다.   

3분쯤 지났을까, 하늘은 장난을 치는 것처럼 금새 뜨거운 햇볕이 내리쬔다.    


여자는 창 밖을 바라보다가 문득 자신이 연애를 안 한지 3년이 다 되간다는 생각을 했다.  

시간 참 빠르다. 그와 헤어진 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3년이라니.  

기억을 더듬어보니 그녀가 연애를 이토록 오랫동안 쉬었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5번의 연애를 하면서 이별을 경험한 후에 바로 연애를 시작한 것은 아니었지만  

썸남이든 소개팅남이든 사랑을 찾기 위한 그녀의 노력이 게으른 적은 없었다.  

그런데 이번은 달랐다. 일년 전 그와 헤어지고 나서는 그 어떤 만남과 기회도 회피하고 있는 중이다.    

자신이 왜 이럴까 곰곰이 생각해보던 여자.  

그 동안 교제를 했던 남자들과 이별한 이유를 떠올려 본다.    


첫 번째 남자, 그녀의 첫사랑.  

그 남자는 여자의 대학교 선배였다. 잘생긴 외모와 유머러스한 말솜씨  

여자는 남자를 보자마자 반했고 열심히 주위에서 서성거리다가 연애를 시작했다.  

여자는 너무 행복했고 남자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했다.  

남자는 그러한 여자에게 익숙해졌다.  

남자는 여자의 기대를 충족시켜주지 못했고 여자는 서운함을 표출하며 싸우다 이별했다.    


키가 크고 피부가 흰 두 번째 남자.  

그 남자는 그녀에게 끈질긴 구애를 했고 마음을 뒤늦게 연 여자와 2년간 만났다.   

2년 째 될 무렵, 둘은 각자 취업준비를 하느라 바빠졌고 서로에게 소홀해졌다.  

작은 오해들이 쌓이고 쌓여 그들은 어느 술자리에서 술김에 싸우다가 선을 넘은 멘트에  

서로 상처받아 이별을 했다.    


직장을 다니며 거래처에서 만난 세 번째 남자.  

그 남자는 연하였다. 각자의 경험치를 가지고 여유 있게 때론 열정적으로 연애를 했다.  

여자는 회사에서 승승장구했고, 남자의 회사는 망했다.  

힘겨워하던 남자는 여자와 투닥거리기 시작했고 결국 이별을 선언했다.    


결혼을 할 줄 알았던 네 번째 남자.  

부모님께도 인사를 드리고 상당히 오래 만났다.  

남자는 여자를 사랑했지만 보수적이었다. 여자를 구속하려 했고 여자는 힘들어했다.  

타협점을 찾으려 노력했지만 이들은 결국 결혼이라는 문 직전에서 서로를 위해 헤어졌다.    


결혼을 함께 계획하던 남자와 헤어졌을 때도 여자는 희망을 잃지 않았다.  

이런 과정을 통해 나도 더 괜찮은 사람이 되고 언젠가는 더 잘 맞는 반쪽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다섯 번째 남자를 만났다.    


다섯 번째 남자는 나이차가 많이 나는 듬직한 오빠였다.  

여자는 또 한번 최선을 다했다. 본인이 할 수 있는 선에서, 본인만의 방법으로.  

그러던 어느 날 남자가 몰래 다른 여자를 만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충격을 받았다. 한참 좋아하고 아끼던 마음이 진행되고 있던 와중에  

아주 노골적으로, 형편없는 방법으로 남자의 외도를 목격하게 되었다.  

여자는 한동안 울었고 한동안 아픈 뒤 남자와 이별했다.    



우리는 사랑하고 받는 존재이며, 사랑으로 상처를 치유하므로 또 사랑을 한다.  

그런데 왜 나는 지금 사랑을 하지 않는 것인가,  

아니, 왜 사랑을 하려고 하지 않는 것인가.  

여자는 생각해본다.    


사랑이 지쳐서 감정소모를 하고 싶지 않은가?   

지금 이대로도 충분히 편하고 만족스러워서인가?  

사랑을 할 만한 사람을 찾지 못해서인가?  

나이를 먹어서 사랑이 무의미하게 느껴지는 것인가?  

일이 바빠서 여유가 없어서인가?    


주변 사람들이 왜 연애를 안 하냐는 질문에 위의 것들 중 하나 정도를 골라  

적당하게 써먹었던 것 같다.  


그러나 오늘 여자는 스스로에게 직접 질문을 던져본다.  

“너는 왜 사랑하려 하지 않는 것인가?”    

물론 사람들에게 대답했던 위의 이유들도 복합적으로 드는 마음이기는 하나  

찬찬히 마음을 들여다보니, 여자는 느낀다.  


“나는 아직 두렵다”    


이 전에 했던 이별들이 상처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이별은 늘 그렇듯 유쾌할 리가 없으며, 가슴 저리고 힘들고 아프다.   

첫 번째 사랑,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모두 아프고 힘들었다.  

그런데 왜 여자는 마지막 이별 경험 때문에 이토록 오랫동안 두려움과 겁을 내고 있는 것인가.  


그것은 마치 이별사고와 같았다.  

이 전의 이별들은 일방적이고 고의적인 이별이 아니었다.  


어리고 미숙하다는 이유,  

누군가가 누구를 더 좋아한다는 이유,  

크고 작은 오해가 생겼던 상황과 현실,  

노력했지만 서로 다르기에 맞추기 힘들었다.  

당시에는 이러한 이유들로 인해 이별을 했고 아팠지만   

시간이 지나면 각자의 미숙함과 차이점, 상황과 오해를 이해할 수 있었기에 용서할 수 있었다.  

그래서 추억으로 남기고 또 다른 사랑을 시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3년 전 그녀가 경험했던 것은 오롯이 한 사람의 고의적인 배신으로 경험한 이별이었다.  

뜻하지 않게 당한 사고와 같았다.    


길을 걷다가 누군가의 실수로 혹은 나의 실수로 교통사고를 당한 것과  

누군가 나를 향해 차를 돌진한 것 정도의 차이랄까.   

똑같이 교통사고를 당했지만 육체적으로 난 상처, 마음의 상처는 다르다.  

전자의 경우 시간이 흐르면 이해하고 용서할 수 있지만,   

나를 다치게 하기 위해 운전대를 잡은 자는 용서하기 힘들다.  


모두 이별이고, 모두 아픔이지만  

마지막 이별이 여자에게 남긴 것은 사랑했던 사람을 용서할 수 없기에   

마음에 남은 사고의 후유증과 같은 것이다.     


우리모두 어릴 때가 있어 미숙할 때가 있고  

그래서 이기적일 때가 있어 누군가에게 의도하지 않은 상처를 줄 때가 있다.   

하지만 상대에게 상처가 된다는 것을 분명 알면서 하는 행동들은  

누군가를 향해 고의적으로 공격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여자는 그 고의적인 이별 사고의 충격 때문에  

아직 사랑을 시작하기 위한 운전대를 잡지 못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고의적이고 의도적으로   

아니면 설사 다치게 할 의도가 없었다 하더라도,  

사고의 위험성이 뻔하게 높은 행동을 한다는 것,   

누군가를 상처 준다는 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형편없고 위험한 행동일지도 모른다.    


그녀의 이별 사고가 완전히 잊혀지지는 않겠지만  

마른 하늘에 거짓말처럼 내린 소나기처럼  

오랫동안 말라있던 여자의 마음에도 갑작스럽게, 혹은 서프라이즈 선물처럼  

사랑이 찾아오기를.  


또 다시불안할 때도 있겠지만 여유가 생기는 그날까지  

다시 한번 행복한 삶의 드라이브가 시작되기를 기도한다.

작가의 이전글 욕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