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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희섭 Sep 23. 2015

내리막길을 내려가는 오토릭샤처럼

인도 리시케쉬

색이 바랄대로 바란 체크무늬 와이셔츠는 겨드랑이 부분이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고 코털이 머리까지 나있는 듯 한 지저분한 얼굴에는 파리 여섯 마리가 꼬여들었다. 이홍렬을 쏙 빼닮은 릭샤왈라는 내리막길에 들어서자 릭샤의 엔진을 꺼버렸다. 언제 어디서나 한 푼이라도 더 벌겠다는 생각으로만 골통이 가득 차있는 인도식 사기꾼들에게 진절머리가 나있던 나는,

“아이쿠, 부지런도 하셔요. 큰 부자 되시겠습니다.” 라고 비꼬며 혼자 만족하고 있었다.


그러자 콧덜쟁이 릭샤왈라는 이렇게 말했다.     

“자, 마이 프렌드. 이것 보시오. 룩 앳 디스. 시동을 껐지만 릭샤는 알아서 내려가고 있지 않소.”      

이홍렬을 쏙 빼닮았기 때문일까. 칠년 전 여름, 스무 살의 내가 리시케쉬에서 만났던 릭샤왈라의 얼굴이 아직도 선하다. 그로부터 칠년이 지나 그 아저씨처럼 얼굴에 털이 자욱한 아저씨가 되어, 나는 다시 이곳에 와있다. 마치 지난 칠년 동안 나는 이곳에 쭉 살았던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익숙한 리시케쉬의 골목들을 걷는다.


칠년 전에 저기 서서 장신구를 팔고 있던 사람이 여전히 같은 자리에서 같은 장신구를 팔고 있다. 모퉁이 찻집에서 짜이를 끓여 팔던 사람은 여전히 그 자리에서 짜이를 끓이고 있다. 칠년 전에 이곳에서 길을 잃었던 여행자는 같은 장소에서 또 길을 잃었다. 당연한 걸까. 시간은 사람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키는 걸까. 정말이지, 삶은 변하는 것이긴 한 걸까.


저 두건 할아버지는 칠년 동안 그 자리에서 그 표정으로 은색 깡통을 들고 있다.(두건 색깔은 노란색에서 빨간색으로 바뀌었다. 돈벌이의 보람이란 그런 게 아닌가!)

뭐가 그리 괜찮은지, 연거푸 “fine, fine.”하고 말한다. 할아버지. 칠년 후에도 그 자리에서 "fine, fine.”하며 돈벌이를 하고 있을까. 어지간한 두건 할아버지도 죽음을 피할 수는 없으리라- 그의 얼굴엔 정말로 7년 전엔 없던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져있었다.     

탈탈탈- 죽음을 향하여 흘러내려간다.

어쩌면 내리막길을 내려가는 릭샤처럼 그저 흘러가는 것, 아무런 힘을 주지 않아도, 엔진을 켜거나 가속페달을 밝지 않아도 정해져 있는 길로 흘러흘러 내려가다가, 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끝이 나는 것이 삶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이른 아침부터 사람들이 분주하게 락쉬만줄라를 오간다. 참 예쁘게 만들어진 현수교다. 이름마저 예쁘다, ‘락쉬만줄라’.


특정 사물만이 줄 수 있는 특정한 생각이랄까 이미지랄까. 그런 거 있지 않나. 락쉬만줄라 한쪽 끝단의 허름한 독일식 빵집에 앉아 무심히 걸으며 다리를 건너는 사람들을 보고 있노라면, 언제라도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아무런 욕심 없이, 그래서 아무런 수고로움도 없이 느릿느릿 걸을 수 있으면 좋겠다.

          


너의 모습과 너의 몸짓은 어쩌면 이렇게 자연스러우냐 소리없이 기고 소리없이 날으다가 되돌아오고 되돌아오고 무수한 하루살이 -그러나 나의 머리 위의 천장에서는 너의 소리가 들린다- 하루살이의 반복이여.

김수영, [하루살이]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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