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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지 Apr 11. 2021

트레킹 쉬는 날인데.... 19km를 걸었다

허머스, 바다, 그리고 사막: 이스라엘 내셔널 트레일 1,000km 10

우리는 함께 사막을 걸었어: 이스라엘 내셔널 트레일 1,000km (9)

오늘은 19km를 걸었다. 트레킹을 쉬는 날이었는데.      


미그달에서 우리가 걸어온 방향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기노사르(Ginosar) 마을이다. 기노사르 마을에는 술집에 딱 하나 있는데, 그 집 주인이 트레일 엔젤이다. 미리 연락을 하면 술집 뒷마당에 텐트를 치고 잘 수 있다. 그리하여 만들어진 오늘의 계획. 2km 거리의 기노사르 마을로 걸어간다. 쉬엄쉬엄 놀다가, 술집 매상 좀 늘려주고 (그리고 그 핑계로 술을 맛있게 마시고) 뒷마당에서 잔다.      


“예수가 빵과 물고기를 불려 5,000명에게 먹인 이야기 알아?”

휴대폰을 들여다보던 D가 묻는다. 그 이야기는 아는데…. 무슨 말을 꺼내려고? 나의 평화로운 하루 계획을 망치는 말은 하지 말렴.       


“그 일이 벌어진 마을이 토브가(Tabgha)라는 곳인데. 여기서 멀지 않아. 걸어 갈만한 거리야.” 

“걸어 갈만한 거리라고 하면 몇 km쯤 인지 가늠할 수가 없잖아. 지금 우리에게 걸어가지 못할만한 거리가 뭐야. 이스라엘 북쪽 끝에서 남쪽 끝까지 걷고 있는 마당에.” 

“6km.”      


종교는 없지만 호기심은 있다. 갈릴레호 호숫가를 지나, 우거진 갈대밭을 거쳐, 오르막길을 지나, 흙길과 숲 사이를 따라가다 도로 길을 한참 걸으니 교회가 나왔다. 트레킹 시작 이후 처음 보는 한국인들 사이에 껴서 교회를 구경했다. 다시 도로를 걸어, 숲과 갈대밭을 지나, 갈릴레호 호숫가를 따라 걷다가 기노사르로 돌아왔다. 


예수가 빵과 물고기를 불려 5,000명에게 먹였다는 토브가. 




아직 문을 열지 않은 대낮. 술집 마당에는 우리뿐이다. 


옆집 식료품점에서 산 와인을 땄다. 와인 병을 다 비웠는데도 술집 문이 열리는 8시까지는 한 시간이 남았다. 맥주를 한 캔 따서 천천히 마셨다. 주위는 깜깜하고 조용하다. 구글 리뷰에 따르면 목요일인 오늘, 이 술집에서 라이브 공연이 열린다. 작은 파티 분위기도 난다고. 믿기지가 않는다. 30여 분만 더 있으면 이 깜깜하고 적막한, 아무도 없는 마을 한 가운데서 파티가 열린다고?     


마지막 남은 맥주 한 캔을 둘이 나눠 먹고 술이 똑 떨어졌을 무렵, 술집의 주인이자 트레일 엔젤인 조세프가 도착했다. 조세프를 따라 술집으로 들어갔다. 생맥주를 주문했다. 시원하다. 부드럽다. 짜릿하다. 이스라엘 물가는 정말 비싸고, 맥주도 그러하다. 나흘 치 쓸 돈을 하룻밤에 다 써버렸다. 뭐 어쩌겠나. 이렇게 맛있는 생맥주라면 마시는 수밖에. 


갈릴리 호수


나름 기대했던 파티는 열리지 않았다. 동네 주민들이 삼삼오오 모여 당구를 치고, 핑퐁을 치고, 다트를 던지고, 술을 마셨다. 주인 조세프가 저녁 내내 노래를 불렀다. 유튜브로 가라오케 MR을 틀어놓고. 구글 리뷰에서 말하는 ‘라이브 음악’이 저거였나보다.      


“근데 D, 조세프 노래 진짜 못하지 않냐. 너보다 더 못하는 거 같아.” 

“근데 어쩜 저렇게 꿋꿋이 부르지.”

“즐거운가보지. 노래 부르는 게.” 

“하긴, 우리라고 뭘 잘한다고 하냐. 그냥 좋으면 하는 거지. 걷는 것도. 여행하는 것도.”     


기노사르의 술집 뒷마당. 텐트에 나란히 누워 조세프의 끔찍한 노래 실력을 욕한다. 쉬는 날까지 많이 걷긴 했지만 좋은 휴식이었다. 갈릴레오 호숫가에서 머무른 평온한 시간. 맛있는 맥주. 야외지만 편한 잠자리. 조세프의 음정 박자 하나도 안 맞는 노래도 오늘 밤의 분위기엔 왠지 어울린다. 


오늘의 쉴 곳. 기노사르 마을 술집 뒷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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