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의 타락
책을 읽지 않는 사회의 미래는 결코 밝을 수 없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단순히 책장에 인쇄된 활자들을 눈으로 읽어 내려가는 행위가 아니며, 단순히 정보를 습득하기 위함은 더더욱 아니다. 정보습득이 목적이라면 그냥 인터넷을 뒤지는 것이 수백 배는 효율적일 것이다. ‘독서’에 대한 오해는 바로 이러한 지점들에서 발생한다.
사실 ‘진정한 의미의 독서란..’ 따위의 설명조차 필요치 않다. 단순하게 ‘독서’란, 책장에 인쇄된 작가의 주관적 의견이나 객관적 정보를 눈과 머리 그리고 가슴으로 받아들이는 일련의 육체적 행위이다. 눈으로 읽힌 그것은 머리, 엄밀히 말하면 독자의 뇌 활동을 통해 자체적으로 해석되고, 그렇게 해석된 그것은 가슴, 그러니까 독자의 마음 혹은 내면으로 이동되어 몸 깊숙이 남을 것은 남고 걸러질 것은 걸러지는 과정을 거친다. 우리는 이 전체적인 프로세스를 ‘독서’라는 행위로 봐야 할 것이며, 그렇기에 “나는 한 달에 스무 권 정도의 책을 읽습니다” “만권의 책을 독파한 독서의 신!” “우리 아이는 하루에 최소 한 권 책을 읽습니다!” 따위의 이야기는 어찌 보면 일종의 철없는 ‘개소리’라고 볼 수 있다.
우리는 왜 ‘몇 권의 책을 읽었는지’에 그토록 집중하는가. 그리고 우리는 왜 그것을 남들이 알아주기를 바라는가. 우리는 왜 우리 아이들이 책을 많이 읽기를 바라는가. 아이의 눈이 책에 가 있다고 해서 그것이 이 아이가 제대로 된 독서를 하고 있는 거라고 믿는 것인가. 정말로 그렇게 믿는가? 내 아이가 이번주에 열 권의 책을 읽었으면, 한주에 한두 권 읽은 다른 아이보다 우월한 것인가?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 것인가?
질보다 양을, 보이지 않는 것보다 보이는 것을, 가치보다는 물질을 중시하는 사회 풍토가 개인의 발전과 사회의 발전, 더 나아가 국가의 발전에 여전히 제동을 걸고 있다. 하긴, 단 한 번이라도 이 사회가 양보다 질을, 보이지 않는 가치를 중요하게 여겼던 적이 있던가. 이것은 어떤 특정 주체가 단시간에 바꿀 수 있는 문제가 결코 아니며 궁극적으로는 개개인의 의식과 행동이 진정으로 변화되어야 변화시킬 수 있는 이슈이다.
안타까운 것은, 지하철에 타고 있는 지금도 내 눈앞에는 스마트폰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고, 나조차도 방금 전까지는 멍하니 인터넷 연예뉴스란을 보고 있었다는 것이다.
책을 읽지 않는 사회의 미래는 결코 밝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