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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작 Feb 02. 2024

사랑을 무게로 안 느끼게

박완서 『사랑을 무게로 안 느끼게』& 강작 오마주 에세이

{이 글은 박완서 작가의 신간 에세이 사랑을 무게로 안 느끼게를 오마주 하여 쓰인 에세이입니다.} 


사랑, 비로소 강하고 아름다운 결정체로



어느덧 2월이 됐다. 이 즈음 저녁 산책을 나가면 코끝을 꽁 얼게 했던 쌀쌀한 바람이 한결 부드러진 것을 느낀다. 뉴스 기상캐스터가 '입춘입니다'하기 전에 몰래 숨겨놓고 먹는 사탕처럼 봄을 느끼는 게 좋아서 나는 어제도 일부러 저녁 늦게까지 도서관에 있다 집에 돌아가는 참이었다. 그렇게 기분 좋게 집으로 막 들어왔는데 휴대폰 벨이 울렸다. 맨날 전화 오는 남편이겠거니 생각하고 느릿느릿 휴대폰을 꺼냈다. 그런데 대학 동기였다. 오랜만이기도 하고 내가 먼저 연락을 하지 않으면 도통 깜깜무소식인 친구라 휴대폰에 뜬 이름을 보고 놀라 나는 잠시 망설이다 통화 버튼을 눌렀다. 


- 여보세요? 지혜야, 나 민지야.

잡음이 함께 들리는 걸 보니 운전 중인 모양이었다. 

- 와 민지야! 반갑다! 퇴근 중이야? 

나는 반가워서 가방만 내려놓고 그대로 선 채 물었다.  

- 아.. 니.. 

평소 당당하고 유쾌한 그녀의 목소리가 힘없이 축 처져있었다. 

- 응? 그럼 어디 다녀오는 길이야? 무슨.. 일 있어? 

순간 나는 친구의 촉으로 그녀에게 심각한 일이 생긴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친구는 더듬더듬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지난주 수요일, 아버지가 여행을 갔다가 낙상을 당해 뇌를 크게 다쳤고 긴급 수술을 받은 뒤 현재 중환자실에서 의식을 찾지 못하고 계신다고 했다. 의사가 말하길 아버지 우뇌의 일정 부분이 이미 많이 죽어서 현재는 의식이 돌아올 때까지 수면 치료를 하는 것밖에 도리가 없다고 했다며 친구는 기어코 참던 울음을 터트렸다. 

나는 다리에 힘이 풀려 풀썩 주저앉았다. 내가 충격으로 말이 없자 친구는 내게 3년 전 너희 어머니도 이런 비슷한 일을 당하지 않았냐, 지금 자신은 너무 힘든데 그때 너는 어떻게 마음을 버텼느냐고 물었다. 


그렇다. 내게도 비슷한 일이 3년 전에 있었다. 평소처럼 출근해 평소처럼 일하다가 갑자기 걸려온 전화 한 통에 가방만 들고 수술실로 뛰어간 날. 엄마가 여행 중 낙상 사고로 척추가 부러져 하반신 마비 통보를 받은 날. 그 후 일을 그만두고 한동안 엄마를 간병하며 병원에서 지내던 날들이. 벌써 3년 전의 일이 됐고 당시 내게 위로의 전화를 주었던 친구가 그때의 나와 같은 상황이 된 것이다. 


그때의 나.. 내가 어떻게 마음을 버티었나.. 3년이란 꽤 긴 시간이 지났지만 나는 바로 어제의 일처럼 그날들을 기억하고 있다. 한마디로 정의하면, 그곳은 다른 세상이었다. 내가 30여 년을 살면서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세상. 저승과 이승 사이에 존재하는 믿기지 않는 유령 같은 세상. 어제까지 내게 아침밥은 꼭 챙겨 먹으라고 잔소리를 하던 엄마가 오늘 입에 산소호흡기를 차고 피멍이든 팔목엔 두꺼운 링거를 꽂고 움직일 가망이 없다는 다리엔 이상한 기계를 찬 채 누워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뉴스와 드라마 속에서나 일어날 것만 같았던 일이 사실은 우리의 아주 가까운 경우의 수로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간병을 하며 나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엄마에게 필요한 물건을 사러 병원 밖을 나왔다. 이승엔 어느새 벚꽃이 만개한 봄이 와 있었다. 신호등 건널목엔 오피스룩을 차려입은 직장인들이 여럿 모여 있었다. 그 사이에 나는 창백한 얼굴에 머리카락을 하나로 질끈 묶고 한 손에 성인용 기저귀가 들어있는 검은 비닐봉지를 들고 서 있었다. 지난주까지만 해도 나도 그들과 전혀 다르지 않은 세상 속 사람이었데... '그러니까 피곤한 얼굴로 오늘도 회사에 가서 해치워야 할 일을 생각하다 나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는 일, 그럼에도 잘 차려입은 오피스룩처럼 나 자신이 해낼 일에 대한 뿌듯한 사명감을 갖고 구두굽을 바닥에 부딪히며 당당히 걷는 일, 늘 작은 걱정들이 있었지만 하늘이 무너질 듯한 큰 걱정은 없이 누군가가 안부를 물으면 '별일 없이 살아요.'하고 말할 수 있는-' 그런 세상 속 평범한 사람이었다. 


친구가 내게 그때의 나는 어떻게 마음을 버티었냐 물었을 때, 그 순간이 떠올랐다. '저기요, 초록불이에요.'하고 누군가 등을 툭 밀었을 때- 눈물로 범벅된 채 서둘러 건너던 순간을. 병원에서 지내던 약 3개월 동안 나는 이렇게 의사가, 간호사가 그리고 아픈 엄마가 내 등을 툭 밀었을 때야 비로소 움직일 수 있었다. 도저히 이 세상을 와보지 않았던 사람들이 '엄마를 위해서 네가 마음 단단히 먹고 이성적으로 행동해야 해.'라고 말하는 조언처럼 잘 지내지 못했다. 그때의 나는 엄마가 고통 속에서 죽고 싶다고 말할 때마다 이를 깨물고 병원 비상구 계단에 앉아 '내가 얼마나 이기적인 사람이 되어야 사랑을 단단히 지킬 있을지'를 먹먹한 허공에 물으며 눈물을 흘렸다. 사랑은 너무나 크고 무거워서 나는 그 사랑을 지켜내는 것이 두렵고 힘들었다. 


"부모의 보살핌이나 사랑이 결코 무게로 그들에게 느껴지지 않기를, 집이, 부모의 슬하가, 세상에서 가장 편하고 마음 놓이는 곳이기를 바랄 뿐이다."

- 박완서 사랑을 무게로 안 느끼게』 중에서


 박완서 작가님의 신간 사랑을 무게로 안 느끼게를 읽기 시작하면서 나는 계속 의문이 들었다. 어떻게 사랑을 무게로 안 느끼게 한단 말인가? 사랑은 어쩔 수 없이 무겁고 버겁고 힘든 것인데 어떻게 사랑을 하면서 편안한 마음속에만 있을 수 있단 말인가? 


"1988년엔 남편과 사별하고 난 지 얼마 안 있어 다시 오 남매 중 외아들을 잃는 참척을 겪었다. 그 애 없는 세상의 무의미함도 견디기 어렵거니와 도대체 내가 뭘 잘못했기에 이런 벌을 받나 하는 회답 없는 죄의식과 부끄러움은 더욱 참혹하다. 남들은 회개도 잘하고 양심선언도 잘하는데 나는 어떻게 생겨 먹은 인간인지 이런 모진 벌을 받으면서도 아직도 뭘 그다지 잘못했는지 알아내지 못하고 있다. 도무지 내 탓이오가 안된다. 내가 남보다 도덕적으로 살았대서가 아니라 부모가 먼저 죽고 자식이 나중 죽는 것은 평범한 사람 누구나가 누릴 수 있는 순리라고 여겨서이다. 그래서 더욱 내가 당한 남다른 역리가 부끄럽고 사람을 피해 혼자 있어도 하늘땅이 부끄럽다. 예전부터 나에게 중요한 의미를 지녔던 것들이 그 애를 잃고 나자 하나도 중요하지 않게 된 것도 깨달음이라기보다는 일종의 낯섦이어서 남들과 조화를 이루는 데 불편할 적이 많다."

-박완서 사랑을 무게로 안 느끼게 내가 걸어온 길, 1991년

  

아들의 죽음을 담담하게 써 내려간 듯한 이 페이지를 나는 여러 번 다시 읽었다. 그리고 책 속의 박완서 작가님에게 물었다. 사랑을 무게로 안 느끼게 하려고 했던 작가님의 노력은, 본인의 삶에도 적용이 되었냐고. 누구의 잘못도 아닌, 삶 그 자체가 작가님의 사랑을 가장 마음 놓이는 편안한 곳에 머물게 했느냐고. 


그때 불현듯 병원에서 엄마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내가 엄마의 식사를 도운 후 병원 바닥에 식판을 두고 허겁지겁 점심을 먹고 있을 때 엄마가 내게 말했었다. 


- 지혜야, 천천히 먹어. 미안해 엄마가. 엄마.. 해볼게. 노력해 볼 거야.


나도 울고 엄마도 울고 사랑하는 만큼 우리는 펑펑 소리 내 울었다. 그 후 엄마는 더 이상 죽고 싶다는 말을 하지 않았고 힘을 냈고, 일어섰고, 조금씩 발을 내딛기 시작했다. 나도 더 이상 눈물을 보이지 않았고 할 수 있다고 좀 더 좋아질 거라고 용기와 희망을 나 자신과 엄마에게 말하기 시작했다. 그때 나는, 사랑은 때론 삶의 어느 지점에서 버거울 정도로 무겁지만, '사랑을 무게로 안 느끼게'하려는 우리의 노력으로 사랑이 비로소 강하고 아름다운 결정체가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반신 마비를 선고받고 6개월 뒤, 엄마는 나의 부축을 받으며 그녀의 두 발로 걸어 병원 밖을 나왔다.


그때 나는, 사랑은 때론 삶의 어느 지점에서 버거울 정도로 무겁지만, '사랑을 무게로 안 느끼게'하려는 우리의 노력으로 사랑이 비로소 강하고 아름다운 결정체가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2002년 출간된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세계사)를 재편집한 이번 신간, 사랑을 무게로 안 느끼게에는 故박완서 작가님의 미출간 원고를 포함해 총 46개의 글이 실려있다. 살아생전 겪은 일상의 에피소드들과 작가님 생의 깊숙한 이야기까지 많은 글이 담겨있는데 그중 '사랑을 무게로 안 느끼게'라는 꼭지가 어떻게 이 책의 제목이 되었냐는 책을 끝까지 읽다 보면 자연스레 알게 된다. 


마지막 장을 넘기며 내가 느낀 바- 그녀는, 사랑을 무게로 느끼는 분이었다. 아리땁고 친절한 젊은 이웃이 암에 걸렸다는 소식을 듣고 자신이 더 살고 싶은 과욕을 줄여 그 여자의 목숨에 보태고 싶다는 사람이었고, 아들의 죽음에 참혹한 죄의식과 부끄러움을 느끼며 살아가고, 자신이 자식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혹 무거운 책가방이 될까 염려하는 사람이었다. 내가 느낀 박완서 작가님은 누구보다 사랑을 무게로 느끼기에 '사랑을 무게로 안 느끼게' 살아가고 싶은 분이었다. 


30대 중반이 넘어가니 나도 사랑의 무게가 점점 느껴진다. 부모님이 대한 걱정이 무게로, 남편에 대한 서운함이 무게로, 아직 있진 않지만 자식에 대한 애정이 무게가 될 듯하다. 또 점점 나이들 수록 나 자신에 대한 사랑도 부담과 두려움이란 무게로 다가온다. 하지만, 그 무게를 계절의 순리처럼 흘러 보내어 사랑을 무게로 안 느끼게 될 수 있길 마음 깊이 바라고 있다. 이젠 그것이 이기적인 것이 아닌 어려움을 극복해 낸 아름답고 강한 사랑의 결정체라는 것을 알 것 같기 때문이다. 


친구의 전화를 끊기 전에 내가 말했다. 


- 민지야. 이기적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아버지의 삶에 일어난 사고는 결국 아버지 스스로 이겨내셔야 해. 네 마음이 힘들겠지만 그 사랑의 무게가 네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무거워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꼭 아버지 이겨내실 거야.


그렇게 말은 했지만 밤새 친구가 몹시 걱정되었다. 


남은 자식들이 창의 불빛을 서로 확인할 수 있는 지척에서, 수프가 식지 않을 만한 이웃에서, 이 나라 끝에서, 혹은 지구의 반대 방향에서 돌봐 주고 걱정해 주어 살아 나가는 데 힘이 돼 주고 있다. 나는 자식들과의 이런 멀고 가까운 거리를 좋아하고, 가장 멀리, 우주 밖으로 사라진 자식을 가장 가깝게 느낄 수도 있는 신비 또한 좋아한다. 무엇보다도 나에게 남겨진 자유가 소중하여 그 안에는 자식들도 들이고 싶지 않다. 내가 한사코 혼자 살고 싶어 하는 걸 보고 외롭지 않으냐고 묻는 이가 있다. 나는 순순히 외롭다고 대답한다. 그게 묻는 이가 기대했던 대답 같아서다. 그러나 속으로는 '너는 안 외롭냐? 안 외로우면 바보'라는 맹랑한 대답을 하고 있으니, 이 오기를 어찌할 거나. 

- 박완서, 사랑을 무게로 안 느끼게 내가 걸어온 길, 1991년


우리는 앞으로도 계속 사랑을 할 것이다. 사랑이 아름답고 황홀하고 감동적인 만큼, 그 사랑의 무게가 걱정과 슬픔, 애정 등 여러 감정으로 뒤섞여 무거워질 걸 안다. 그렇게 마음이 무거워질 때마다 이 책을 펼쳐봐야지 싶다. 사랑이- 흐르는 물과 흐르는 구름 흐르는 빛 흐르는 시간 사이로 자유롭게 흘러갈 수 있길- 그렇게 아름다운 모습으로 기억될 수 있길-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있길- 작가님처럼 노력해 봐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박완서 에세이 사랑을 무게로 안 느끼게

본 에세이는 박완서 작가의 신간 에세이 사랑을 무게로 안 느끼게를 오마주 하여 쓰인 에세이입니다. 한국 문학을 대표하는 박완서 작가님의 글과 함께 할 수 있어서 영광이었습니다. 작가님은 우리 곁에 없지만 온 인생 데워온 작가님의 따뜻하고 진솔한 문장들이 늘 가까이에서 더 많은 이들에게 살아있는 희망으로 전해지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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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사진. 강작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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