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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작 Aug 08. 2017

사라져 가는 것들을 쓰다

brunch. around. kangjak

{이 글은 브런치X어라운드 프로젝트를 위해 쓰였습니다.}



사라져 가는 것들을 #쓰다


* 글을 읽으시기 전, 헤드폰이나 이어폰으로 들어주세요. 글은 최대한 천천히 읽어주시면 고맙겠어요.

(음악; 우치_바래다주는 길)



지금 쓰지 않으면, 영원히 사라질 것 같았다. 지금이 아니면, 다시는 보지 못할 것 같았다. 그럼 나는 또 어린애처럼 엉엉 울어버릴 것 같았다. 고작 나라는 사람이 쓴다 해도 사라져 가는 것들은 결국, 사라질 것이다. 그럼에도 늦은 달, 펜을 드는 것은 또다시 마주할 생에 그것들이 다른 모습으로 보여지길 바라기 때문이다.



사라져 가는 것들을 쓰다.





아빠의 웃음  


어린 시절 삐그덕 거리는 문을 열고 아빠가 들어오면 언니와 나는 망아지처럼 뛰어가 그 품에 안겼다. 아빠의 품에선 늘 진한 기름 냄새가 났다. 이곳저곳 검게 묻은 손으로 우리를 번쩍 들어 올려 하늘에 띄우며 아빤, 온 힘으로 우리에게 세상을 보여주었다. 하얗고, 푸르고, 높았던 세상. 그 손에는 우리에게 줄 과자, 아이스크림이 들려있었다. 신나서 환호할 때면 아빠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웃음을 지었다.


여름은 우리 가족이 좋아하지 않은 계절이었다. 사람들이 보일러를 사용하지 않으니 기름 배달하는 일거리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아주 어릴 적에는 그래도 겨울철에 정신없이 벌어서 여름을 충당할 수 있었지만, 도시가스가 들어오고부터 우리 가족에게 여름은 지겹도록 더운 계절이 되었다.


16살의 겨울, 수업을 마치고 집 근처에서 친구들과 놀고 있는데 아빠의 기름차가 보였다. 오르막을 씽씽 오르는 다른 차들 사이에서 아빠의 낡은 기름차는 아주 느리고 힘겨워보였다. 다른 차들이 경적을 울리며 소리쳤고, 작은 창으로 정신없이 핸들을 돌리는 아빠의 모습이 보였다. 나는 아빠에게 달려갔다. 혼잡함 속에서 아빠는 나를 발견하고는 환하게 웃었다. 겨우 오르막을 올라 기름을 넣을 집에 도착했다. 하지만 아빠가 올라야 할 오르막은 한 참 더 남아있었다. 나는 보조석에 앉아 다리를 구르며 아빠가 모아둔 사탕을 오물오물 먹었다. 창 너머로 길고 두꺼운 호스를 어깨에 메고 경사진 오르막을 오르는 조금은, 낡은 아빠가 보였다. 나는 그 자리에서 사탕이 입에서 다 녹기도 전에 송아지처럼 엉엉 울었다. 돌아온 아빠가 왜 우냐고 울지 말라고 했을 때 아무 말도 못 하였지만, 나는 슬펐던 것 같다. 아빠의 웃음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눈으로 보는 것이.


여름은 아프게도 더 더워졌고, 아빠의 한숨은 그만큼 깊어졌다. 어느 여름, 대학교 축제가 끝나고 늦게 집에 돌아왔다. 문틈 사이로 아빠와 엄마가 진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들렸다. 아빠의 낡은 기름차를 폐기하는 게 어떻겠냐는 내용이었다. 나는 두 손으로 입을 가리고 황급히 방으로 들어와 멍하니 벽을 바라봤다. 언제나 집 앞 주차장에 다른 차들의 눈치를 보며 조용히 수그리고 있던 작고 낡은 빨간 차, 그건 단지 생계의 수단이 아니라 아빠, 아빠였기 때문이었다. 바르르 떨렸다.


아빠가 어느 날 시장에서 할 수 있는 찾았다고 말했다. 하루 걸러 하루를 꼬박 새워야 하는 고된 일인데도 아빠는 너무나 좋아했다. 햇빛에 그을린 살결은 점점 진한 갈색으로 변해갔고 하루가 다르게 말라갔다. 그러나 밤을 꼬박 세고 아침에 들어온 아빠의 손에는 녹지 말라고 꽁꽁 포장해온 아이스크림이 들려있었다. "우리 지영이, 지혜 먹으라고 사 왔지. 아빤 너희가 맛있게 먹는 거 보는 게 가장 좋아." 나도 아빠에게 잘 하겠다고 어색하게 말하면 아빠는 내리사랑이라며 너희도 너희 자식들에게 잘 해주라고 말할 뿐이었다.  


고작 나라는 사람이 쓴다 해도 사라져 가는 것들은 결국, 사라질 것이다. 하늘로 띄워주던 아빠의 젊던 순간과 웃음들. 그럼에도 나는 아빠의 사랑을 쓴다. 그날, 송아지처럼 울던 내 등을 도닥이던 아빠의 손이 너무나 따뜻해서 나는 울음을 멈추고 환하게 웃었다.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그의 사랑을 마음에 써놓는다면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란 것을.




진심의 편지


'할머니가 될 때까지 우리 우정 변치 말자', '엄마, 아빠 둘째 딸이 많이 사랑해요. 이다음에 커서 효도할게요.', '자기야, 늘 화내는 나를 참아줘서 고마워. 미안하고 사랑해' 한 장의 종이 위에 진심이라는 진한 잉크로 한 자 한 자 쓴 편지. 내가 깊숙이 밀어 넣어둔 그 편지 꾸러미를 발견한 것은 사무치도록 외로웠던 어느 밤이었다. 메신저 프로필 속에 나는 한 방울의 외로움조차 느끼지 않는 것처럼 활짝 웃고 있었다. 할머니가 될 때까지 우정 변치 말라던 우리는 작은 휴대폰 너머로 서둘러 약속을 정하고는 얼굴을 돌리는 사이가 되어있었다. 행복하세요라는 문구가 적힌 이미지들을 수차례 전송하는 엄마에게는 어딘가 애가 탄 마음이 느껴졌다. 온 마음으로 사랑하던 너와 나는 조그만 대화창 위에서 서로에게 상처를 주며 차가운 이별을 했다. 그리고 나는, 계속 울려대는 메신저와 빡빡한 일정 속에서 문득 우두커니 멈춰서 알 수 없는 눈물을 흘리곤 했다. 그런데 고개를 들어 사람들을 보니 그들의 표정이 나와 많이 닮아있는 것 같았다. 신호등 건너편 우산을 들고 있는 여자도, 지하철 맨 옆자리 꾸벅꾸벅 졸다 일어난 남자도, 공원에서 아이를 무릎에 뉘인 채 한 곳을 응시하는 엄마도.


이러한 마음은 '다음 브런치'에 아날로그북클럽이라는 독서모임을 만든 계기가 되었다. 책 안에 자신의 느낌과 진심을 적어 편지를 보내듯 서로 돌려보는 모임이었고 처음엔 아무도 신청해주지 않는다면 지인들끼리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첫 글을 올린 다음날 꽤 많은 분들이 함께 하고 싶다고 연락이 왔다. 우린 책을 돌려보며 그 위에 진심을 적었다. 하루 종일 모니터 앞에 앉아 정신없이 일했다는 회사원, 수술실 앞에서 부모님을 기다리고 있다는 딸, 꿈을 찾아 헤매고 있다는 학생, 그들은 그동안 마음에만 담고 있었던 진심을 책 위에 한 자 한 자 더해주었다. 마침내 내게 도착한 책을 펼쳐 보았을 때 나는 또 울고 말았지만 그건 외로워서가 아니라 따뜻해서였다.


고작 나라는 사람이 쓴다 해도 사라져 가는 것들은 결국, 사라질 것이다. 두껍아 두껍아 손 등에 손을 대고 나누던 접촉, 우표가 떨어질까 엄지손가락으로 몇 번을 꾹꾹 누르던 순간들. 그럼에도 나는 진심의 편지를 쓴다. 어렴풋이 알 것 같기 때문이다. 세상이 넓어지면 넓어질수록 우리는 서로를 더욱 끌어당기고 싶어 한다는 것을.






사라져 가는 것들을 쓰다.



또다시 마주할



생을 위해.







글. 강작

2017.08.01-08 여름밤.

#쓰다 프로젝트 덕분에 매일 조금씩 더 행복했습니다. 감사합니다.



강작 소속강작 직업아티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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