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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싶지 않지만, 알아야 하는 진실

by 강작

알고 싶지 않지만, 알아야 하는 진실



한 영상을 봤다. 연극이 한참 진행되는 공연장 안. 관객들이 집중해서 연극을 보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막이 내려가고 대피 경보 사이렌이 울렸다. 사람들은 웅성 웅성 공연장을 빠져나갔다. 인근 마을은 이미 불바다가 되어 있었다.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 상황. 한쪽에선 아름다운 공연을 보는 사이, 다른 한쪽에선 아이가 엄마를 잃었다. 부모가 자식을 잃었다.


도서관 강의가 끝난 뒤, 학생들이 같이 식사를 하자고 했다. 선생님이 같이 가면 왠지 학생 중 한 명이 사주는 분위기가 돼서(내가 내겠다고 발버둥을 쳐도), 핑계를 대고 거절했는데 그날은 너무 배가 고파 가겠다고 했다. 자동으로 내 자리가 생일잔치 주인공처럼 가운데가 됐고 나를 둘러싸고 나이가 지긋한 학생분들이 앉았다. 선생님으로서 대화를 주도해야 할 것 같은 압박감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그때 다행히 내 옆에 앉아계신 (아마도) 60대 학생 한 분이 말을 시작했다.


"제가 글쓰기 수업도 듣거든요. 거기서 책을 읽으라고 선정해 주는데, 그 책 내용이 너무 힘들고 싫은 거예요. 그래서 아예 안 읽어요. 작가들은 왜 그런 글을 쓸까요? 정말 싫었어요. 13세 노숙자 이야기. 저는 지금까지 제가 책을 못 읽는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책이 잘 못 했네!"


순간 나머지 학생들이 작가인 내 눈치를 보았다. 도대체 작가란 사람의 입에선 어떤 말이 나올까를 기다리는 듯했다. 그러나 나는 아무 말도 못 하고 먹기만 했다. 사람들은 어색할까 봐 그녀의 의견에 대부분 동조를 해주었고 웃어넘겼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자꾸만 그 물음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작가들은 왜 그런 글을 쓸까요?'


.

.


그러게, 왜 난 하얀 눈을 보면 마냥 아름답게만 보이지 않는지. 그 안에 차갑게 흐르는 빨간 피와 눈물들이 보이는지. 나조차 괴로워서 대답을 할 수 없었다. 마침내 얼음 조각들 틈에서 피어오른 초록의 생명을 보고 안도해서 맥을 이어가는 작가들. 어쩌면.. 작가들이 살고 싶어서, 독자에게 공감을 얻어 작은 위로들을 받고 싶어서 글을 쓰는 것인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아마 말씀하셨던 선생님의 인생도 쉽지 않을 것이다. 살아오면서 뜻밖의 힘듦을 겪지 않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어두움으로부터 멀리멀리 도망가 희망만을 바라보며 나아가고 싶은 마음을 너무나 이해한다.


하지만 글의 마침표를 찍을 때 느끼는 건 어둠을 밝게 만드는 것은.. 도망가는 것이 아닌 바라보는 것과 그 마저 사랑으로 보듬어 살아가는 것이란 힘든 진실이다.


'작가들은 왜 그런 글을 쓸까요?'


자극적인 글을 써서 돈을 벌겠다는 목적도, 사회적 문제를 지적해 평화를 이루겠다는 목적도 아닐 것이다. 그저 그들이 세상을 사랑하는 방식에 용감해지고 싶어서 그리고 대게는 어쩔 수 없어서 그런 것일 수 있다.


겨울이 오고 있다. 추운 계절인 만큼 따뜻하다는 문장이 가장 어울리는 계절. 작가들이 올 겨울엔 더 그 문장을 많이 쓸 수 있었으면, 좋겠다.






글. 강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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