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러운 거? 쌉인정
얼마 전 지인 작가의 출간 소식을 접했습니다. 그는 일필휘지를 하는 천재 작가인 것인지 체감상 1년에 한 번씩 책을 내는 것 같습니다. 결과물이 허접하냐? 그것도 아닙니다. 3년 전 첫 책(우리가 애정했던 아날로그 라이프, '굳이 알려보기')을 내고, 베스트셀러는커녕 출판사로부터 제고가 많다는 소리를 듣고 있음에도 주야장천 원고만 쓰고 있는 제가 작게 느껴집니다. 빠른 토끼와 느린 거북이 같습니다. 그가 부럽고 저 자신이 한심하다는 소리를 이렇게 길게 풀어쓰고 있다니... 제게도 글 쓰는 재주가 있긴 한가 봅니다.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합니다. 그가 부러운 건 당연합니다. 왜냐하면 제가 그와 같은 속도로 인생 레이스를 뛰고 싶었다면, 그가 글을 쓰는 동안 숏츠를 볼 것이 아니라 저 또한 글을 썼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유혹에 흔들리며 시간을 낭비한 점은 쌉인정해야 합니다. 물론 유혹에 흔들리지 않은 사람은 세상에 거의 존재하지 않습니다. 분명 지인 작가도 원고를 쓰는 중간중간 자신의 의도와 다르게 숏츠를 보고 키득댔을 겁니다. 다만, 저보다는 유혹에 반하는 힘이 컸겠지요.
뭔가.. 저 자신이 한심하다고 규정짓기엔 억울합니다. 수많은 변명을 만들어내어 내가 왜 이렇게 느리게 글을 쓸 수밖에 없었는지 동정과 공감을 얻어내고 싶습니다. 몸이 안 좋았고, 다른 일을 했어야 했고, 결혼 생활이 힘들었고 등등. 스스로에게 고개가 끄덕여지는 변명도 있지만 결코 완벽한 공감이 되지 않습니다. 마치 거짓말탐지기 위에 손을 얹어놓고 결국엔 찌릿함을 맛보는 듯합니다. 역시 우리는 스스로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럴 수 있었지만, 그렇지 않고 유혹에 흔들렸던 시간들'을요.
모든 것에 부럽진 않습니다. 저는 노래라는 영역에 관심이 없습니다. 그래서 노래를 잘 부르는 사람이 전혀 부럽지 않습니다. 반면 작가 활동, 대화 기술, 매너 있는 태도, 건강한 몸 등은 관심이 있기에 이런 부분에서 훌륭한 분들을 만나면 마땅히 부럽습니다. 부러움을 느낀다는 것은 내가 관심 있는 분야가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부러울 것이 없는 사람은 세상에 아무것도 관심이 없는 조금은 가여운 사람입니다.
관심분야에서 내가 부러워하는 이의 기준과 나 자신의 기준이 다를 수도 있습니다. 자산불리기에 관심이 많은 두 사람이 있습니다. 한 사람은 20살에 100억대 자산가가 되는 열망을 갖고 있고 다른 한 사람은 80살에 이루어도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누가 더 낫다는 것은 없습니다. 인생에 있어서 어떤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느냐에 달려있습니다. 베스트셀러 100권 쓰는 게 좋은 사람이 있고, 죽기 전에 딱 한 권만 성공시키고 인생 나머지 시간은 다른 데 쓰는 게 좋은 사람도 있습니다. 관심사가 무엇이냐, 그 관심사에서 어떤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느냐, 목표를 어느 정도에 두느냐에 따라 각 성공의 모양과 부러움의 유무 및 크기가 달라진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저의 경우는 지인 작가가 확실히 부럽습니다. 제가 그처럼 일 년에 한 권씩 출간하겠다는 목표를 가진 것도 아니고, 그와 같은 분야를 쓰겠다는 것도 아니지만 부럽습니다. 생각해 보니 출간이 부러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그가 '시간을 건강하게 쓰는 행동'이 부러운 것입니다. 만약 그처럼 출간은 못해더라도 스스로에게 있어서 시간을 건강하게 써왔다고 인정이 된다면 부럽지 않을 겁니다.
25년의 하반기가 된 지금, 지금껏 열심히 살아온 나 자신을 칭찬하고 감사합니다. 종종 시간을 헛되게 쓰다 보니 글은 원하는 만큼 충분히 못썼지만 이외에 작고 크게 이룬 것이 많습니다. 작가 활동에 있어 서툴고 느린 거북이 같은 모습을 격려합니다.
부러운 것은 부러워합니다.
인정할 것은 인정합니다.
반성할 것은 반성합니다.
나는 나만의 속도로 나만의 길을 간다고 외치며, 외면해 왔던 부러움을 직면하고 받아들이니 오히려 마음이 편안합니다. 나만의 길을 좀 더 부끄럽지 않게 걸어갈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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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강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