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푸드디렉터 김유경 Apr 05. 2021

돈과 마카롱

푸드디렉터 김유경이 바라보는 세상

립스틱 효과 (Lipstick Effect) 라는 말이 있습니다. 경제가 불황일 때 립스틱이나 넥타이 같이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하면서도 소비자 만족도가 높은 작은 사치품의 판매량은 오히려 늘어나는 특이 현상을 말하는데요, 이는 1930년대에 미국이 대공황 속에서도 립스틱의 매출은 반대로 증가하면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이를 한국인의 언어로 바꾸면 소소하고 확실한 행복, 즉 ‘소확행’ 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입 안에서 상큼하게 터지는 샤인머스켓 한 송이, 설탕을 톡톡 두드려 깨먹는 크렘브륄레 (Crème brûlée) 한 입, 힘차게 차오르는 샴페인 한 잔. 저렴하진 않지만 마음만 먹으면 소비할 수 있는 ‘작은 사치품’은 인간이 돈으로 구입할 수 있는 행복 중 하나입니다. 돈은 그 자체로 인간에게 행복을 주지는 않지만, 무언가를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줌으로써 행복을 느끼게 해주는 수단이 되기 때문입니다. 언젠가부터 ‘소확행’, ‘작은 사치’의 대표적인 대상이 된 것을 꼽자면 마카롱을 들 수 있습니다. 

몇 년전에는 미국에서 30가지 맛의 마카롱 200개가 담긴 보석 상자 (Treasure Chest)가 $900불에 출시되면서 업계에 큰 이슈를 가져오기도 했습니다. 마카롱의 어떠한 특별함 때문에 사람들은 열광하기 시작했을까요?



메디치 가문의 마지막 혼수품, 마카롱 

입에 넣는 순간 바스락 부서지는 꼬끄 (Coque)와 피에 (Pied) 속에서 퍼지는 달콤하고 부드러운 필링 (Filling). 프랑스의 대표 디저트로 알려져 있는 마카롱은 사실 이탈리아에서 유래되었습니다. 마카롱의 전신은 8세기에 이탈리아 베네치아 수도원에서 만든 바삭한 쿠키, 아마레티 (Amaretti)에서 비롯되었는데요. 아마레티는 아몬드 가루를 머랭 반죽에 넣어 구운 과자입니다. 머랭은 속이 비어있다고 느낄만큼 가볍지만, 아마레티는 아몬드 가루가 머랭의 밀도를 더 올려주어 머랭에 비해 묵직하고, 씹었을 때 입 안을 더욱 가득 채워줍니다. 당시에 가나슈나 잼, 크림 등은 넣지 않았습니다. 

https://theculturetrip.com/europe/france/paris/articles/the-history-of-the-delicious-macaron/

이 과자는 15세기 유럽의 최대 부자이자 르네상스를 꽃피운 명문가 메디치 가문의 마지막 딸, 카트린느 (Catherine de' Medici) 가 프랑스 헨리 2세와 결혼을 하면서 ‘혼수품’으로 가져간 디저트이기도 합니다. 프랑스의 여왕이 된 카트린느는 프랑스로 건너갈 때 그녀의 이탈리아 요리사들도 함께 데리고 가면서 많은 식문화를 전파했는데 이는 훗날 프랑스 요리 문화의 시초가 되었다고 알려져있죠. 아마레티도 그 중 하나였고, 프랑스로 전파가 된 후 1791년 코르메리 (Cormery) 근처의 수도원에서 재창조되면서부터 ‘마카롱’ 이라고 불리기 시작하며 새로운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 후 프랑스 혁명동안 낭시 (Nancy) 지역으로 망명한 카르멜회 두 수녀들은 숙박료를 지불하기 위해 마카롱 쿠키를 구워서 팔았는데, 그 수녀들은 ‘마카롱 자매들’로 알려졌죠. 마카롱으로 돈을 벌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 후, 1930년이 되고 나서야 프랑스의 유명 파티시에가 마카롱 2개를 겹친 후 필링을 넣어 우리가 아는 샌드 형태로 만들며 마카롱이 쌍으로 팔리기 시작했고, 초콜릿, 카라멜, 바닐라, 피스타치오, 민트, 녹차, 장미, 벚꽃 등의 부재료들이 추가되며 다양한 색과 맛을 즐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혼수품으로 가져간 이탈리안 마카롱이 프랑스의 창의력을 만나 작은 사치품이 된 것입니다.  




인간이 만드는 겸손한 신부의 배꼽


“Macaroons have been made in the monastery (in Cormery, France) there since 1791 and legend has it that they used to be made in the shape of monks’ navels.”

프랑스의 요리백과 (Larousse Gastronomique)에 따르면 마카롱은 1791년도에 프랑스 코르메리 지역의 모나스테리 수도원에서 만들어졌으며, 겸손하게 생긴 신부 (수도승)의 배꼽을 닮았다며 그 유래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기록에 따르면 우리가 아는 프렌치 마카롱의 역사는 거의 500년이 넘었고, 긴 역사만큼 만들기도 어렵고, 완성도가 굉장히 높습니다. 마카롱의 재료는 계란 흰자, 설탕, 아몬드 가루, 슈가 파우더 등 딱히 비싸지 않은 재료가 들어가지만 ‘기술’에 따라 색과 맛, 모양이 천차만별이고 아무리 잘 만들어도 오븐 특성 상 100개 중 20개는 버려야 하는 까다로운 과자입니다. 마카롱의 완성도는 꼬끄 (Coque), 피에 (Pied), 그리고 필링 (Filling) 의 품질에서 판정이 납니다. 꼬끄는 터지거나, 속이 비거나, 푸석해지면 안되고, 꼬끄와 필링을 접하는 피에는 반드시 존재해야하며, 24시간 ~ 48시간에 걸처 숙성하는 필링은 너무 부드러워서 흐르지도 않아야하고, 너무 딱딱해서 굳어있지도 않아야 합니다. 아몬드 가루와 설탕의 비율, 머랭의 적합함, 반죽의 정도, 오븐 온도 등이 중요해 한번 실패하면 머랭 치기부터 다시 해야되서 여간 까다로운 일이 아닙니다. 아무리 좋은 재료를 써도, 좋은 장비는 물론 기술을 적절하게 사용할 수 있는 숙련된 전문가가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마카롱은 겸손한 신부의 배꼽에 비유할만큼 크기가 작아도 단가가 높은 디저트입니다.



마카롱과 행복

ⓒ 스마트 경제 

요즘의 마카롱 한 개 가격은 평균 1,500원 ~ 3,500원 정도입니다. 1,000원대 미만으로 ‘골라 골라샵’도 있고, 한국인 소비자가 원하는 가심비와 인증샷 욕구를 채워주기 위해 필링이 오리지날 프렌치 마카롱보다 5배에서 10배까지 두꺼운 뚱카롱이라는 것도 생겼습니다. 개인의 취향에 따라 선호하는 제품은 다를 수 있지만, 마카롱 하나로 ‘행복’을 느끼는 것은 모두 같을 것입니다. 바삭하고 쫀득한 식감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레시피, 기분에 따라 다양한 맛을 골라 먹을 수 있는 재미, 그리고 명품 베르사체의 티셔츠처럼 화려한 색감이 주는 행복을 5,000원도 안되는 가격에 즐길 수 있다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만한 소확행은 없을 것입니다. 최근 SPC에서 프랑스 정통 마카롱을 출시했습니다. 아몬드 가루를 사용하는 대신 아몬드를 직접 갈아 넣어서 한층 더 바삭하고 쫀득한 식감의 꼬끄를 사용하고, 꼬끄 사이에는 프랑스산 명품 버터로 불리는 이즈니 버터를 사용한 부드러운 필링을 풍성히 넣어 진한 풍미를 느낄 수 있는 오리지날 프렌치 마카롱입니다. 타르 색소 대신 초콜릿뿐만 아니라 바닐라, 블루베리, 유자, 오레오, 옥수수, 쑥절미 등 한국인에게 친숙하고 맛있다고 느끼는 재료들을 사용해 더 큰 행복을 주고 있죠. 무엇인가를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주는 마카롱을 향한 작은 사치는 일상에서의 소소하고 확실한 행복을 줄 것입니다. 


 글 | 푸드디렉터 김유경 (안젤라) 

이메일 | angelakim@tastykorea.kr     

https://in.naver.com/foodie_angela



매거진의 이전글 2021년 푸드트렌드,변화의 조류 속에서 살아남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