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드디렉터 김유경이 바라보는 세상
인간이 가장 큰 행복을 느낄 때는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 그러니까 자유로운 상태일 때라고 생각합니다. 자유에는 여러가지 종류가 있는데 그리스 로마시대를 거쳐 민주주의의 기본적 권리인 표현의 자유를 비롯해 종교의 자유, 소비의 자유, 선택의 자유 등 다양한 것이 있습니다. 외식업의 세계를 살펴보면 이러한 자유를 동시에 누릴 수 있는 분야가 있습니다. 바로 ‘파인다이닝’ 입니다. 파인다이닝은 말 그대로 Fine + Dining 그러니까 훌륭한 정찬을 의미하는데요. 드레스 코드를 지켜야하고, 다이닝 에티켓을 즐기는 등의 암묵적인 규칙은 있을 수 있지만, 그런 내용을 떠나 셰프가 원하는 식재료를 활용해 원하는 스타일의 요리를 맘껏 보여줄 수 있는 ‘표현의 자유’, 소비자가 원하는 셰프의 레스토랑을 선택해 메뉴를 고르고, 원하는만큼 소비할 수 있는 ‘선택의 자유’ 와 ‘소비의 자유’가 용인되는 곳이 바로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입니다. 파인다이닝에서 즐길 수 있는 자유는 어떠한 방식으로 행복을 느끼게 해줄까요?
먼저 요리를 하는 셰프 입장에서의 행복을 살펴보겠습니다. 많은 셰프들이 말하길 파인 다이닝은 비스트로나 일반 식당에 비해서 원가율이 높고, 손익이 낮다고 합니다. 특히 국밥집이나 냉면집 같이 특정 음식만을 판매하는 식당과 비교하면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을 왜 할까 궁금할 정도로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의 손익률은 낮습니다. 하지만 성장하고 있는 다수의 요리사들에게 커리어의 마지막을 어떻게 장식하고 싶냐고 물으면 대다수의 요리사들은 나만의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싶다고 대답했습니다. 도대체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이 어떤 행복을 주길래 낮은 손익률에 불구하고, 도전하고 싶은 분야일까요?
첫번째 이유는 셰프의 개성을 마음껏 표현할 수 있는 공간이기 때문입니다. 파인다이닝을 찾는 고객들은 특정한 셰프의 팬이거나 또는 완전히 색다른 요리를 경험하고 싶어 레스토랑을 홉핑 (Restaurant Hopping : 레스토랑을 이곳 저곳 다니면서 다양한 맛과 경험을 하는 것)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일반적인 사람들의 입 맛에 맞추거나, 보편적으로 기대하는 맛을 충족시키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됩니다. 요리를 담는 스타일부터 식기 선정, 식재료 선정, 간을 내는 방법 등등 교과서적인 틀을 벗어나 마음껏 그들의 개성을 뽐낼 수 있는 셰프들의 갤러리이기 때문입니다. 두번째 이유는 역설적인 부분이긴 하지만 원가율이 높아도 되기 때문에 셰프가 원하는 식재료를 자유롭게 선택해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세계 3대 진미 중 하나로 꼽히는 캐비어는 단가가 높아 일반적이 매장에서는 엄두도 내지 못하는 재료입니다. 하지만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에서는 부가가치가 있는 요리들을 만들기 때문에 캐비어나 트러플, 푸아그라와 같은 고급 식재료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화가에게 5가지의 물감보다는 100가지의 물감을 주었을 때 더 행복해하는 것처럼 요리사에게 5가지의 식재료보다는 100가지의 식재료가 주어지면 더 없이 행복하지 않을까요?
이번에는 소비자 입장입니다. 과거에는 ‘파스타 먹을까? 스시 먹을까? 불고기 먹을까?’ 하는 방식으로 소비자들은 한정된 메뉴 속에서 선택을 해왔습니다. 물론 기분에 따라 오늘은 삼겹살이 땡길 수도 있고, 떡볶이가 땡길 수도 있지만 말이죠. 하지만 2017년 미쉐린 가이드 서울편이 최초로 발간되면서 한국에도 미식 문화라는 것이 꽃피기 시작했고, 메뉴 선택을 넘어, 특정 레스토랑과 특정 셰프를 선택하며 선택의 폭이 훨씬 넓어졌습니다. 같은 메뉴여도 레스토랑마다 인테리어와 서비스가 다르고, 같은 메뉴여도 어떤 셰프가 요리를 하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지기도 하기 때문에 소비자가 느끼는 맛의 결과물은 대단히 다양해졌습니다. 다양한 선택권 안에서 내 입맛에 맞는 레스토랑과 셰프를 찾아가는 여정은 언제나 설레고 즐거운 일이죠. 또,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의 메뉴들은 100% 코스 메뉴이기 때문에 ‘12만원 코스’ ‘15만원 코스’ 등 사전에 레스토랑에서 어느정도의 비용을 쓰게될지 예상을 하고 갈 수 있습니다. 그 반대의 예로 ‘투뿔숙성한우’ 전문점에 갔는데, 생각보다 양이 적어서 고기를 추가 주문하고 예상치 못하게 높은 금액의 영수증을 받을 때가 분명 있었을겁니다. 내가 예산으로 잡아둔 금액보다 소비를 하고, 추가적인 금액이 발생하면 그만한 스트레스는 또 없습니다.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은 보통 분기별로 한번씩 메뉴가 바뀝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의 변화에 따라 제철 식재료가 달라지기 때문에 변하기도 하고, 셰프가 만든 컨셉의 스토리보드 속에서 주기적으로 변하기도 합니다. 요즘은 블로그나 인스타그램만 확인해도 메뉴가 어떻게 바뀌었는지 알 수 있고, 특별히 좋아하는 메뉴가 올라왔다는 소식을 들으면 언제든 찾아가 적극적으로 소비를 할 수 있습니다. 또, 소비하는 만큼 파인다이닝에서 경험할 수 있는 훌륭한 서비스와 대우가 주어지기 때문에 돈으로 바꾸지 못할만큼 즐거운 추억도 생깁니다. 또, 명품백이나 자동차와 같은 상품에 비해서 단가가 상대적으로 낮기 때문에 소비의 빈도도 높고, 행복을 느끼는 횟수도 높아집니다.
경제학 용어 중에 낙수효과와 분수효과라는 말이 있습니다. 낙수효과는 정부의 정책으로 대기업과 고소득, 부유층의 부를 먼저 늘려줘야 이들의 소비와 투자를 증가시켜 중소기업과 저소득층에게도 혜택을 줄 수 있다는 주장으로 분배보다 성장, 형평보다는 효율을 중시하는 효과입니다. 반대로 분수효과는 저득층의 소비가 증대되어야 경기가 활성화되고, 이는 고소득층의 소득증가에 도움을 준다는 주장으로 성장보다는 분배, 효율보다는 형평을 중시하는 것을 말합니다. 파인다이닝이라는 문화 자체가 한국에 소개되었을 때 초반에는 아무래도 단가가 높기 때문에 ‘그들만의 세상’처럼 고소득층만 누리는 것으로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파인다이닝 서비스를 제공하는 요리사들의 연령대가 젊어지고, 실험적인 요리들을 요리들을 제공하는 대신에 음식의 단가도 낮춰 계층에 관계없이 누구나 즐길 수 있는 환경이 되고 있습니다. 셰프가 즐기는 표현의 자유 덕분에 소비자들의 선택의 폭이 넓어지고, 소비의 자유에서 오는 행복을 느끼는 미식가들이 점점 많아지는 요즘입니다.
글 | 푸드디렉터 김유경 (안젤라)
이메일 | angelakim@tastykorea.kr
https://in.naver.com/foodie_angel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