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드디렉터 김유경이 바라보는 세상
알라딘과 자스민의 첫 만남을 기억하시나요? 세상 물정을 모르는 자스민이 시장을 거닐던 중 굶주리고 있는 아이들에게 상인이 팔고 있는 빵을 나눠줍니다. 돈을 내지 않고 떠나려고 하자 상인은 도둑이라고 소리치며 자스민을 괴롭히고, 이 모습을 본 알라딘은 특유의 기교를 발휘해 자스민 공주를 구출해줍니다. 빅토르 위고의 소설 ‘레미제라블’에서 배고픔에 시달리던 장발장은 빵 하나를 훔친 대가로 19년을 복역합니다. 여기서 빵은 단순히 ‘식량’ 으로서 인간의 배를 채워주고, 인류가 생존을 위해 탐닉하는 존재였습니다. 하지만 이집트에서는 빵은 노동자의 월급이었고, 로마에서는 권력을 상징하는 수단이 되기도 했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한 수필집에서는 행복을 ‘갓 구운 빵을 손으로 찢어 먹는 것’이라고 표현하기도 했죠. 빵은 식량이라는 가치를 넘어 예술품이 되었고, 행복이라는 감정을 상징하는 표현이 되었습니다. 빵은 어떠한 과정을 거쳐 인간의 행복을 상징하는 형용사가 되었을까요?
빵의 역사에 대해 이야기할 때 이집트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요즘의 빵은 밀가루와 물, 소금을 넣어 반죽하고, 효모의 역할을 하는 이스트나 천연발효종을 넣어 발효시켜 부풀린 뒤 구운 것을 이야기하는데요. 최초의 빵은 효모를 사용하지 않아 부풀지 않은 납작한 빵이었다고 합니다. 플랫브레드라고 불리는 이 빵은 이란의 상각 (Sangak), 차파티, 파라타, 풀카 등으로 대표되는 인도의 로티 (Roti) 등이 있습니다. 발효를 시키지 않은 빵인거죠. 우리가 즐겨먹는 발효빵은 기원전 2,000년 고대 이집트에서 처음 탄생했습니다. 요리사가 실수로 반죽을 상온에 둔 채 하루를 묵히니 공기 중의 미생물이 빵을 만나 부풀어 발효되었다는 기원도 있고, 빵굼터 옆에 있는 맥주 양조장의 맥주라 흘러서 발효되었다는 이야기도 있지만요. 당시에 이집트에는 화폐가 발달하지 않아 피라미드를 짓는데 일을 한 노동자에게 월급으로 지급했다고 합니다. 빵이 제 때 지급되지 않았을 때는 단체 파업을 하고, 시위를 했다라는 기록도 있고요. 이집트 사람들에게 피라미드는 노동의 결실이었고, 빵은 노동의 대가이자 기쁨이었던 것입니다.
이탈리아 로마로 이동해보겠습니다. 고대 로마의 최전성기였던 5현제 시대 이후 황제의 권력은 점차 약화되었고, 로마 황제들은 시민들의 지지를 얻어야만 했습니다. 그들은 콜로세움에서 로마 시민들이 좋아할만한 오락을 제공하고, 시민권을 가진 자는 매달 한달치 분량의 빵과 콜로세움에서 경기를 볼 수 있는 티켓을 배급받았습니다. 검투사들의 치열한 경기 끝에 황제가 엄지 손가락을 승패를 결정한 뒤 약 40kg이나 되는 빵을 30만명에게 나눠주었으니 100만 로마 제국 시대에 거주하고 있는 1/3의 시민들에게는 지지를 받을 수 밖에 없었지요. 당시에 빵은 황제의 권력이 였습니다. 물론 ‘빵과 서커스’라고 불리며 고대 로마 제국이 실행했던 우민화 정책으로 평가되기도 하지만 당시에 황제는 빵으로 나라를 통치했던 것입니다.
미국 작가 Neil Pasricha가 지필한 『THE BOOK OF AWESOME』 이라는 책은 우리 일상에서 발견할 수 있는 ‘Awesome’한 다양한 순간을 묘사합니다. 어느 날 주머니에서 발견된 돈, 첫 눈을 밟은 나의 발자국, 베이커리 문을 열었을 때 나는 고소한 빵 냄새 등을 말이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최근에는 ‘베이킹 테라피’도 주목받고 있습니다. 손으로 직접 밀가루 반죽을 만들고 있으면 갓 태어난 아기의 볼을 만지는 듯한 몽글몽글하고 부드러운 질감을 느낄 수 있고, 한가지 일에 집중할 수 있어 불필요한 생각이나 우울한 감정을 잊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천연 발효종이나 맥주 등을 넣어 발효를 시키고 기다리는 과정에서 어떤 빵이 나올지 기대되는 마음도 새로운 행복감을 주기도 하고요. 빵을 만든다는 것은 다른 테라피에 비해 눈에 보이는 결과물이 나오기 때문에 성취감도 생깁니다. 갓 구운 따뜻한 빵을 손을 찢어 먹을 때, 그 빵을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나눠줄 때 또 다른 기쁨과 행복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죠.
프랑스 요리계의 전설이자 요리계의 교황인 프랑스의 셰프 폴 보퀴즈 (Paul Bocuse). 1987년 하늘의 별이 된 폴 보퀴즈를 기리기 위해 보퀴즈도르 (Bosue d’Or) 라는 세계 요리 월드컵이 매년 또는 2년에 한번씩 열리고 있는데요. 그 중 가장 치열한 분야는 월드 페이스트리 컵이라고 불리는 Coupe du Monde de la Pâtisserie와 월드 브레드 콘테스트인 Mondial du Pain 입니다. 단순히 인간의 칼로리로 소모되는 빵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시각, 후각, 미각, 재료의 선별, 예술성 등을 고루 평가해 가장 아름답고, 가장 정교하고, 가장 맛있는 빵과 디저트를 만든 요리사를 선정하는 대회입니다. 이 대회에서 우승한 요리사는 최고의 영예과 상금을 안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요리사로서 최고의 만족감과 희열을 느낄 수 있습니다.
빵은 만들 때 뿐만 아니라 베이커리에 들어가 수많은 빵을 고를 때 선택의 즐거움도 줍니다. 오늘은 부드러운 슈크림빵을 먹을까? 겹겹히 쌓여있는 버터 크로와상과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함께 먹을까? 부드러운 올리브 오일과 새콤한 발사믹에 살짝 찍어먹을 수 있는 치아바타를 먹을까? 쇼핑의 즐거움은 백화점에서도 느낄 수 있지만, 베이커리의 빵은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하기 때문에 누구나 ‘소확행’을 누릴 수가 있습니다. 무엇인가를 큰 고민없이 고를 수 있는 자유와 돈은 현대인에게 아주 멋진 행복감을 선사합니다. 빵은 다양한 방식으로 인류에게 행복이라는 감정을 느끼게 해주는 고마운 매개체입니다.
글 | 푸드디렉터 김유경 (안젤라)
이메일 | angelakim@tasty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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