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드디렉터 김유경이 바라보는 세상
최근 중국에서 2021년 한 해 최고의 굿즈로 ‘아이스크림’ 을 꼽고 있습니다. 이 인기는 지난 5월 노동절 연휴에 중국의 각 관광지에서 문화재 모양의 아이스크림을 들고 인증샷을 찍는 것으로 시작되었는데요. 쓰촨성 광한시 싼싱두이(三星堆) 유적지는 제사갱에서 출토된 두 개의 ‘청동가면’ 을 ‘청동맛 (말차맛)', '출토맛 (초콜릿맛)' 두 가지 맛으로 출시했고, 후난성 웨양에서는 웨양루(岳陽樓)와 소형 돌고래 모양의 상괭이 아이스크림 등을 출시했는데 아이스크림과 동일한 모양의 관광지 앞에서 인증샷을 찍는 것이 새로운 여행 트렌드가 된 것입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경복궁에서 경회루 모양의 아이스크림을 들고 사진을 찍고, 석굴암 앞에서 불국사 모양의 아이스크림을 들고 인증샷을 SNS에 남기는 거죠. 아이스크림은 더운 여름에만 먹는 간식이 아니라 여행의 즐거움을 배로 만들어주는 콘텐츠이기도 하고, 다양한 종류의 맛을 골라 먹을 수 있는 자유를 선사해 주기도 합니다.
아이스크림은 기원 전 페르시아와 로마제국에서 겨울 눈에 과일과 꿀을 섞어 먹은데서 유래되었고, 젤라또는 이탈리아어로 얼리다라는 의미 ‘젤라레 (Gelare)’에서 유래되었는데 10~13세기에 시칠리아를 점령했던 아랍인들에 의해 처음으로 이탈리아에 전해졌다고 합니다. 당시 아랍인들이 먹었던 것은 부순 얼음에 과일 주스를 섞은 형태의 그라니타였지만, 이탈리아 사람들은 여기에 우유와 달걀, 설탕을 넣기 시작하면서 고유의 젤라또를 만들어 먹기 시작했습니다. 요즘엔 카페에 가면 블라스트, 블렌디드, 프라푸치노 등 다양한 아이스 음료를 만날 수 있는데 제대로 된 메뉴를 주문하려면 어떤 차이가 있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보편적으로 많은 사람들은 아이스크림, 젤라또, 셔벗, 소르베를 구분하지 않고 아이스크림이라고 통칭해서 부르지만 제조 과정을 살펴보면 엄연히 큰 차이가 있습니다. 먼저 아이스크림과 젤라또는 우유나 크림이 들어있는데, 공기 함유량 (오버런 Overrun)과 유지방 함량에 따라 구분이 됩니다. 국가마다 기준이 다르긴 하지만 보편적으로 젤라또는 공기 함유량 25 ~35%, 아이스크림은 60~80%며, 아이스크림은 유지방함량이 10% 이상이지만 젤라또는 많아야 6% 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이스크림은 이름 그대로 크림처럼 부드럽지만, 젤라또는 밀도있고 쫀득한 질감을 가지고 있죠.
반면 그라니타, 소르베에는 유제품이 전혀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오로지 과일과 설탕, 물로 만들어지는데 그라니타는 아삭한 얼음 조각이 느껴지고, 소르베는 얼음 결정체가 은은하게 느껴집니다. 셔벗은 소르베에 우유를 조금 추가했다고 보면 되지만 과일이 기본 베이스인 것은 동일합니다. 다이닝 코스를 제공하는 미쉐린 레스토랑에 가면 스테이크가 나오기 전에 레몬 셔벗이나 딸기 소르베 등이 입가심용으로 나오는데 가볍게 입 안을 정돈해 다음 음식을 먹는 것을 도와주는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또, 카페마다 음료를 부르는 이름이 다른데 기본적으로 블렌디드는 얼음의 식감이 더 잘 느껴지는 사각사각한 아이스 음료고, 블라스트나 프라푸치노는 블렌디드에 비해 부드럽고, 밀도가 촘촘해 취향이나 그날의 기분에 따라 기호가 달라지곤 합니다.
‘인생은 아이스크림과 같아서 녹기 전에 빨리 먹어야 한다’ 이는 인도 영화 ‘블랙’ 의 명대사 중 하나입니다. 인생이 흘러가는 속도는 아이스크림 녹듯이 빠르기 때문에 매 순간 충실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이 대사뿐만 아니라 아이스크림은 종종 행복에 비유되곤 합니다. 왜 그럴까요? 정말 아이스크림은 행복을 불러일으킬까요? 정답은 YES 입니다. 영국 Cardiff 대학의 신경 심리학 교수 Peter Halligan는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는 사람의 뇌를 스캔을 해보니, 후각 수용기에서 오는 정보를 받아들이는 전두엽의 안와 전두 피질이 즉각적으로 반응을 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안와 전두 피질은 신생아 엄마에게 웃고 있는 자신의 아기 자신을 보여주었을 때 활동이 증가하는데 이 뇌부위의 활동 증가는 자신의 기분 정도와 비례하는 것으로 알려져있습니다.
또, 아이스크림에 들어있는 설탕과 과일의 단맛은 행복 호르몬 세르토닌 분비를 촉진시켜서 ‘행복하다’라는 감정이 들게 만들어줍니다. 여기에 골라먹는 재미까지 더해지면 인간이 느낄 수 있는 행복의 조건 중 하나에 다다를 수 있게 됩니다. 물론 뭐든 과유불급이라 아이스크림이나 단 것을 많이 먹으면 건강에 좋지는 않겠지만, 때때로 나를 위한 작은 선물을 주는 것도 필요합니다.
언젠가부터 베스킨라빈스의 민트 초콜릿칩 아이스크림이 큰 인기를 누리면서, 민트 초코 라떼부터, 민트 초코 쿠키, 민트 초코 도넛에 이어 심지어 민트 초코 소주까지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민트 초코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민초단이라고 부르고, 그 반대인 사람들은 반민초단이라고 하며 SNS에서 파벌 싸움이 생기기도 하는데 이러한 모습은 결국 아이스크림을 향한 자신의 취향을 강하게 주장하며 하나의 재미를 찾아가는 요즘 세대들의 즐거움라고 생각합니다. 아이스크림은 단순히 입 안에서 녹는 간식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행복을 전해줄 수 있는 선물이기도 합니다. You can’t buy happiness, but you can buy Ice cream.
글 | 푸드디렉터 김유경 (푸디안젤라)
이메일 | angelakim@tasty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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