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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병한 Jun 18. 2019

현실은 시궁창이야

넷플릭스 오리지널 : 블랙미러

* 이 글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블랙미러 시즌 1: 핫 샷>의 스포일러를 담고 있습니다.


그곳의 벽은 스크린으로 도배되어 있다. 아침이면 해가 뜨고 닭이 우는 애니메이션이 재생된다. 일어나면 자전거를 타러 가야 한다. 다른 선택지는 없다. 자전거는 땅에 고정되어 있고, TV가 설치되어 있다. 페달을 밟으면 돈이 조금씩 지급된다. 어떤 콘텐츠를 볼 것인지는 선택할 수 있다.


남자는 모든 것에 무관심해 보인다. 그저 페달을 밟는다. 그런데 어떤 여자가 말을 걸어온다. 그는 그녀가 마음에 드는 눈치다. 둘은 이야기를 나누며 가까워지고, 여자는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가는 것이 꿈이라고 한다. 남자는 왜 나가지 않느냐고 묻는다. 여자는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가는 데는 돈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남자는 여자를 위해 기꺼이 지금까지 모은 거액의 돈을 지불한다. 여자는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극찬을 받고, 야동 배우가 될 것을 권유받는다. 대중의 환호성에 여자는 생각지도 못했던 결정을 내린다.


남자는 고통스러워한다. 사랑하는 여자가 야동 배우가 되었다. 여자가 나오는 야동 광고가 재생되자 남자는 참지 못하고 벽을 부수려 한다. 스크린의 일부가 깨졌고, 파편을 가지고 남자는 자해를 하려다 문득 무언가 깨닫는다. 남자는 미친 듯이 페달을 돌리기 시작한다. 그는 직접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간다. 엔터테이너라고 자신을 소개한 뒤 숨겨둔 파편을 꺼내 자신의 경동맥 가까이 대고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다 노예야. 다 꺼져 개새끼들아." 이토록 진정성 있는 무대는 처음 봤다며 심사위원들은 방송 진행을 권유한다. 대중들은 환호하고, 그는 제안을 받아들인다.




많은 사람들은 꿈을 가지고 살아간다. 자신이 바라는 자신의 모습을 그린다. 꿈속에 존재하는 자신은 매우 행복해 보이는 듯하다. 인생이란 딛고 올라서야 할 계단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비록 꿈을 이루지 못해 불행한 상태이지만 언젠가 그 꿈을 달성한 이후에는 행복한 인생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 믿는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러한 믿음은 인생을 망친다. 꿈을 가진다는 것은 현실을 미숙한 상태, 완전하지 못한 상태로 만들기 때문이다. 어떤 목표를 가지고 활력을 북돋우며 사는 자세는 긍정적이지만, 그 마음을 들여다보면 끔찍한 고통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인생이란 완전한 상태를 위해 한 계단 한 계단 올라서는 과정인 것인가? 실제로 그 '완전한 상태'라는 것이 존재하기는 하는 것인가?


우리는 많은 것들을 꿈꾼다.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삶을 꿈꾸기도 하고, 가족과 함께 여유로운 전원생활을 하는 것을 꿈꾸기도 한다. 사랑하는 누군가와의 행복한 결혼 생활을 꿈꾸기도 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유명인을 꿈꾸기도 한다. 가족과 함께 여유로운 전원생활을 하는 유명인을 꿈꾸기도 하고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상태에서 사랑하는 사람과의 결혼 생활을 꿈꾸기도 한다.


그리고 행복한 결혼 생활을 꿈꾸다가 여유로운 싱글 라이프를 꿈꾸기도 한다. 화려한 도시에서 풍요로운 삶을 꿈꾸다가 여유로운 전원생활을 꿈꾸기도 한다. 이처럼 꿈은 매우 다층적이고 가변적이다. 여러 가지 요소가 혼합된 상태인 데다가 수시로 바뀔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꿈을 이룰 수 없다. 일시적인 성취는 가능할지도 모르지만, 꿈을 가변적이기에 언제 또 다른 목표가 생길지 알 수 없다. 꿈을 이룬 상태란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8마일> 중 에미넴의 대사




<블랙미러 시즌 1: 핫 샷>의 남자와 여자가 겪는 문제의 본질은 꿈에 대한 갈망이다. 여자는 인기 가수가 되기를 원했고, 남자는 여자와의 사랑을 원했다. 그러나 현실은 시궁창이다. 여자는 야동 배우가 되었고 남자는 여자와 괴리되어 목에 유리 파편을 대고 욕설을 지껄이는 방송의 진행자가 되었다. 부처님은 일찍이 '색즉시공 공즉시색'이라 모든 것은 비어있다고 말씀하셨지만, 우매한 우리들은 그 말을 듣고도 무언가 갈망하며 살게 된다.


사실 답은 간단하다. 무언가 바라지 말고 현재를 즐겁게 살아야 한다. 말은 너무 쉽다. 하지만 우리 마음은 그걸 알고도 행동하기 참 어렵다. 모두 갈대처럼 상황에 이리저리 휘둘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핫 샷>의 남자와 여자를 비난하기 어렵다. 극단적인 상황이지만, 보편적인 우리의 모습과 닮아있다.


줏대를 가지지 못하고 이리저리 흔들리는 모습을 흔히 갈대에 비유하고는 한다. 꿈을 좇는 우리는 모두 하나의 갈대다. 갈대는 시궁창 속에서 가만히 흔들리고 있다.


언제부턴가 갈대는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었다.

그런 어느 밤이었을 것이다. 갈대는
그의 온 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
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
까맣게 몰랐다.

-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 그는 몰랐다.

<갈대>, 신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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