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 블랙미러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언가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추구하며 산다. 그리고 항상 그 목표는 특정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기술의 발전을 목표로 삼는 사람들을 생각해보자. 기술의 발전이란 항상 '편리성'이라는 가치를 지향한다. 기술이란 인간에게 유용한 것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기계공학, 전자공학, 컴퓨터공학은 물론이고 지구의 환경을 개선하는 기술까지 기본적으로 모든 기술은 인간의 편리한 생활을 목표로 한다. 하지만 인생은 항상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부작용이라는 말이 있다. 흔히 '이 약에는 부작용이 있다'는 식으로 쓰이는데, 운이 나쁜 경우에 발생하는 유해한 작용으로 오해하기 쉽다. 그러나 부작용은 운이 나쁜 경우에 발생하는 특별한 작용이 아니라 오히려 그 약의 필연적 작용에 가깝다. 실제로 부작용에 '부'는 副(버금 부) 자로 어떤 우연이나 특별한 상황을 가정하는 말이 아니다. 현대 의학에서도 약물의 작용은 반드시 주작용과 부작용으로 나뉜다고 설명하고 있다.
<블랙미러>는 기술의 발전의 '주작용'인 편리성이 아니라 그야말로 '부작용'을 다루는 작품이다. 우리는 흔히 착각하기 쉽다. 블랙미러는 아주 특별한 상황을 가정하여 가장 운이 나쁜 경우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그러나 <블랙미러>는 충분히 있음 직한 이야기를 풀어낸다. 물론 매우 특별한 상황을 가정하지만 미래의 상황이 어떨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정확히 알 수 없다는 점에서 그럴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까 일단 작품에서 전제하고 가정하는 바를 받아들이고 나면 작품의 핍진성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는 아주 불쾌하고 불편한 기분이 스며든다.
그리고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발생한 문제에 대해서 기술의 개발자는 책임이 있을까? 불쾌한 기분의 책임을 얼른 누군가에게 지우고 싶기에 그렇다고 답하고 싶지만 망설여진다.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을 수 있지 않을까?
블랙미러가 제시하는 불편한 미래의 종류는 다음과 같이 유형화해볼 수 있다.
1. 인간의 순수한 의도가 개입된 유형: <레이철, 잭, 애슐리 투>, <당신의 모든 순간>, <공주와 돼지>
여기서 인간의 순수한 의도란 기술에 의해 영향을 받지 않았다는 뜻이다. 인간의 의도가 기술을 악용하여 불쾌한 결말로 귀결된 작품들이 여기 속한다. 이 유형에 속하는 작품들의 공통점은 상식적인 기준에서 벗어난 행동을 하는 사람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지금 이곳의 현실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사이코패스'는 기술이 발전된 <블랙미러>에서도 여전히 문제가 되고 있다.
기술의 개발자는 이 경우에 있어서 면죄부를 받을 수 있다. 기술이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기술은 사이코패스에 의해 이용당했을 뿐이다. '만약 그랬다면'으로 시작하는 가정이란 어떤 생산적인 논의도 이끌어낼 수 없지만, 기술이 발전하지 않았더라도 사이코패스는 악행을 저질렀을 것이다. 기술은 죄가 없다.
2. 기술에 의해 영향을 받은 인간의 의도가 개입된 유형: <스미더린>, <스트라이킹 바이퍼스>, <핫 샷>
위 작품들을 참고해보면 기술은 분명 인간의 의도에 영향을 미친다. 인간이 만든 기술이 또다시 인간을 만들어나가는 것이다. 이 유형에 등장하는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들은 모두 보편적인 인간이었다. 타인의 문제에 공감하지 못하거나 과도하게 자신의 이익만을 주장하는 사람과는 거리가 멀다. 이 글을 읽는 당신과 당신 사이 어디쯤에 위치한 인간인 것이다. 그러나 기술은 그들을 변화시킨다.
이때 기술의 개발자에게는 윤리적 책임이 부과된다. 그가 의도한 결과가 아니라고 해도 그가 개발한 기술은 인간을 망쳤다. 때문에 기술의 개발자는 기술의 주작용인 편리성과 더불어 반드시 기술의 부작용을 고려해야만 한다. 가능한 경우의 수를 모두 고려하여 부작용이 유해한 것이라면 최대한 그것이 작용하지 않는 방향으로 기술을 설계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편리하더라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 인간의 생명, 존엄이라는 가치는 편리성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우위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3. 인간의 의도가 개입되지 않은 유형: <시스템의 연인>
인간의 의도가 전혀 개입되지 않았음에도 불편한 상황이 연출되는 경우가 있다. 편리를 위해 구축한 기술은 효율적으로 인간을 통제한다. 어느새 다른 중요한 가치는 소거되고 갈 곳을 잃은 편리만 남는다. 하지만 기술을 지지하는 인간의 의지가 없기에 인간은 기술의 통제를 극복한다. 유일하게 <블랙미러>에서 찝찝한 상황이 해소되며 끝나는 유형이다.
기술의 개발자는 기술의 부작용이 심화될 때 인간의 의지로 기술을 멈출 수 있는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 기술은 인간이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부작용을 만들어낼 수 있지만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것은 언제나 인간이기 때문이다. 장치가 존재하는 경우에 개발자에게 부과될 윤리적 책임은 상당 부분 감소한다.
정리해보면 인간의 순수한 의지로 발생한 문제를 제외하고는 기술의 개발자에게도 어느 정도의 책임이 부과된다. 책임의 정도는 부작용을 막을 수 있는 장치가 존재하느냐의 여부에 따라 달라진다. 부작용을 막을 수 있는 장치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기술의 이용자가 장치를 사용하지 않는다면 문제의 책임은 이용자에게도 부과되어야 한다. 반대로 장치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책임은 전적으로 개발자에게 부과되어야 한다. 단, 장치가 존재하고 이용자가 그것을 이용하여 부작용이 극복된 상황에서 이미 발생한 피해에 대해서는 그 누구에게도 책임을 부과하기 어렵다.
기술의 발전은 인간에게 편리를 제공하지만 때로는 다른 가치를 빼앗기도 한다. 그렇다고 기술의 발전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그면 안 된다. 그래서 <블랙미러>가 중요하다. 기술의 발전에 따른 부작용에 대한 경각심에 대해 우리는 함께 고민해야 한다. 당신의 미래는 기술을 이용할 것인가? 혹은 기술에 이용당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