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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병한 Jul 01. 2019

현대의 신화

신화와 문화콘텐츠

신화라고 하면 다들 고대의 기이한 이야기를 떠올린다. 그러나 신화는 사라지지 않았다. 고대의 기이한 이야기를 떠드는 사람들이 현대에 있다는 말이 아니다. 사라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신화적 원형은 여전히 우리 속에 내재되어 사고방식을 지배한다. 헛소리라고 생각하는가? 그렇지 않다. 차근차근 신화가 무엇인지부터 이해해보자.



신(Theos)과 이야기(Mythos)


신화라고 하면 두 가지가 떠오른다. 어떤 비범한 힘을 가진 '신(神)', 그리고 그들을 주인공으로 한 '이야기'. 우리말 신화에는 두 가지 요소가 모두 포함되어 있는 반면 서구는 둘을 구분해 각각 'Theos'와 'Mythos'로 칭한다. 'Theos'는 신을 뜻하고, 'Mythos'는 이야기를 뜻한다. 신화가 무엇인지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단어가 어떻게 형성된 것인지 이해할 필요가 있다.


'Theos'는 사실 형용사 'Theios'에서 유래된 단어라고 한다. 그러니까 신이라는 존재는 대상이라기보다는 현상에서 비롯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고대인들에게 현상은 대부분 자연현상이었을 것이다. 자연은 인간이 살아가는 터전이지만 때로는 인간이 전혀 극복할 수 없는 엄청난 힘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갑작스러운 자연현상으로 인해 무력감을 느낀 인간은 자연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 엄청난 경외심을 가지게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현상의 배후에 누군가 존재하지 않을까 의심한다. 'Theos'가 탄생하는 순간이다.


신(Theos)이 자연현상에서 발생한 만큼, 그것을 이야기로 풀어낸 이야기(Mythos) 또한 당연히 자연과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고대 사회에서 노인과 꼬마가 앉아 내리는 비를 바라보고 있는 상황을 가정해보자. 꼬마는 묻는다. "비는 왜 오는 거야?" 고대 사회의 노인은 비가 오는 이유에 대한 과학적 지식을 알지 못한다. 그러나 이런 질문을 받고 모른다고 답할 수도 없다. 그런 일상적인 사건에 대한 이유도 답해주지 못한다면 권위가 실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할아버지는 답을 알고 있다. 습도나 기압 따위의 이야기를 하는 대신 할아버지는 이렇게 답한다. "하늘에 있는 선녀님들이 울고 계신 게야." 'Mythos'가 탄생하는 순간이다.


현대의 권위 있는 과학자가 비가 오는 이유를 '하늘에 있는 선녀님들이 울어서'라고 진지하게 답한다면 사람들은 그를 미친 사람으로 생각할 것이다. 과학적 사고방식에서 신화는 허무맹랑한 이야기로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신화는 과학적 사고에 비해 결코 열등하지 않다. 신화는 이미 우리의 사고방식에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신화를 통해 세상을 이해하던 고대인들의 사고방식은 원형으로 내재되어 우리의 삶을 더 인간적이고 풍요롭게 만든다. 생각해보라. 두 명의 할아버지가 있다. 한 명의 할아버지는 비가 오는 이유를 습도와 기압, 수증기의 응결을 통해 설명한다. 그것은 매우 정확한 과학적 지식이다. 반면 다른 한 명의 할아버지는 비가 오는 이유를 이야기를 통해 설명한다. 실제로 그런지는 알 수 없지만 감동을 주는 이야기다. 당신은 어떤 할아버지와 대화하고 싶은가?



신화의 정치성


신화는 인간의 삶과 우주에 기능하는 동기를 부여하는 힘, 혹은 가치 체계의 화신(化身)이다. 세상을 구성하는 매우 근본적인 동력이자 이해하는 방식인 것이다. 때문에 신화는 국가, 정치와도 떼놓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고대 군주제 국가를 생각해보자. 왕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백성을 통치할 수 있음을 증명해주는 정당성이다. 백성 또한 자신들이 복종하는 대상이 왜 자신들의 복종을 누릴 수 있고 권력을 가지는지 의문을 가지기 마련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것이 건국 신화이다. 건국 신화는 왕으로 하여금 평범한 사람과는 다른 기이한 능력(또는 기이한 능력을 가진 혈통)을 지닌 존재임을 증명해준다. 왕을 신적 존재로 격상시키게 되면, 자연히 사람들은 자연현상과 신에게 그랬던 것처럼 왕에게 경외심을 가지게 된다. 하나의 군주제 국가가 구성되는 것이다.


실제로 고대 그리스의 수많은 왕들은 자신들의 출생을 제우스를 비롯한 올림포스 신들과 연결 짓는 일이 많았다고 한다. 자신의 어머니나 할머니가 신들과 동침하여 자신이나 자신의 아버지를 낳았다는 식의 이야기들을 공공연히 퍼트렸다는 것이다. 이는 자신의 왕으로서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술책으로 볼 수 있다. 한 지역의 왕으로써 신의 아들이나 손자보다 더 적절한 정당성이 어디 있겠는가? 어쩌면 바람둥이로 그려지는 제우스의 모습은 수많은 왕들이 너도나도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제우스와 자신을 혈연관계로 묶어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 고조선의 건국 신화인 단군 신화의 경우에도 단군은 신의 혈통을 타고났다. 삼국의 신화도 마찬가지다. 고구려, 백제, 신화의 건국은 모두 신의 혈통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전해진다.



현대의 신화


현대의 신화를 이야기할 때 유용성과 관련된 측면이 주로 언급된다. 우선 신화는 문화콘텐츠를 제작할 때 원천소스로 활용될 수 있다. 대중에게 이미 익숙한 소재이며, 현대의 삶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기이한 이야기라는 점에서 신화는 문화콘텐츠 제작의 원료로 유용해 보인다. 보수적인 사람들은 신화가 문화콘텐츠에 의해 재해석되는 것을 신화의 훼손이라 비판하고 신화는 고대인의 사유를 이해할 수 있는 신성한 통로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원료가 되었든 신성한 통로가 되었든 어쨌든 신화는 유용해 보인다.


신화의 유용성이 자주 언급되는데 반해, 신화가 지닌 원형적 가치는 묵살되고 있다. 신화는 고대에 존재했던 대상이 아니라 지금의 우리에게도 내재된 원형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고대의 신화가 그랬던 것처럼 현대의 신화는 사회를 구성하는 중요한 힘으로 기능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시가 스타덤과 팬덤이다.


스타덤과 팬덤의 관계는 과거 신화를 통해 정당성을 유지했던 군주제에서 왕과 백성의 관계와 유사한 측면이 있다. 왕과 백성이 그랬던 것처럼 스타는 팬으로부터 사랑받을 수 있는 '정당성'을 확보해야 하고, 내재적 동기로 인하여 팬(덤) 활동에 참여하고자 하는 팬은 그러한 정당성을 바탕으로 활발히 활동하게 된다. 물론 스타를 신(theos)과 동일시하는 것에는 무리가 있겠지만 대립항(백성 또는 팬덤)으로부터 경외와 존경의 대상이 된다는 점에서 그들은 같은 층위에 존재한다.


현대의 문화 산업, 스타 시스템에서 상업적 속성을 배제할 수는 없지만 팬덤에게 있어 스타는 단순한 상업적 존재가 아니다. 팬덤이 볼 때 스타에게는 상업적 실체 이상의 아주 특별한 요소가 존재하는데, 이것은 신화적 요소와 다를 바 없다. 스타덤에 존재하는 특별한 요소와 신(theos)에 존재하는 특별한 존재는 모두 무형의 무한한 잠재적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여지기도 하고, 특정 집단을 구성하고 있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나아가 팬덤이 좋아하는 대상이 어떤 배우나 가수 같은 '스타'가 아니라 형태가 없는 '브랜드'가 되는 경우도 존재한다. 두말할 것 없이 그것을 구성하는 힘은 신화적인 힘이다.




신화의 힘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Theos'의 세대교체가 일어났을 뿐이다. 'Mythos'는 여전히 우리의 사고방식에 내재되어 인간의 삶에 다양한 영향을 미치고 있고 과학적 사고방식보다 훨씬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하기도 한다. 현대의 과학자들은 자연에 대해 그랬던 것처럼 사회에 대해서는 측정하고 계량하며 보편적 법칙을 발견하려 하지만 아무래도 쉽지 않아 보인다. 본질적으로 그것은 합리적 이성(Logos)이 아닌 신화(Mythos)에 기반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신화와 문화콘텐츠> 장에서는 현대에 신화가 어떻게 깃들어 있는지 살펴보기 위해 현대의 문화콘텐츠에 신화적 원형이 존재하는 사례를 살펴볼 것이다. 다만 단순히 신화를 영화로 만든 것들은 배제하려고 한다. 그것은 신화의 원형성에 주목한 것이라기보다는 신화를 그저 원료로 생각한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 내면의 본질적이고 심층적인 세계가 궁금하지 않은가? 함께 현대의 신화를 살펴보자.




참고문헌


Joseph CampbellㆍBill Moyers, The power of myth, 이윤기 역, 《신화의 힘》, 21세기북스, 2017.

조명동ㆍ강미라, 《그리스의 신과 영웅》, HUEBOOKS,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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