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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병한 Jul 03. 2019

영웅의 여정

신화와 문화콘텐츠

'지금쯤 뭔가 터져줘야 하는데!'

영화를 보다 보면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기대에 부응하지 않으면 뭔가 불편해지고, 기대에 과도하게 부응하면 무언가 뻔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어찌 되었든 우리에게 학습된 이야기의 구조가 있다는 말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이야기의 구조는 어디서 온 것일까?




조지프 캠벨의 원질신화론


신화학자 조지프 캠벨은 1949년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이라는 책을 통해 영웅 신화의 원형 구조를 발표한다. 스토리텔링에 종사하는 사람들과 이를 분석하는 비평가들에게 이 책은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실제로 <스타워즈> 시리즈를 만든 조지 루카스는 자신의 스토리 창작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인물과 책으로 캠벨의 책을 꼽고 있다.


캠벨이 영웅 신화의 원형 구조를 발표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전 세계의 영웅 신화를 모두 조사하고 분석하며 각각의 서사를 관통하는 원형에 대해 고민을 했기 때문이다. 그의 결론은 분명 영웅 신화의 원형 구조가 존재한다는 것이었고, 구조는 다음과 같은 17단계로 이루어져 있다.


출발
1. 모험에의 소명
2. 소명의 거부
3. 초자연적인 조력
4. 첫 관문의 통과
5. 고래의 배
입문
6. 시련의 길
7. 여신과의 만남
8. 유혹자로서의 여성
9. 아버지와의 화해
10. 신격화
11. 홍익
귀환
12. 귀환의 거부
13. 불가사의한 탈출
14. 외부로부터의 구조
15. 귀환 관문의 통과
16. 두 세계의 스승
17. 삶의 자유


사실 모든 신화가 영웅 신화의 원형 구조에 완벽하게 부합되지는 않는다. 어떤 경우에는 생략되는 요소가 있을 수도 있고, 순서가 일부 수정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보편적으로 원형의 구조를 말할 때는 위와 같은 구조를 말한다. 다만, 어떤 영웅 신화에서든 '출발-입문-귀환'의 과정은 변하지 않는다. 당연한 이야기가 아니냐고 물을 수도 있지만, 세부적인 단계를 제시하여 이를 증명했다는 점에서 캠벨의 주장은 탁월하다.


그러나 문제가 하나 있다. 캠벨의 영웅 신화의 원형 구조는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에서 잘 설명되어 있지만, 신화에 대해 아무런 사전 지식이 없는 일반 독자가 읽고 이를 활용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언제나 그래 왔듯이 누군가 단점을 보완해주는 사람이 나타났다.




크리스토퍼 보글러의 영웅 스토리의 12단계


할리우드 영화 제작 스튜디오에서 스토리 컨설턴트로 일하고 있는 크리스토퍼 보글러는 캠벨의 영웅 신화의 원형 구조를 정리하여 '영웅 스토리의 12단계'로 재탄생시켰다. 보글러는 신화의 원형이 아닌, 할리우드 영화 제작에 있어서 실용적인 구조를 만드는 것에 초점을 맞추었다.


영웅 스토리의 12단계는 다음과 같다.


1. 일상세계: 스토리의 시작 부분에 해당하며 주로 일상 세계에서의 영웅의 평범함과 영웅이 가게 될 특별한 세계의 차별성을 보여준다.

2. 모험으로의 부름: 어떤 사건 등을 계기로 영웅이 일상 세계를 떠나 특별한 세계로 모험을 떠나게 될 것이란 사실을 암시해 준다.

3. 부름의 거절: 영웅은 모험에 대한 의심, 두려움 등으로 부름을 거절한다.

4. 조언자의 만남: 영웅은 자신이 가야할 방향을 제시해 줄 수 있는 조언자를 만난다.

5. 첫 번째 관문의 통과: 영웅이 모험을 떠나게 되는 계기가 주어지고 마침내 특별한 세계로 들어간다.

6. 시험, 아군, 적군: 영웅이 몇 가지 시험을 통과하고 아군이 생김과 동시에 그에 대응하는 적들이 발생한다.

7. 가장 깊숙한 동굴로의 접근: 테스트 과정을 성공적으로 끝낸 영웅이 향후 다가올 엄청난 시련에 대비하는 과정이다.

8. 고된 시련: 영웅이 적 깊숙한 곳에서 도저히 이길 수 없는 강력한 어둠의 실체와 만나게 된다. 죽음에 직면한 상황을 극복하고 영웅은 다시 태어난다.

9. 보상: 시련을 극복한 영웅에게 승리를 위한 보상이 주어진다. 승리를 위한 영감, 불멸의 영약, 중요한 정보 등을 얻는다.

10. 귀환: 보상을 손에 쥐고 집으로 돌아오지만 적들이 재결합하고 영웅을 위협한다. 이에 따른 영웅의 새로운 모험이 시작된다.

11. 부활: 죽은 줄 알았던 적 또는 재결성된 적이 나타나고 이들 세력과 마침내 최후의 전투를 수행하고 승리한다.

12. 영생의 귀환: 영웅이 보상을 가지고 고향에 돌아와 다른 사람과 나누는 등 일상으로 복귀한다.


이처럼 영웅 스토리의 12가지 단계가 서사적 구조를 통해 실현될 때 출발, 입문, 귀환의 순차적 흐름으로 나타나게 되고 각 단계별로 기본적인 이야기의 요소들이 제시된다.


보글러는 단계뿐만 아니라 캠벨의 '출발-입문-귀환'을 일반적 시나리오의 3막 구조인 '상황-갈등-결말'로 제시했다. 보글러의 스토리 구조를 보면 캠벨의 원질 신화 구조 중 출발 단계는 거의 충실히 반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다만 '고래의 배' 요소만이 2막으로 넘어가 '심연 깊은 곳으로의 접근'으로 대치되어 스토리 상 위기 장면에 대응하게 만들었다. 한편 캠벨의 입문, 귀환 단계는 보글러의 스토리 구조에 와서 상당히 축약되고 변형된다. 입문 단계의 여러 요소는 제2막의 '시련' 부분으로 통합되고 '신격화' 요소는 '보상'으로 집약된다. 귀환 단계의 여러 요소도 귀환 과정 자체로 집약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실제로 신화의 서사 구조를 차용한 영화, 게임 등 문화콘텐츠 서사구조를 분석해 보면 보글러의 3단계 스토리 구조를 통해 전체 서사구조가 짜여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이외에도 신화의 원형적 구조를 차용해 스토리 제작에 있어서 도움이 되는 유명한 이론으로는 보이틸라의 심리 곡선 12단계, 노스럽 프라이의 신화 '내려앉기'가 있다. 실제로 이러한 이론들은 할리우드 영화 제작 현장에서 매우 유용하게 사용되고 있다.


브런치에 올라오는 많은 글을 보다 보면 많은 사람들이 좋은 이야기를 만들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다. 이제 막 발걸음을 뗀 그들에게 캠벨의 영웅 신화의 원형 구조, 보글러의 영웅 스토리의 12단계 구조는 훌륭한 길잡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참고자료


김윤아˙이종승˙문현선, 《신화, 영화와 만나다》, 아모르문디, 2015.

조지프 캠벨, 이윤기 역,《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 민음사, 1999.

크리스토퍼 보글러, 함춘성 역,《신화, 영웅 그리고 시나리오 쓰기》, 비즈앤비즈,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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