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와 문화콘텐츠
* 이 글은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의 스포일러를 담고 있습니다.
뭔가 뜬금없어 보인다. 스파이더맨과 신화라니. 우리가 알고 있는 신화 속에 스파이더맨이 있다는 말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스파이더맨 속에 우리가 알고 있는 신화가 있다. 수수께끼 같은 말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이 글을 다 읽고 나면 당신은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사람들은 스파이더맨에게 묻는다. 당신이 이제 어벤져스의 리더냐고. 당신이 토니 스타크의 후계자냐고. 스파이더맨은 혼란스러워한다. 닉 퓨리는 스파이더맨에게 임무를 맡기려 한다. 여전히 스파이더맨은 혼란스러워한다. 설상가상으로 토니 스타크는 자신의 자리를 스파이더맨에게 직접적으로 맡긴다. 스파이더맨은 혼란스러운 나머지 사리를 구분하지 못하고 빌런 미스테리오에게 토니가 남긴 AI 선글라스를 넘긴다.
빌런에게 토니의 기술력이 넘어가자 재앙이 시작된다. 미스테리오는 AI를 악용하여 도시를 파괴하기 시작한다. 이때 해피가 등장한다. 해피는 아이언맨을 돕던 것처럼 스파이더맨을 돕고, 스파이더맨은 놀랍게도 직접 슈트를 제작한다. 그리고 이때, 아이언맨이 무언가 만들 때 흘러나왔던 밴드 음악이 흘러나온다. 그리고 스파이더맨이 말한다.
"이 세상엔 새로운 아이언맨이 필요해요"
<어벤져스 엔드게임>을 통해 인피니티 사가가 마무리되었다. 아이언맨은 죽고, 캡틴 아메리카는 나이를 먹었으며, 토르는 지구를 떠났다. 어벤져스를 지키던 핵심 캐릭터들은 사실상 남아있지 않게 된 것이다.
그러나 어벤져스에는 아이언맨, 캡틴 아메리카, 토르와 같은 캐릭터가 필요하다. 중심을 잡고 그 정체성을 유지하며 세상을 지켜줄 히어로 말이다. 마블은 스파이더맨을 그 자리에 낙점했다. 그리고는 아이언맨의 모습을 스파이더맨을 통해 보여주었다.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은 아이언맨의 원형을 스파이더맨에 담아낸 영화다. 여러 지점에서 그 증거가 드러난다. 우선 사람들은 스파이더맨에게 아이언맨의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냐고 묻는다. 또 아이언맨은 자신의 AI 선글라스를 스파이더맨에게 남긴다. 결정적으로 스파이더맨이 슈트를 만들 때 아이언맨을 연상케 하는 BGM이 흘러나온다. 해피는 그런 스파이더맨의 모습을 보며 흐뭇하게 웃는다. 모든 증거들이 스파이더맨이 아이언맨의 자리를 차지할 것임을 가리키고 있다.
그러니까 스파이더맨에게 아이언맨 적인 모습을 입힘으로써 마블은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주인공 자리를 스파이더맨에게 부여하고 있다. 그런데 아이언맨 적인 모습이라는 말은 참 애매하게 들린다. 아이언맨 적인 모습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이제 신화적 원형성을 언급할 차례다. 캐릭터는 하나의 독립된 개체로 존재하는 것 같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잘 만들어진 캐릭터에는 항상 다양한 신화적 원형성이 부여되어 있다. 아이언맨을 살펴보자. 아이언맨의 신화적 원형으로 쉽게 떠오르는 것은 헤파이스토스다. MIT를 수석으로 조기 졸업한 토니 스타크는 놀라운 슈트를 뚝딱 만들어낸다. 또 그에게는 유능한 조수 쟈비스가 있다. 쟈비스는 마치 헤파이스토스의 조수인 물의 정령과 흡사하다. 심지어 둘은 공통적으로 아버지에게 무시받거나 버려졌으며, 예쁜 아내를 두고도 바쁜 탓에 그녀를 잘 돌보지 못한다.
그러나 아이언맨을 헤파이스토스의 재현이라고 보는 것은 무리다. 우선 외적으로 너무 다르다. 헤파이스토스는 올림포스 신 중 대표적인 추남으로 불리는데 반해, 토니는 준수한 외모를 가지고 있다. 헤파이스토스는 신들의 온갖 뒤치다꺼리를 맡아서 하는 반면에 토니는 잡일이라고는 하나도 하지 않는다. 그것은 아이언맨을 구성하는 다른 원형이 존재한다는 증거다.
대표적인 다른 원형으로는 디오니소스가 있다. 아이언맨이 처음 탄생하는 <아이언맨>에 처음 등장하는 토니의 손에는 술잔이 들려있다. 그는 도박을 하느라 정부가 주최하는 시상식에 불참하기도 하고, 중요한 비즈니스 미팅을 앞두고 진탕 술을 마시며 놀기도 한다. 두말할 필요 없이 디오니소스적이다.
스파이더맨에게 아이언맨의 원형인 헤파이스토스가 비추었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라는 거대한 세계에서 캐릭터의 세대교체, 신화적 원형성에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