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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병한 May 30. 2019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인피니티 사가

마블 스튜디오


"(만화) 스토리를 만들던 회사가 이제 스스로 스토리가 되고 있다."
(AP통신)


지금은 상상하기 어렵지만 마블은 상당히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었다. 익히 알려져 있듯 마블은 1939년 설립되어 엑스맨, 스파이더맨 등 슈퍼 히어로 만화를 책과 잡지로 판매해온 기업이다. 1990년대 중반 출판 만화 시장이 급격히 축소되면서 파산 위기에 처했다. 이를 면하기 위해 '엑스맨'은 20세기 폭스사, '스파이더맨'은 소니 픽쳐스로 넘기며 연명했다. 그런데 헐값에 넘긴 만화 캐릭터가 영화로 제작되면서 막대한 수익을 내자 깜짝 놀랐다. 남은 캐릭터는 아이언맨, 토르, 캡틴 아메리카와 같은 속히 'B급' 캐릭터뿐. 우여곡절 끝에 <아이언맨>을 제작했고 흥행에 성공하며 화려하게 부활했다. 하지만 여기까지는 별로 특별할 것도 없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한 편의 성공한 영화가 아니라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다.


마블 10년의 유산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 <어벤져스: 엔드게임>의 감독 조 루소는 이렇게 말다.

"마블 세계관의 힘은 거대한 유기체처럼 각 부분이 달라지고 새로운 아이디어가 추가된다는 거예요."

<어벤져스> 개봉 당시 누군가 이렇게 말했다. "각각 캐릭터를 가지고 영화를 잘 만들 생각을 해야지 저걸 저렇게 짬뽕해버리는 것은 별로 좋은 생각이 아닌 것 같다." 틀린 말은 아니다. 보통 우리는 영화를 볼 때 주인공에게 집중한다. 대중성을 띈 상업영화에서 주인공은 많아봤자 2~3명 정도다. 다양한 캐릭터의 매력을 많이 보여줘야 하는 마블의 입장에서는 각각의 영화를 많이 만드는 것이 목표인 것이 당연하다. 물론 그렇게 했고, 추가적으로 <어벤져스>를 제작했다. 그런데 이게 웬걸, 대박이 터졌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어벤져스>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에서 거점 플랫폼의 역할을 했다. 각각의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를 보고 해당 캐릭터의 팬이 된 사람에게 다른 캐릭터를 소개해준 것이다. 실제로 캡틴 아메리카는 <퍼스트 어벤져>를 통해 국내에 처음 소개되었지만 관객수 514,579명으로 흥행에 처참히 패배했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 캡틴 아메리카를 안다. 그것은 <어벤져스> 때문이다. 국내에서 크게 흥행한 <아이언맨>의 팬들은 아이언맨을 보기 위해 <어벤져스>를 관람하고 캡틴 아메리카를 자연스레 인지한다. <어벤져스>는 총 4편으로 각각의 영화가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차례로 살펴보자.


첫 번째 시리즈인 <어벤져스>가 기존의 단일 슈퍼히어로 캐릭터 영화 속에 등장한 캐릭터와 그들의 스토리 월드가 집결하여 거대한 스토리 월드의 기반을 다졌다면, 두 번째 시리즈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은 자체적인 캐릭터를 양산하기에 이른다. 비전과 울트론, 막시모프 남매가 양산된 캐릭터이다. 거점 플랫폼을 넘어 캐릭터를 양산함으로써 스토리 월드를 점차 확장시켜나가는 것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는 독립적으로 진행되던 이야기들을 하나의 거대한 스토리 월드로 집결시켰다. 이를 통해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속 서사가 하나로 수렴되었다. 마지막으로 <어벤져스: 엔드게임>은 10년간 축적해온 거대한 서사를 마무리하며 팬덤에게 바치는 헌정시의 역할을 다.


천재적이지 않은가? 마블의 기획력에 감탄을 금할 수 없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러한 기법은 그리 새로운 것이 아니다. 텍스트 간에 서로 연관을 맺도록 하는 기법은 문학에서 이미 '상호텍스트성(intertextuality)'로 익히 사용된다. 또 문화콘텐츠에서는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 기법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


개념을 대중적으로 확산시킨 헨리 젠킨스(Henry Jenkins)에 따르면 기존의 이야기에 새로운 설정과 캐릭터를 더해가면서 하나의 단일한 허구적 이야기를 만들어나가는 통합적인 과정을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이라고 한다. 이것은 디지털 테크놀로지의 발전에 따라 심화되는 컨버전스(convergence)의 한 현상으로, 젠킨스는 이를 문화적 컨버전스의 특징적인 트렌드로 간주한다.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있는가? 더불어 젠킨스는 다수의 미디어 플랫폼을 통해 제공되며, 각각의 텍스트가 전체 스토리에 분명하고도 가치 있는 기여를 하고, 프랜차이즈로의 진입은 자기 충족적이어야 하며, 어떤 상품이든지 전체 프랜차이즈로의 통로가 되어야 하고, 새로운 수준의 통찰과 경험을 지속적으로 제공해야만 한다고 말했다. 더 이상 뇌가 정보를 받아들이지 않는가? 예를 들어 살펴보자.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


문화콘텐츠는 내부적인 요소로 구성되어 미디어를 통해 유통된다. 내부적인 구성요소에는 캐릭터, 사건, 배경 등이 있을 수 있는데 이것을 미시콘텐츠라고 부른다. 미디어는 장르, 플랫폼, 디바이스 등이 있을 수 있겠다. <어벤져스>의 경우 아이언맨, 캡틴 아메리카의 엉덩이, 로키와의 대결 등이 미시콘텐츠가 될 수 있을 것이고 영화, 영화관, 넷플릭스, 스마트폰 등이 외부적인 형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을 전제로 하고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을 살펴보자.


A 콘텐츠와 B 콘텐츠가 있다. A 콘텐츠는 미시콘텐츠 a, b, c, d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B 콘텐츠는 미시콘텐츠 b, c, d, e로 구성되어 있다. A 콘텐츠가 먼저 개봉된 이후에 B 콘텐츠가 개봉되었다고 해보자. A 콘텐츠는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의 첫 번째 콘텐츠로 나름의 스토리 월드를 구축한다. 이후 B 콘텐츠가 개봉되면 A 콘텐츠를 이미 즐긴 관객들은 익숙함과 새로움의 적절한 조화 속에서 편안하게 콘텐츠를 향유할 수 있게 된다. b, c, d로 인해 이미 익숙하고 그곳에 e가 더해지는 것이 신선함을 주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다. A 콘텐츠를 즐기지 않았는데 B 콘텐츠를 접한 관객들은 이후 A 콘텐츠를 찾아보며 익숙함과 새로움의 적절한 조화 속에서 즐겁게 콘텐츠를 향유할 수 있다.


해당 프랜차이즈가 A, B, C, D, … 계속해서 이어진다면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은 나름의 브랜드로 형성된다. 중요한 것은 콘텐츠의 힘, 콘텐츠의 재미다. 미디어는 미시콘텐츠 a, b, c, d를 하나의 A 콘텐츠로 묶어내는 역할을 할 뿐,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 관점에서 유의미한 조건값이 되지 못한다. 콘텐츠에 어울리고 잘 전달해내는 것으로 족하다. 영화든 게임이든 애니메이션이든, 영화관이든 스마트폰이든 어울리면 괜찮다는 말이다.


말이 쉽지 실현하기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콘텐츠 강국이라는 우리나라도 BTS 외에는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을 제대로 구사하는 콘텐츠가 없다. 어쩌면 이 정도 규모의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은 마블이 아니면 실현하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성공적인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 구현을 위해서는 각각의 콘텐츠가 모두 독립적인 완성도를 갖추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는 이미 엄청나게 보유하고 있는 마블의 원작 코믹스가 힘이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마블의 수장 케빈 파이기는 인피니티 사가를 마무리하며 "MCU의 최종적인 결말을 내는 일은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 언급했다. 그리고 그 결과 엄청난 인기를 구가하던 캐릭터들이 우리 곁 떠나갔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되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에 대한 기대감은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가 단순한 캐릭터의 집합체가 아니라 하나의 브랜드라는 사실을 증명한다. 아쉬워하지 말자. 마블은 또다시 저력을 보여줄 것이다.





참고자료


박진수, <마블 트랜스미디어 스토리월드 구축 전략 연구: 영화 <어벤져스> 시리즈를 중심으로>, 한양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19.

헨리 젠킨스, 김정희원 외 역, 《컨버전스 컬쳐》, 비즈앤비즈,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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