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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병한 May 29. 2019

토르

인피니티 사가

토르의 인기는 어디에서 왔을까?


"I choose to run toward my problems and not away from them. Because that's what heroes do."

(나는 내 앞에 놓인 문제를 피하는 대신 정면으로 맞서기로 했다. 그것이 히어로가 할 일이기 때문이다.)


천둥의 신 토르


토르는 아이언맨, 캡틴 아메리카와 함께 인피니티 사가를 구성하는 핵심 캐릭터이다. 원작 코믹스에서는 가장 인기 있던 스파이더맨은 비교할 것도 없고 그들보다 인기가 없던 아이언맨, 캡틴 아메리카 보다도 인기가 없었다. 하지만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에 접어들어 토르는 엄청난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무엇이 토르에게 인기를 가져다주었을까?


이미 유명한 사실이지만 토르는 원작 코믹스 이전에 북유럽 신화를 창작소재로 삼고 있다. 북유럽 신화의 토르는 이렇게 소개되어 있다. "오딘의 아들인 토르는 천둥의 신이다. 그의 아버지 오딘은 교활한 반면 토르는 솔직하고 온화한 성정을 지녔다. 거대한 체구에 붉은 수염을 길렀으며 모든 신들 가운데 가장 힘이 세다. (중략) 토르가 사용하는 무기는 묠니르라는 놀라운 망치다." 오딘이 교활하게 나오거나 토르의 수염이 붉은색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들지만 나머지는 MCU의 토르를 묘사한 것이라고 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어쩌면 토르의 인기는 창작소재에 있을지도 모른다.


북유럽 신화 속 토르의 모습


분명 신화나 역사적 사실을 원천소스로 하는 문화콘텐츠만이 가치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떠한 원형도 가지지 않는 문화콘텐츠가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고 즐거움을 주는 경우도 많다. 방탄소년단에게 어떤 원형이 있는가? 아무런 원형도 없지만 방탄소년단은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준다. 그래서 원형을 가진 문화콘텐츠가 더 가치 있는 것이라는 주장에는 힘이 없다. 그러나 원형은 문화콘텐츠 창작 과정에 있어서 좋은 모티브가 된다. 토르의 경우처럼 말이다.


토르 시리즈 중 가장 흥행했던 <토르: 라그나로크>의 감독 타이카 와이티티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토르는 잘 생겼고 몸매도 환상적이잖아요.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죠. 토르는 선한 모든 것을 지지해요. 도덕적 신념이 강하죠. 무엇이 옳고 그른지 알고 있어요. 이번 영화에서는 우리가 사랑하던 자신만만하고 요란스러운 모습에 더 복잡한 감정선이 추가됐죠. 감정선이 제대로 그려지면 관객은 거기에 자신을 이입하고, 캐릭터가 떠나는 여정의 일부가 돼요. 하릴없이 팝콘만 먹는 게 아니라 진심으로 주인공이 잘되는 것을 보고 싶어 하죠."


그럼 우리는 토르가 옳고 그름을 잘 판단하고 감정이 풍부한 캐릭터이기 때문에 좋아하는 것인가? 동의하기 어렵다. 옳고 그름을 잘 판단하고 감정이 풍부한 캐릭터는 토르 외에도 수없이 많다. 관객들이 토르에 열광하는 이유는 캐릭터 토르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영화 토르에 산재해 있을 것이다. 차근차근 검토해보자.




창작소재와 문화콘텐츠


원작이라는 말을 많이 쓴다. 이 영화의 원작은 무엇인가? 이 애니메이션의 원작은 무엇인가? 이 책의 원작은 무엇인가? 쉽게 표현되지만 원작이라는 단어는 그리 정교하지 않다. 원작이 하나의 기록물로 존재하는 경우,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경우, 이미 한번 각색된 것을 다시 각색하는 경우 등 서로 다른 다양한 경우에 원작이 통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학계에서는 원작이 하나의 기록물로 존재하는 경우 이를 창작소재라,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경우 문화 원형이라, 이미 한번 각색된 것을 다시 각색하는 경우에는 원천 콘텐츠라 부른다.


토르의 경우 창작소재는 북유럽 신화, 원천 콘텐츠는 마블 코믹스다. 문화원형으로는 정의에 대한 추구, 아버지와의 갈등 등이 있겠다. 여기서 토르의 인기 요인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창작소재에 집중하여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 원천 콘텐츠는 아이언맨, 캡틴 아메리카에도 존재하니 고유한 토르만의 특징이라 보기 어렵고 문화원형의 경우 더욱 그렇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북유럽 신화는 어떻게 <토르>로 전환되었을까? 문학의 3요소 '인물', '배경', '사건'으로 나누어 확인해보자.


먼저 인물, 캐릭터이다. <토르>는 북유럽 신화의 핵심이 되는 캐릭터 '토르', '오딘', '로키'를 차용하였다. 토르와 오딘의 경우 비교적 신화와 유사하게 그려진 반면 로키의 경우 그대로 가지고 오지는 않았다. 사실 신화에서 로키는 오딘의 의형제로, 토르에게는 삼촌뻘 되는 캐릭터이지만 친구로 그려진다. 그러나 영화에서 로키는 오딘의 아들로, 토르의 동생이다. 성격이 바뀐 것은 아니다. 로키는 신화에서나 영화에서나 교활하고 음험하고 약삭빠르다. 다만 친구에서 아들로, 삼촌에서 동생으로 설정이 바뀌었을 뿐이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신화의 내용대로 로키가 아버지의 의형제로 그려졌다면 토르가 로키를 제압하는 모습이 다소 무례하게 그려질 수 있었을 것이다. 매력적인 캐릭터를 차용하되, 설정의 변화를 통해 방해요인을 제거하였다고 볼 수 있겠다.


토르 - 오딘 - 로키


다음은 배경이다. 신화에는 아스가르드를 중심으로 다음과 같은 아홉 개의 세상이 존재한다.

아스가르드 : 에시르 신들의 거처. 오딘이 자기 집으로 삼은 곳이다.
알프헤임 : 빛의 요정들이 사는 곳. 빛의 요정들은 태양이나 별처럼 아름답다.
니다벨리르 : '스바르탈페임'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난쟁이들이 산 아래에 살면서 놀라운 작품들을 만들어놓았다.
미드가르드 : 남자와 여자가 사는 세상, 우리 인간들이 거처로 삼은 곳이다.
요툰헤임 : 서리 거인과 산의 거인들이 돌아다니거나 살면서 자기네 궁전을 지은 곳.
바나헤임 : 바니르 신족이 사는 곳. 에시르 신족과 바니르 신족은 모두 평화 조약으로 맺어진 신들이며, 바니르 신족들 중에는 에시르 신족들과 함께 아스가르드에 사는 이들도 많다.
니플헤임 : 어두운 안개로 뒤덮인 세상.
무스펠 : 수르트가 지키고 있는 화염의 세상.
헬 : 전쟁에서 용감하게 전사하지 않은 자들이 가는 곳.
북유럽 신화의 세계관

신화의 세계가 위그드라실이라는 하나의 세계수로 구성되어 있는 반면, 마블은 이를 과학적 상상력과 결합하여 각각의 세상을 행성으로 해석해낸다. 아스가르드 행성, 미드가르드 행성(지구), 요툰헤임 행성 등으로 말이다. 뿐만 아니라 북유럽 신화의 세계관은 <토르> 뿐만 아니라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토대가 되는 세계관으로 작용한다. 물론 일부 각색된 부분이 있지만 세계관의 차용은 제작 과정에서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향유 과정에서 영화의 풍부한 해석과 이해를 돕는다.


마지막으로 사건이다. <토르> 시리즈를 이야기하면서 가장 좋은 작품 하나를 고르라고 하면 단연 <토르: 라그나로크>가 꼽힌다. <토르: 라그나로크>야말로 사건에 창작 소재를 훌륭히 활용한 영화라고 할 수 있겠다. 신화를 이미 알고 있던 관객에게 '라그나로크'라는 단어는 '헬라'와 '수르트'를 암시한다. 동일한 이유로 신화를 알지 못했던 관객에게는 영화를 보고 난 뒤 궁금증을 유발한다. 이야기를 어느 정도 짐작한 관객에게는 그것이 어떻게 영상화되었는지, 또 슈퍼히어로와 어우러지는지 확인하도록 만들고 사전 지식이 없던 관객에게는 원작의 내용이 무엇인지 궁금하게 하여 오랫동안 콘텐츠에 머무르게 하는 것이다. 물론 창작소재의 반영만이 영화의 흥행 원인이냐고 하면 수긍하기 어렵다. 영화의 내용 중 신화와는 전혀 무관한 것이 재미를 주기도 하기 때문이다. 단적인 예로 신화에는 헐크가 등장하지 않는다.


헐크와 수르트


정리해보면 <토르>는 북유럽 신화에서 매력적인 캐릭터를 차용하는 동시에 적절히 방해요인을 제거하였고, 세계관의 차용을 통해 제작과 향유의 이점을 확보하였으며, 사건을 차용하여 풍부한 향유를 유발한다.


사실 이것은 다분히 창작소재에 국한된 관점이다. 영화에 국한하여 재미 요소를 찾는 스토리텔링의 관점이나 콘텐츠 외적인 요소를 끌어오는 마케팅의 관점에서는 다른 의견이 나올 수 있다. 영화의 흥행 요인에 있어서 100명을 앉혀두고 물으면 100가지의 의견이 나온다는 말도 있다. 그렇다면 이것은 다 쓸데없는 소리인가? 그렇지 않다고 본다. 이 영화는 <아이언맨>이나 <캡틴 아메리카>가 아니라 <토르>다. <토르>에는 이러한 관점이 유의미하다. 당신의 의견은 어떠한가?





참고문헌


닐 게이먼(Neil Gaiman), 박선령 역, 《북유럽 신화》, 나무의철학, 2017.

고운기, <문화원형의 의의와 『삼국유사』>,  《한문학보》 24권, 우리한문학회,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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