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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병한 May 28. 2019

캡틴 아메리카

인피니티 사가

캡틴 아메리카는 꼰대다?


졸렬왕, 양아치, 꼰대 ….


캡틴 아메리카를 검색하면 자연스럽게 이런 부정적인 단어들을 만날 수 있다. 캡틴 아메리카의 어떤 모습이 그들을 화나게 한 것일까? 우선 캡틴 아메리카가 어떤 캐릭터인지 알아보자.


캡틴 아메리카가 처음 등장하는 <퍼스트 어벤져>의 시대적 배경은 1941년으로 2차 대전 참전을 위한 징집이 벌어지던 시기이다. 브루클린 출신의 허약해 보이는 청년 스티브 로저스는 입대를 위해 수차례 신체검사를 받지만 번번이 현역병 입대에 실패한다. 하지만 스티브 로저스는 굴하지 않았다. 동네 불량배들에게 두드려 맞으면서도 "I can do this all day."라는 말을 내뱉는 불굴의 의지를 가진 그는 지속적인 도전과 우여곡절 끝에 초월적인 신체조건을 가진 '캡틴 아메리카'로 재탄생하게 된다.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 캡틴 아메리카의 성격을 알아낼 수 있다.


슈퍼 히어로가 되기 전 왜소하고 허약한 모습의 스티브 로저스


첫째는 불굴의 의지를 가졌다는 것이다. 사실 캡틴 아메리카의 능력은 여타 히어로에 비하면 단조로운 수준이다. 강한 근력과 스피드, 튼튼한 방패가 전부다. 발목도 꺾이고 총에 맞으면 죽는다. 겨우 빠르게 뛰어다니며 방패를 집어던지며 싸운다. 혹자는 전투씬마다 수줍어지는 귀염둥이 캐릭터라며 조롱하기도 한다. 그러나 단조로운 능력에도 불구하고 당당히 어벤져스를 지휘하는 모습이야 말로 캡틴 아메리카의 힘이다. 구성원들이 최대한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리더의 책무랄까. 단호한 결단과 불굴의 의지는 어벤져스를 하나로 뭉치게 하는데 구심점으로 작용한다.


둘째는 미국의 상징하는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하면 떠오르는 가치가 두 가지 있다. 그것은 자유와 평등이다. 비록 <퍼스트 어벤져>의 감독 조 존스턴은 "이 영화에서 가장 미국적인 부분은 타이틀이며, 성조기로 만든 의상을 입은 남자가 등장하지만 그저 옳은 일을 하고, 나라를 위해 봉사하고 싶었던 남자의 이야기"라고 했지만, 영화를 보고 나면 오히려 반대로 들린다. 미국적인 색채가 너무 강하니 그것을 사전에 경계하라는 것으로 말이다. <캡틴 아메리카> 이후 <어벤져스> 시리즈에서도 캡틴이 자유와 평등을 가치를 추구하는 모습은 흔히 드러난다.


성조기가 연상되는 복장과 방패


두 가지 성격을 조합해보면 '자유와 평등의 가치를 수호하는 불굴의 의지를 가진 슈퍼 히어로'가 된다.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선거의 보수정당 후보로 적합해 보인다. '꼰대'라고 욕을 먹는 근본적인 이유가 여기 있다. 컨셉이 이미 그런 것이다. 욕을 먹더라도 이것은 캡틴 아메리카의 흔들리지 않는 정체성이다. 아이언맨과는 정반대다. 문제 상황에서 아이언맨은 캐릭터의 가치를 바꾸어 성장하는 반면, 캡틴 아메리카는 자신이 지닌 가치를 끝까지 관철시켜 나간다.


한계 상황에 직면할 때도 있다. 그러나 그는 언제나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한다. 언제나 모든 사람을 다 구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자신이 해낼 수 있는 범위에서, 구할 수 있는 최대한의 사람을 구하려고 한다. 캡틴의 매력은 바로 이 지점에서 나타난다. 비록 능력이 못 미치는 상황에서도 언제나 정의를 위한 불굴의 의지로 다져진 히어로라니. 매력적이지 않은가?




정의란 무엇인가?


<캡틴 아메리카 : 시빌 워>는 캡틴 아메리카와 아이언맨의 대립을 다룬 영화다. 발단은 소코비아 협정이었지만 갈등이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스티브 로저스와 토니 스타크의 개인적이고 감정적인 갈등이다. 두 가지 대립 지점에서 둘은 생각이 달랐고 입장이 달랐다. 누가 더 옳다 누가 더 그르다 말하기 어려운 상황이 벌어졌다. 물론 각각 캐릭터의 배경을 감안하면 각각 캐릭터를 따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섣불리 결론짓는 대신 이 경우에 생각해볼 수 있는 문제를 차근차근 검토해보자.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


스포일러 방지를 위해 다른 유명한 예시를 가지고 왔다. 당신은 기차를 운전하는 기관사이다. 기차는 정상적인 선로로 빠르게 달리고 있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당신은 기차의 브레이크가 작동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조치를 취하려는 순간, 앞에 선로 작업을 하고 있는 인부 5명이 보인다. 이대로 멈추지 않고 기차가 계속 간다면 그들은 모두 사망할 것이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오른쪽으로 간이 선로가 하나 보인다. 간이 선로에는 인부 1명이 선로 작업을 하고 있다. 기차의 브레이크는 고장 났지만 선로를 갈아타는 것은 가능하다. 선로를 갈아타면 간이 선로에서 작업을 하는 인부 1명은 사망하겠지만 정상적인 선로에서 작업 중인 인부 5명은 다치지 않을 것이다.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선로를 갈아타지 않고 5명의 사람을 칠 것인가? 선로를 갈아타고 1명의 사람을 칠 것인가? 사람들은 대부분 이렇게 말할 것이다. "간이 선로로 틀어야 합니다. 물론 1명이 죽게 되는 것은 안타깝지만 5명이 죽는 것보다는 1명이 죽는 것이 나으니까요." 피할 수 없는 선택의 상황에서 5명을 살리기 위해 1명을 희생하는 것은 정당해 보인다.


비슷하지만 조금 다른 사례를 살펴보자. 당신은 기차를 운전하는 기관사이다. 기차는 정상적인 선로로 빠르게 달리고 있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당신은 기차의 브레이크가 작동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조치를 취하려는 순간, 앞에 선로 작업을 하고 있는 인부 5명이 보인다. 이대로 멈추지 않고 기차가 계속 간다면 그들은 모두 사망할 것이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오른쪽으로 간이 선로가 하나 보인다. 간이 선로에는 인부 1명이 선로 작업을 하고 있다. 아니 그런데, 자세히 보니 간이 선로에서 작업을 하는 인부는 당신의 아버지이다. 기차의 브레이크는 고장 났지만 선로를 갈아타는 것은 가능하다. 선로를 갈아타면 간이 선로에서 작업을 하는 당신의 아버지는 사망하겠지만 정상적인 선로에서 작업을 하는 인부 5명은 다치지 않을 것이다.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앞선 사례와 다른 것은 간이 선로에서 작업을 하는 인부가 당신의 아버지라는 사실뿐이다. 여전히 간이 선로로 갈아타야 하는가? 아마도 답변하기 어려운 문제일 것이다.


다시 사례로 돌아와 간이 선로의 인부를 다른 사람으로 바꿔보자. 이번에는 당신의 아버지를 살해한 원수가 작업을 하고 있다. 어떤 결정을 내릴 것인가? 당연히 1명을 쳐야 하는가? 그렇다면 이렇게 한번 물어보자. 당신의 선택에 사람의 목숨이 걸린 일에서 그가 누구인지에 따라 선택이 달라지는 것이 정의로운가? 이 문제는 캡틴 아메리카와 아이언맨의 갈등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당신은 누구의 편에 설 것인가?





참고자료


마이클 샌델(Michael J. Sandel), 김명철 역, <정의란 무엇인가>, 와이즈베리,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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