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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병한 Dec 24. 2019

문화콘텐츠학을 구성하는
두 가지 관점

학문으로서 문화콘텐츠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문화콘텐츠'라는 말은 아주 익숙하지만, '문화콘텐츠학'이라는 말은 생소하다. 사소하게 접하고 쉽게 이해되는 듯하여 학문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지 의문이 들게 된다. 뭔가 엉성하고 어줍잖은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닌지 의심이 되기도 한다. 문화콘텐츠를 학문으로 연구할 수 있을까?


하지만 모든 학문은 어색한 채로 시작하기 마련이다. 철학에서부터 처음 과학이 태동할 때는 물질세계에서 진리를 찾으려는 노력이 아주 이상해 보였을 것이다. 신이 존재한다고 믿는 사회였기 때문이다. 형체가 드러나지 않는 신을 절대 진리로 여기는 세상에서, 형체가 드러나는 것으로부터 진리를 찾으려는 노력은 매우 허망해 보였을 것이다.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생각은 당대에는 아주 허망해 보이고 무가치해 보였겠지만 그와 같은 무수한 과학자들의 노력 덕분에 현대 사회에서 과학은 진리의 왕좌를 차지하고 있다.


과학뿐만 아니다. 사회과학은 과학적 연구 방법론을 모방하려는 시도로, 인문학과 과학의 이종교배에서부터 태동하였다. 자유 의지를 가진 인간을 대상으로 하면서 자연법칙을 탐구하는 방법론을 적용하려는 시도는 처음에는 아주 우습게 보였다. 하지만 사회과학은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 거시적으로 인간 세계에도 법칙이 존재했던 것이다. 그뿐만 아니다. 사회과학은 여러 학문을 다시 파생시켰다. 경영학, 경제학, 커뮤니케이션학과 같은 학문들은 모두 사회과학으로부터 파생되었다. 처음에는 현실 세계의 문제를 학문의 영역으로 끌어들이는 것이 아주 이상하고 저열해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 경영학, 경제학, 커뮤니케이션학과 같은 실용 학문들은 철학, 종교학과 같은 고전적인 학문보다 더 유용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중국 음식이라고 하면 당연히 짜장면, 짬뽕, 탕수육이 떠오르던 시대가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의 취향이 점차 변화하여 이제는 마라탕, 훠궈가 떠오르는 세상이 되었다. 여전히 짜장면 짬뽕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이 있지만, 변화가 일어났다는 점에 이의를 제기할 수는 없다. 학문도 마찬가지이다. 학문의 가치, 학문의 범주는 현실 세계의 필요성에 따라 변화한다. 태초부터 존재했던 학문이란 있을 수 없다. 모든 것은 사람들의 필요와 인식에 따라 변화한다.


문화콘텐츠학은 경영학, 경제학, 커뮤니케이션학 같은 실용 학문의 연장선에 위치한 학문이다. 문학, 역사, 철학과 같은 전통 인문학의 연장선에 위치하기도 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문화콘텐츠학이 어디서부터 왔냐는 것이 아니다. 그 학문적 뿌리가 어디에 있건 간에, 많은 사람들이 문화콘텐츠를 즐기고 현대인의 삶에 문화콘텐츠가 빠질 수 없는 요소가 되면서 문화콘텐츠학의 중요성은 점차 높아지고 있다.




문화콘텐츠학은 콘텐츠 제작에 도움이 되고자 한다는 점에서 실용 학문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우리는 이 학문을 좀 더 명료하게 받아들이기 위해 관점을 구분해볼 필요가 있다. 우선 문화콘텐츠학의 주된 관심사는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첫 번째는 문화콘텐츠의 보편적인 구조를 찾고자 하는 관점이다. 이러한 관점을 지닌 사람들은 여러 문화콘텐츠 속에 위치한 보편적인 구조를 찾아내고, 새로운 문화콘텐츠의 기획 개발에 유용한 모델을 제시하고자 한다. 두 번째는 개개 문화콘텐츠를 해석하고 성과와 한계점을 짚어내려는 관점이다. 이러한 관점을 지닌 사람들은 보편적인 구조에 주목하기보다 개개 사례의 특수성에 주목하고, 향후 문화콘텐츠 기획 개발에 유사 사례가 참고될 수 있기를 바란다.


첫 번째 관점과 두 번째 관점 중 어느 하나가 우위에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두 관점은 상호보완적이다.


콘텐츠의 보편 구조를 찾으려는 첫 번째 관점은 명쾌한 모델을 제시한다. 아주 간편하다. 현장에 바로 적용하기에 무리가 없다. 그러나 두 가지 단점이 존재한다. 먼저 여러 콘텐츠 사이에 공통되는 것만을 종합해야 하기 때문에, 아주 뻔한 모델인 경우가 대다수이다. 이론 자체는 명쾌하고 아름답지만 발전적이고 생산적이지 못할 수 있다. 또 생산적인 결론을 이끌어내더라도 그 결론이 타당하지 못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단 하나의 반례라도 등장한다면 그 이론은 타당성을 잃어버린다.


한편 개별 사례의 특수성을 찾으려는 두 번째 관점은 개별 콘텐츠에 집중하여 타당하고 구체적인 결론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유사한 사례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 결론은 무용지물이다. 새로운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에게 이러한 방식의 연구는 아무 도움도 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새롭다는 것은 기존에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이고, 기존에 존재하지 않았던 콘텐츠라면 당연히 기존에 연구가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어떤가? 두 관점 중 어느 하나가 더 낫다고 말할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 두 관점은 오히려 상호보완적이다. 명쾌한 모델을 제시하는 관점에 오류가 생기면 그 개별 사례의 특수성을 두 번째 관점이 확인해낸다. 또 개별 사례의 특수성이 확인된다면 첫 번째 관점은 기존의 이론이 이 특수성을 뭉쳐낸다. 두 가지 연구 흐름 모두 나름의 가치를 지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문화콘텐츠학의 세부 학문 분야는 두 가지 관점을 모두 가지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세부 학문 분야인 스토리텔링, 문화원형, 문화콘텐츠 마케팅(비즈니스)은 첫 번째 관점과 두 번째 관점이 혼재된 상태로 나름대로 학문 체계를 형성하고 있다. 이 두 가지 기본적인 관점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각각 흐름을 읽어낼 수 있지만, 기본적인 관점이 없는 사람에게 모든 학문 체계는 아주 혼란스럽고 무질서해 보인다.




이제 각각의 세부 분야에서 문화콘텐츠학이 어떤 논의를 뻗어나가고 있는지 확인할 차례다. 기대되지 않는가? 문화콘텐츠학은 당신이 콘텐츠를 좀 더 풍부하게 즐길 수 있도록 도움을 줄 것이다. 필자의 친절한 안내를 따라오다 보면 어느새 당신은 “왜 그 콘텐츠가 좋은지” 스스로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오늘의 정리

1. 문화콘텐츠학은 생소하지만 현대인들의 생활 방식에 의해 자연스레 만들어진 실용 학문 분야이다.

2. 문화콘텐츠학은 보편 구조를 찾으려는 관점과 개개 사례의 특수성을 찾으려는 두 가지 기본 관점으로 이루어져 있다. (사실 대부분의 학문이 다 그렇다.)

3. 스토리텔링, 문화원형, 문화콘텐츠 마케팅과 같은 세부 학문 분야 또한 기본 두 가지 관점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 관점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지함으로써 앞으로 문화콘텐츠학 논의의 흐름을 읽어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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