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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병한 Jan 10. 2021

'콘텐츠', 어떻게 만들어진 용어일까?

개념의 오용에 대하여

기사1. "국민이 직접 만든 '생활 속 에너지' 콘텐츠" (ㅇㅇㅇ데일리, 2020년 11월 25일자)
기사2. 이슈메이커 '상아요니니', 유쾌한 화장실 콘텐츠 "미끄러움 조심하세요." (ㅇㅇ일보, 2020년 6월 13일자)
기사3. 오피스텔 '완판' 성공비결은 콘텐츠?! (ㅇㅇㅇ경제, 2019년 12월 19일자)


위의 기사 제목에서 보듯, '콘텐츠'의 개념이나 범주의 스펙트럼은 너무 넓다. 용어가 탄생한 문화산업을 넘어, 다양한 분야에 범용적인 용례를 갖게 된 것이다. 심지어 위의 기사 2에서는 '화장실 콘텐츠'처럼 의미를 추측하기도 어려운 방식으로 쓰이고, 기사 3에서는 부동산의 설비나 주거편의시설을 일컫는 방식으로 쓰이는 등 범주의 스펙트럼이 너무 넓다 보니 원래 이 단어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불확실해졌다.


21세기 정보화 사회가 도래함에 따라 콘텐츠의 사회경제적 가치가 확대되었다. 하지만 문화콘텐츠는 세계적으로 통일된 개념이 정립되어 있지 않았고, 이를 지칭하는 용어도 나라마다 다르게 나타났다. 예컨대, 우리나라에서 지칭하는 콘텐츠 산업을 영국에서는 창조산업(Creative Industry), 미국에서는 엔터테인먼트산업(Entertainment Industry), 중국에서는 문화창의산업(文化創意産業)이라고 부른다.


우리는 말하는 '콘텐츠'는 문자 그대로 해석하자면 '내용물'을 의미하는 영어 단어이다. 우리나라는 2001년 문화관광부 산하에 문화콘텐츠 산업을 지원하기 위한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을 설립하였고, 그 이후로 '문화콘텐츠' 또는 '콘텐츠'라는 용어를 공식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 용어는 아날로그 시대에서 디지털 멀티미디어 시대로 전환됨에 있어서 '미디어'와 그 미디어를 통해 서비스되는 '내용물'을 구분하는 개념으로 유용하다.


아날로그 시대에는 미디어와 미디어를 통해 서비스되는 내용물이 결합되어 있었다. 예를 들어 영화는 필름·영사기가 위치한 영화관과, 드라마는 TV와 밀접하게 결합되어 있던 것이다. 이 시기에 '극장을 간다'는 말은 '영화를 본다'와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고, 드라마 시청을 위해서는 반드시 TV가 있어야만 했다. 그러나 디지털 혁명과 함께 등장한 멀티미디어는 아날로그 시대의 '미디어=서비스 내용물'이라는 등식을 바꾸어 버렸다. 이제 드라마와 영화는 TV, 영화관뿐만 아니라 수없이 다양한 플랫폼, 디바이스를 통해 소비된다. 비로소 미디어에서 분리된 무언가를 지칭할 용어가 필요해졌고, '콘텐츠'가 탄생하였다. 콘텐츠는 미디어에 탑재되어 있으면서도, 미디어를 언제든지 넘나들 수 있는 내용물을 가리킨다. 이는 콘텐츠산업의 핵심 교리인 OSMU(One Source Multi Use) 전략과도 잘 어울리는 개념이다. 미디어에서 분리된 콘텐츠는 기술을 통해 가공된 여러 형태로 미디어와 장르를 넘나들며 문화적 풍요를 가져온 동시에 경제적 부가가치를 극대화해왔다.


그런데 최근 '콘텐츠'라는 단어는 의미에 부합하지 않는 상황에서 과도하게 쓰이고 있다. 문장에서 삭제해도 의미가 전혀 바뀌지 않거나, 추가했기 때문에 오히려 의미가 더 혼란스러운 상황이 발생하는 식이다. '콘텐츠'는 의미를 잃어가고 있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철학자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은 '언어의 한계는 곧 세계의 한계'라는 말을 남겼다. 콘텐츠의 개념이 텅 빈 껍데기에 이른다면, 언젠가는 아무도 원래 의미를 알지 못하는 괴상한 단어가 되어버릴지도 모른다. 다시 상단의 기사 제목을 읽어보자. 어딘가 어색함이 느껴지는 제목이 있지 않은가?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Ludwig Josef Johann Wittgen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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