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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정희 Sep 07. 2015

늙은이와 젊은이, 시간 앞에서 대화를 나누다1

그림과 책이 어우러져 흘러가는 하나의 이야기.

 

첫 번째 주제 : 늙은이와 젊은이, 시간 앞에서 대화를 나누다 


인간은 그림과 글을 즐겨 ‘읽습니다. 왜 그럴까요? 여러 가지 답을 찾을 수 있겠지만 여기에서는 ‘읽기’라는 행위가 가져오는 결과에 주목하려 합니다. 인간의 ‘읽기’에는 두 가지 의미가 동시에 들어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으려는 공감이 그 첫 번째요, 타인에게서 나를 찾으려는 공유가 그 두 번째입니다. 이 둘은 출발은 다르지만 같은 곳에 이릅니다. 함께 살고 있음을 확인하려는 의지. 공감을 통해 개인은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의 일원이 되며 그 안에서 오롯이 하나뿐인 ‘나’를 다시 발견합니다. ‘미술관 옆 도서관’에서는 하나의 그림을 두고 책과 엮어 읽습니다. 그림과 책이 어떻게 공감과 공유를 이끌어내는지 각각의 장르에서 같은 주제로 변주되는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 이보게 젊은이, 잘려나가고 다시 자랄  머리카락처럼 자네 상처도 그렇게 다시 아물 것이네. 72.5 x 72.5, 캔버스 위에 소포지, 연탄재, 아크릴, 2009년


많은 화가 중에 유진숙의 그림을 제일 먼저 꺼내 놓는다. 한국의 젊은 작가이기 때문이다. 유진숙은 아주 젊은 화가인데 노인을 즐겨 그린다. 선이 거칠고 강렬하다.  

 

“나 자신이 직접 노인의 처지에서 지난 시간을 돌아보고자 그렸다. 그러다 보니 세월의 모진 굴레를 다 견뎌낸 그분들이야말로 시간이나 여유를 가진 모델인 걸 알게 됐다. 현재도 그렇지만 앞으로도  그동안의 상처와 아픔, 그리고 깨달음과 용서, 위로를 주제로 노인 모델 그림을 그리겠다”(출처 : CNB 저널 2010년 3월 인터뷰 중에서). 젊은 사람이 말했다 하기 어려운 말이다.  

 

“중학교 2학년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고등학교에 입학한 순간 사춘기가 왔고 두 달 만에 학교를 그만뒀다. 그래서 검정고시를 보고 대학에 진학했지만 더 크게 방황했다. 10년 만에 졸업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 경험이 내게는 너무나 큰 재산이 된 것 같다. 방황했던 만큼 그림을 더 그렸고 내가 나를 치유하는 방법이 됐다. 그림 때문에 그 시절을 이겨낼 수 있었고 그림이 내 운명이라고 생각한다.”(출처: CNB 저널 2010년 3월 인터뷰 중에서  

유진숙은 선이 굵고 색이 강렬해 한국의 프리다 칼로라 불리기도 한다. 프리다 칼로는 국내에서 다양한 형태로 그 삶과 작품이 조명되고 있다. 화가로서의 삶과 작품을 다룬 마로니에 북스의 [프리다 칼로], 멕시코 민중 벽화가로 유명했던 디에고 리베라와의 사랑, 예술, 정치활동에 초점을 맞춘 [프리다 칼로 & 디에고 리베라-다비치 2011 출간], 청소년들을 위한 평전으로 쓰여진 [사랑과 고통을 그린 화가 프리다 칼로-이룸출판사], 일기, 편지, 지인들의 구술 기록을 바탕으로 한 민음사의 [프리다 칼로-2005 출간]등 십 여편이 넘는 단행본이 출간되었고 셀마 헤이엑이 주연한 영화가 2003년도에 개봉되기도 했다.



유진숙의 그림과 함께 읽을 책 4권은 모두 젊은 이와 늙은 이의 만남을 주제로 한 이야기들이다. 

[아버지의 오래된 숲]은 ‘현대의 소로 혹은 시튼’이라 불리며 미국 도서상 후보에 두 번이나 오른 생물학자 베른트 하인리히가 쓴 가족 사다. 아버지 게르트 하인리히는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 독일 국경지역 폴란드에서 태어나 생계와 전쟁과 벌수집에 전념하느라 전문적인 공부를 하지 못한 채 세계 생물학계의 아웃사이드로 생을 마감한 아마추어 연구자였다. 게다가 게르트가 맵시벌을 수집하고 분류하는데 평생을 거는 동안 현대 생물학은 급격한 변화와 발전을 이루며 수집과 분류의 세계(박물학)에서 멀리 이동해버렸다. 아버지는 자신의 불운과 생물학계의 냉대에 좌절했고 아들 베른트는 자식 학비도   

마련 못하면서 막노동으로 번 돈을 벌수집에 써 버리는 아버지로부터 멀치감치 달아나려 했다. 그러나 어느새 박물학자의 감성을 지닌 현대적 생물학자가 되어있었다.



독일의 자연사 박물관에서 아버지가 발견하고 수집한 맵시벌의 이름이 자신의 이름과 같음을 발견한 아들은 그제야 아버지의 세상을 마주 보고 ‘읽어야겠다’고 결심했다. 아들의 현대 생물학은 아버지의 박물학을 바탕으로 이루어졌다. [아버지의 오래된 숲]이 하인리히 가족의 일대기이면서 동시에 생물학사 100년의 기록이 된 까닭이다. 한편으로는 두 번의 세계대전을 겪으며 독일로, 독일에서 다시 미국으로 건너온 폴란드와 독일의 접경지역에 살았던 유럽인의 역사이야기이기도 하다. 아들은 아버지가 평생을 그리워하다 끝내 돌아가지 못했던 너도밤나무와 가문비나무가 뒤섞인 폴란드의 아버지의 숲으로 들어가 “생물학이라는 학문이 바야흐로 거대한 지각변동을 맞던 시대에 자연의 생태를 알고 싶어서 주체할 수 없었던 열정을 바쳤던 사람’으로서의 아버지를 ‘발견’한다. 

두 번째로 함께 읽는 책은 다니구치 지로의 만화[열네 살]이다. 48살의 나카하라는 출장길에 기차를 잘못 타는 바람에 고향에 가고 되었다. 오래전에 돌아가신 어머니 묘에서 잠이 들었다 깨어났더니 열네 살 시절로 돌아가 있었다. 40대의 능력과 정신으로 청소년기를 다시 살게 된 주인공은 당시 하지 못했던 많은 일들을 해 내며 설렘까지 느끼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아버지가 집을 나가셨던 바로 그 해로 돌아갔음을 알게 되었다. 부부 사이도 화목했고 자신의 일도 묵묵히 열심히 하셨던 아버지였기에 도대체 왜 가출을 감행하고 영원히 돌아오지 않았는지 알 길이 없었다. 나카하라는 자신에게 아버지를 붙잡을 기회가 주어졌다 생각했다.



그러나 기차역에서 떠나는 아버지를 만나지만 붙잡지 못한다. 아버지는 아주  오래전에 떠났어야 할 길을 이제 나선 것이었다.

처음에는 전쟁으로 그 다음에는 나카하라의 엄마, 다음에는 자식들 때문에 길을 떠날 수 없었다. 전쟁이 나기 전 골목에서 함께 뛰어 놀던 친구가 참혹한 전쟁 후 가족을 잃었고 자신을 위해 그 무엇도 시도해보지 못한 채 병원에서 쓸쓸하게 죽던 날, 아버지는 비로소 ‘살지 못했던 삶’을 돌아보았다. 전쟁이 나기 전에 가려던 그 길을 늦었지만 가보려는 아버지. 그는 기차역벤치에서 어린 아들에게는 결코 할 수 없었던 이야기를 중년의 나카하라에게는 들려준다. 세월이 흘러야 비로소 들리는 이야기. 어머니의 묘지 앞에서 잠이 깬 나카하라는 집을 나서던 아버지의 나이가 딱 지금의 자신과 같음을 알아차린다. 중년의 나카하라는 어디를 향해 가고 있었는지 스스로의 길을 돌아본다.    

2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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