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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동석 Feb 05. 2021

《성취예측모형》에서 인간과 환경조건의 문제


이 글의 시리즈를 읽고 있는 분들에게는 《성취예측모형》의 취지와 유래를 조금 더 설명하려고 한다. 지난 글에서 개인적 에피소드 몇 개를 소개했는데, 여기서 개인의 타고난 성향에만 집중해서 설명했다. 《성취예측모형》은 어떤 사람이 일생을 통하여 어느 정도 성취할 것인지를 예측하는 것을 개인의 타고난 성향으로만 축소해서 다루고 있다.      


잘 알다시피, 사회적 성취는 단순히 개인의 타고난 성향, 즉 역량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아무리 훌륭한 성향을 타고난 사람이라 해도 직무의 환경조건이 열악하면 높은 사회적 성취가 어려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환경조건, 즉 직무의 시스템적 조건이 어떤 것인지도 살펴봐야 한다. 따라서 사회적 성취는 사람의 타고난 역량과 환경조건의 함수라고 표현할 수 있다.      


▶ 사회적 성취 = f(사람, 환경조건)     


여기서 사람이라는 요소는 《성취예측모형》에서 다루고, 환경조건은 〈직무분석〉을 통한 직무설계와 조직설계를 포괄하는 《조직설계이론》에서 다룬다. 그러니까, 내가 지금까지 가르쳐온 인사조직이론의 핵심은 《성취예측모형》과 《조직설계이론》으로 구성된다. 물론 여기에 《리더십이론》이 하나 더 추가되어야 하지만, 여기선 한 마디만 하고 일단 논외로 하자.      


리더십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알려주는 고전을 15년 전에 번역·출간한 적이 있는데, 당시는 경영실무 중에 리더십에 목말라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조금 급하게 번역했다. 리더십의 본질을 이해하면 영웅적 서사로 꾸며진 리더십이 얼마나 잘못된 신화에 불과한 것인지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다. 하버드대 조직심리학자 리처드 해크만 교수가 쓴 《Leading Teams》라는 책이다. 지금은 절판되어 이번에 다시 번역하고 있는데, 아마 상반기 중에는 출간되지 않을까 싶다. 지금 우리나라는 잘못된 리더십에 중독되어 있다. 이 책으로 해독될 수 있기를 바란다. 리더십의 본질에 관해서는 이 책이 출간될 즈음에 다시 본격적으로 논의하자. 

   

앞으로 공부해보면 알겠지만, 조직의 성패를 결정적으로 가늠하는 《조직설계이론》도 흥미진진하다. 국정농단(이명박·박근혜), 사법농단(양승태 등), 검찰농단(윤석열 등), 감사농단(최재형 등)은 이 《조직설계이론》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이것 역시 조만간 얘기하기로 하고, 여기서는 두 가지 조건, 즉 개인의 역량과 조직의 환경조건을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는 점만 알고 넘어가기로 하자.     


지난 글에서 나의 개인적 삶의 단편을 소개한 이유는, 타고난 성향(역량)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설명하기 위한 것이지만, 동시에 환경조건 역시 역량 이상으로 중요하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나 같은 성향을 가진 사람이라도 이성적 언어가 통용되는 합리적 조직문화였다면 내가 왜 그 조직을 떠났겠는가? 만약 합리적 대화와 토론이 가능한 환경조건이었다면 그 조직에서 커다란 사회적 성취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렇듯 인간의 타고난 성향과 환경조건이 조화를 이루는 경우에는 의외의 커다란 성과를 낼 수도 있다. 물론 이런 경우는 아주 운이 좋은 예라 할 수 있다. 인생에서 계획하지도 않았고 통제할 수도 없는 영역에서 발생하는 행운과 불행이라는 요소도 중요하긴 하다. 행운·불행도 거시적으로 보면 환경조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이 요소도 나중에 함께 생각해보자.      


이렇게 사회적 성취는 다양한 원인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에 자기계발서처럼 나를 계발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가르침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 타고난 자신의 성향을 바꾸려고 노력하는 것은 아주 어리석은 짓이고 성공할 가능성도 없다. 사회적 성취는 타고난 성향보다 환경조건이 훨씬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사회적 구조와 시스템이라는 환경조건을 바꾸기 위해 다 함께 연대해야 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럼에도 여기서는 일단 사람으로서의 개인에게만 집중하자. 어떤 개인의 사회적 성취를 예측하려면 그 사람의 역량수준과 그 역량을 진단하는 방법에 의해 좌우된다(첫 번째 도표 참조).     


▶ 사람에 의한 사회적 성취 = f(역량수준, 진단방법)     


이 방정식에서 볼 수 있듯이, 어떤 사람의 사회적 성취는 역량수준과 진단방법에 의해 예측할 수 있다. 역량수준은 진단방법에 의해 결정되므로 그 방법론이 잘못되었으면 역량진단 결과는 아무짝에도 쓸모없게 된다. 그러므로 역량을 어떻게 진단하느냐가 관건이다. 그 방법론은 하도 많아서 여기서 다 소개할 수도 없거니와 그럴 필요도 없다. 어떤 방법이 우수한 것인지는 우리의 상식으로도 충분히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진단방법론은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이번 글에서는 두 가지만 설명하고 다음번 글에서 가장 중요한 세 번째를 설명하겠다.     


⚊ 첫째, 시뮬레이션 패키지(simulation package)가 있다. 마치 직무현장에서 시험을 보는 방식이다. 교재를 외워서 정답을 써 내려가는 시험성적이 아니라 현실적인 과제를 주고 그것을 풀어가는 과정을 관찰하고 후보자가 제안한 해결책을 검토하여 역량을 진단하는 방법이다. 이것을 시뮬레이션 테스트(simulation test)라고도 한다. 여기에는 집단토의(group discussion), 분석발표(analysis presentation), 모의과제수행(in-basket), 역할극(role playing) 등이 있다(두 번째 도표 참조).      


후보자들은 시험 현장에서의 행동이 관찰되기 때문에 ‘지금·여기(here & now)’에서 좋은 성적을 얻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즉 후보자들은 시험에 합격하기 위해 평소와는 다른 사고체계와 행동패턴을 보일 가능성이 높다. 이런 방식도 일종의 시험이기 때문에 역량진단에는 치명적인 한계가 있다. 이런 진단은 예측력이 거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는 상업적으로 쓰이고 있다. 전혀 효과가 없는데도 말이다.     


김대중 정부가 출범한 이후, 나는 한은 직원 신분으로 1999년 발족한 중앙인사위원회 위원장 정책자문관으로 봉사한 적이 있다. 중앙부처 국실장급을 고위공무원단으로 묶어 고위공무원으로 진출하려면 역량진단을 거치도록 했다. 직무분석을 포함한 직무설계와 역량진단에 관한 기초적인 내용을 가르쳤다. 당시 역량진단과 관련해서는 최소한의 인사기록을 검토하여 1차 역량진단을 통해 검증된 후보자들을 다시 2차 역량검증을 거치도록 자문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여기서 역량진단이란 시험을 보는 방식이 아니라 일상적인 직무상황에서 벌어진 과거의 행동패턴을 진단하는 방식이라고 했다. 그런데 공직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역량을 진단할 만한 인사기록 자체가 없다는 점이었다. 이게 무슨 말인지 뒤에서 설명하겠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대통령 직속의 중앙인사위원회가 귀찮은 존재여서 이 위원회를 아예 행안부로 통합시켰고, 2016년 다시 부활한 것이 현재의 인사혁신처다. 요즘 얘기 들어 보니깐, 엉망으로 바뀌었다고 들었다. 공무원들이 역량진단을 통과하기 위해, 즉 고위공무원단으로 승진을 위해 별도의 공부를 한다고 한다. 역량진단용 시험공부를 한다? 시험을 쳐서 역량진단을 하겠다? 미쳤다. 지금 인사혁신처 공무원들은 역량개념, 역량진단개념, 역량진단결과의 활용방법 자체를 전혀 모르고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나를 가장 답답하게 하는 것은, 아무리 좋은 것을 도입해도 시간이 흐르면 당초의 본질이 언제나 왜곡된다는 점이다. 좋은 것은 어떤 것이라도 비틀어버린다. 서양의 좋은 개념들이 한반도에 들어오면 원래의 의도와 취지가 완전히 사라진다. 이것은 환경조건, 즉 사회구조와 시스템의 문제라는 것을 알았다. 그것은 전근대적인 피라미드형 계급구조 때문이다. 기득권층에게 모든 권력이 주어지기 때문에 자신들에게만 이득이 되도록 모든 구조와 시스템을 왜곡시킨다는 말이다. 어떻게 이게 가능한지는 상당한 연구와 노력을 해야 할 수 있다. 이것도 시간 되는 대로 얘기할 것이다.     


불교, 기독교 등의 고등종교도 한반도에 들어와서는 샤머니즘과 결탁하여 불교도 아니고 기독교도 아닌 미신적인 광신도집단으로 변해버렸다. 이제는 붓다의 가르침이나 예수의 가르침 하고는 전혀 상관없는 종교라는 껍데기만 남았고, 오히려 가난하고 어리석은 서민들에게 가렴주구를 자행하고 있다. 상층부를 장악한 종교인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종교를 이용하기 때문이다.     


역량진단도 이처럼 껍데기만 남아있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뻔하다.  상층부를 장악한 공무원들이 제대로 된 역량진단을 통과할 수 없기 때문에 그들이 가장 잘할 수 있는 방법으로 시험을 치게 만든 것이다. 공무원들이 시험으로 역량진단을 통과한다. 더 웃기는 것은 역량진단 시험을 사전에 공부하도록 일정기간 업무에서 빼주기도 한다. 슬프게도, 학교든 직장이든 시험이 나라를 망치고 있다.     


⚊ 둘째, 시험이 아닌 면접으로 역량을 진단하는 방법이 있다. 행동사건인터뷰(behavioral event interview, BEI)라는 것인데, 이것은 시험상황에서 관찰하는 것보다는 비교적 예측력이 높다. 시험이 아니라 면담과정에서 후보자의 ‘과거·거기(there & then)’의 경험들을 살펴보는 것이기 때문이다(두 번째 도표의 맨 마지막 줄 참조).      


직장 생활 중 가장 보람 있었던 사건의 처음 상황(Situation)에서 어떤 역할(Task)을 맡아, 어떤 행동(Action)을 어떤 의도(Intention)로 했으며, 어떤 결과(Result)를 얻었고, 그래서 결국 어떤 새로운 상황(new Situation)으로 변화되었는지 알아보아야 한다. 이 기록을 〈STAIRS〉라 부른다. 이런 면담 내용을 분석해서 어떤 역량요소를 어느 수준으로 발휘하는지를 파악할 수 있도록 구조화한 면담방법을 행동사건인터뷰(BEI)라 한다.     


이것은 ‘지금·여기’라는 현재의 시험상황이 아닌 ‘과거·거기’라는 평소 일상적으로 하던 행동패턴을 알 수 있어서 역량을 코딩하기에 좋은 방법이다. 그러나 이것 또한 일종의 면접시험과 같아서 후보자가 과거 역할과 그 결과를 과대 포장할 수도 있다는 점이 약점이긴 하다. 전문적인 인사컨설턴트(competency assessor)로 훈련받은 면접관이라면 후보자의 과거 사건에 대해 인터뷰 과정에서 어떻게 진실을 확인하는지 그 스킬(skill)에 훈련되어 있기 때문에 약점은 보완될 수 있다. 그 스킬에 의해 〈STAIRS〉를 정리하여 인터뷰의 내적 일관성을 확인하면서 진실을 찾아갈 수 있다.     


여기서 사건이란 언제나 한 편의 짧은 드라마가 된다. 성공적인 스토리뿐만 아니라 가장 크게 실패했던 사건도 좋다. 스토리 속에서 어떤 역량요소를 어느 수준으로 발휘했는지를 발견하는 것이 바로 행동사건인터뷰(BEI)의 특징이다. 면접관은 인터뷰하면서 말하는 내용을 통해 즉석에서 코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과거를 진술할 때 분석적 사고력(AT)이나 개념적 사고력(CT)을 어느 정도로 발휘하는지 즉석에서 점검할 수도 있다. 물론 이것을 제대로 하려면 꽤 훈련을 받아야 한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에는 이런 면접을 통해 역량을 진단할 수 있을 정도의 훈련된 인사전문가가 거의 없다.     


▶ 단언컨대, 우리나라 고위공직 인사는 개판이다. 정말 개판이다. 입법, 사법, 행정 모두 그렇다.     


국힘당은 그렇다 치고, 민주당의 이낙연은 뭐하는 사람인가? 박병석은 지금까지 무슨 성과를 냈는가? 도대체 왜 그 자리에 가서 떡하니 앉아있나? 김명수는 대법원장이라는 직무를 맡은 후 한 일이 뭔가? 도대체 사법농단 연루된 판사들을 슬그머니 법복을 입혀서 재판하도록 한 것 이외에 뭘 했나? 최재형은 또 무슨 짓을 했는가? 뿐만 아니라 기재부 홍남기, 고용노동부 이재갑 등 늘공들이 그 자리에 앉을 수 있었던 어떤 과학적 근거가 있는가? 권력을 가진 자에게 눈에 띈 것밖에 너희들이 한 일이 뭐냐? 시민들의 가슴에 못을 박은 것 이외에 뭘 했단 말이냐?      


과거의 〈STAIRS〉로 진단을 받은 적도 없이 각자의 환경조건에 따라 생존의 비법을 터득한 자들이다. 이런 자들의 주특기는 자신을 이끌어줄 권력자에게 예쁨 받는 것이다. 양지바른 자리만 골라 다니는 애들은 정해져 있다. 일을 잘해서 성과가 출중한 사람들이 아니다.      


시민들의 필요와 요구를 무시하지만, 권력을 가진 인사권자에게는 입의 혀처럼 행동하면서 일하는 척한다. 언론에는 온갖 미사여구를 담아 보도자료를 뿌리는 애들이 공직사회를 장악하고 있다. 이들이 이너서클을 형성한다. 언제나 이들을 중심으로 회전문 인사가 이루어지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mofia가 그중에서도 가장 악질적이다. 금융경제분야는 일반인들이 잘 모르기 때문에 안 보이겠지만,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mofia가 한국 현대사에서 저지른 광기가 어떤 것인지 알 수 있다. 주의 깊게 찾아보라.      


나는 우리나라의 전근대적인 인사제도와 관행을 근본적으로 뜯어고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입법, 사법, 행정의 전 분야에서 인사패러다임의 대전환이 필요하다. 지금 고위공직에 앉아 있는 국회의원들, 판사들, 장차관들을 보라. 그리고 그들의 행태를 〈STAIRS〉 관점에서 관찰해보라. 대부분 역량진단에서 낙오할 것이다.     


과연 시민들을 위한 공복(公僕)으로서의 자세와 역량을 갖추었는가? 어림도 없는 얘기다. 그들은 오직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그 자리를 차지한 것뿐이다.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나와 보라.     


인사의 기본원칙을 분명히 해야 한다. 나는 이승만부터 문재인까지 역대 정부의 공무원 인사원칙이 뭔지 전혀 모른다. 그냥 권력자의 친소에 따라 회전문 인사를 하고 있다는 느낌밖에 없다. 이 위대한 과학의 시대에 대한민국의 인사시스템은 조선시대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     


이 시대를 사랑하는 자는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이 글을 쓰면서 점점 더 열을 받는다. 열 받으면 하고 싶은 말이 많아진다. 그래서 또 길어졌다. 오늘은 여기서 끝내야겠다. 다음 글에는 〈STAIRS〉를 확인하여 역량을 진단하는 가장 좋은 방법을 소개하겠다. 2021.01.30., 밤 11:30 이제 퇴근. 오타와 비문은 내일 수정 예정.     


2021.01.31., 16:50 수정 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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