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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동석 Feb 05. 2021

정치인 이낙연과 《성취예측모형》의 타당성과 신뢰성


이전 글에서 우리나라 공직사회의 인사관행은 개판이라고 했다. 정말 개판이다. 승진할수록 무능한 인간을 양산하기 때문이다. 지금 국가운영을 책임지고 있는 고위공직자들을 보라. 이들의 행태를 보면 정말 한심하다. 국회와 법원은 말할 것도 없고, 기재부, 교육부, 고용노동부, 행안부, 금감위, 금감원, 공정위 등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할 행정부처에서도 민주시민의 눈높이에 한참 부족하다.   

  

▶ 나는 왜 이낙연에 분노하는가?     


내가 아는 한, 현대정치사에서 70년대 군사독재 시절 박정희가 국회의원을 1/3씩이나 지명했던 유신시대 이후, 60%라는 압도적 다수 의석(180석)을 민주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몰아준 역사는 없었다. 2004년 노무현 탄핵시도 후, 후폭퐁으로 17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이 152석으로 과반을 얻은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다. 열린우리당이 지리멸렬하게 된 것을 보더라도 과반의석이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180석의 의미는 특별한 것이었다. 그것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었다. 우리 현대정치사에서 민주주의, 자유주의, 공동체주의, 법치주의, 환경주의 등 인류가 추구했던 가장 훌륭한 이념들이 상호작용하면서 민의가 분출한 의석수였다. 헌법 개정 이외에는 어떤 법규라도 입법할 수 있는 의석수였다. 지난 반세기 동안 민주주의가 가장 발달한 유럽 국가들에서도 볼 수 없었던 기념비적인 사건이었다. 과반수를 훌쩍 넘긴 이 숫자는 내 생애에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숫자일 수도 있다. 과반을 넘겼으면 그 정당이 하고 싶은 대로 입법을 해서 절대다수 시민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라는 의미였다.      


그러나, 21대 국회가 개원하고 이낙연이 당대표가 된 이후, 시민들의 일반의지대로 입법된 것은 하나도 없다. 시민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기는커녕 번번이 놀라게 했다. 작년 9월에 설치되었어야 할 공수처였는데, 늦어도 작년 말까지는 작동하도록 수없이 약속했다. 민주시민들은 기다렸으나 약속을 어겼다. 총리시절에도 말만 했을 뿐 이룩한 성과는 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느린 태도를 신중한 사람으로 여겼다. 그런데 신년 벽두에 이명박·박근혜를 총알같이 사면해야 한다는 말부터 꺼냈다. 그의 행동은 빨랐다. 그리곤 소신이라까지 말했다.      


나는 이때 이미 직감적으로 알았다. 아, 물 건너갔구나. 이낙연이 당대표로 있는 한, 공수처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것이라고 페북에다 썼다. 아니나 다를까. 공수처장과 차장의 인선을 보면서 그러면 그렇지 했다. 인선은 둘째 치고. 아직도 공수처는 작동하지 않고 있다. 이건 신중한 것이 아니다. 일의 경중완급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거나 다른 속셈이 있거나. 사면사건 이후 한 달이 지나도록 이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 구렁이 담 넘어가는 식으로 넘기려는 모양이다.     


정치인으로서 타당성도 신뢰성도 잃어버린 이낙연 같은 어리석은 사람을 보면서, 나는 앞으로 정치에 대해서도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은퇴한 경영학자가 현실 정치인들에게 정치가 뭔지 가르쳐야겠다는 생각을 하다니. 우리 정치판이 얼마나 썩어문드러졌고 낙후됐으면 그런 생각을 할까? 이낙연 같은 인간들이 정치의 기본조차 모르면서 정치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 정치란 무엇인가?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정치란 시민, 정당, 관료라는 세 집단 사이에 일어나는 역동적인 상호작용을 통해 시민집단의 이니셔티브(initiatives, 자발적 요구)를 위해 선택된 정치집단이 관료집단을 지배함으로써 시민집단의 이니셔티브를 실현해 가는 과정이다(첨부한 도표 참조).     


다시 말하면, 시민→(위임)→정당→(지배)→관료→(서비스)→시민→(위임)→정당→(지배)→관료라는 지속적인 순환과정을 거치면서 정반합적인 역사발전을 이룩해가는 과정이 곧 정치다. 이것이 헤겔의 역사철학이기도 하다. 이에 대해서도 추후에 조금 더 설명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정치인이나 정치학 교수들이 쓴 정치에 관한 글을 보면서 내가 평소에 정치를 생각하는 것과 동떨어졌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이들은 대부분 정치를 권력쟁취를 위한 전투적 게임이론으로 설명한다. 물론 정치인들이 시민들로부터 더 많은 위임권한을 확보하기 위해 정치판에서 정적들과의 게임적 성격이 있는 것은 부분적으로 맞다. 그러나 이것은 현실정치만을 생각한 조잡한 이론으로 보인다.     


정치적 이상을 실현하려면,  승자독식, 약육강식의 승패만으로 정의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도전과 응전의 지속과정을 통한 정(These)-반(Antithese)-합(Synthese)의 사회적 역동성, 즉 다이너미즘(dynamism)이라는 발전현상으로 정치를 설명하는 것이 더 적합하다.      


그런데, 어떤 관점에서 보더라도, 이낙연의 행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도대체 무엇을 위해 사면을 건의하겠다는 것인가? 게임에서 승리하기 위해? 게임 상대방이 누군데? 이재명? 아니면 국민의힘? 이건 말도 안 되는 해석이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사면하겠다는 건가? 아무도 모른다. 이낙연만이 알 것이다.     


그럼.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 이낙연은 사면건의가 소신이라고 했으니까 아마도 정치적 이상을 실현하고 싶은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민주시민들에게 더 많은 지지를 얻을 수 있도록 했어야 했다. 정치인은 자신의 소신을 말하려면 시민의 일반의지(general will)와 일치될 때만 가능하다. 그렇지 않다면 시민들의 역린을 건드리는 짓이다. 이낙연의 지지율이 폭락한 것을 보라.      


그러므로 정치인은 함부로 신념이니 소신이니 이딴 개소리를 해서는 안 된다. 시민들을 위한 공복, 즉 머슴인 주제에 자기 소신대로 하겠다는 게 말이 되나?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던 이낙연만 알고 있는 음흉한 속셈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이낙연은 정치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정치인이 된 것이다. 멍청하다고 밖에 달리 할 말이 없다.     


다시 말한다. 180석이라는 숫자는 무엇이라도 할 수 있는 권능을 민주시민이 부여한 것이다. 그런데 아무것도 안 했다. 이낙연 때문이다. 어떤 말로도 변명할 수 없다. 이낙연에게는 어떤 타당성도 신뢰성도 부여할 수 없다. 


지난 역사를 잊으면 안 된다.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시민집단이 자신들의 이니셔티브를 실현하도록 <국민의힘>이라는 정당을 선택했다. 이 정치집단이 관료집단을 지배함으로써 국가운영이 어떻게 되었는지 우리는 이미 경험했다. 사자방 비리와 무당에 의한 국가운영이라는 해괴한 일을 당했다. 시민들은 사법농단까지 당했다. 


정치는 그래서 중요하다. 시민은 정치인을 머슴으로 가차없이 부릴 줄 알아야 한다. 그들에게 천문학적인 세금을 퍼붓는 이유는 시민들이 정치인을 마구 부려먹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시민은 정치인을 존경하지도 말고 우러러보지도 말아야 한다. 정치인을 뽑았으면 가차없이 부려먹는 것은 바로 시민의 의무다. 그렇지 않으면 <국민의힘>을 뽑았을 때처럼 또 당한다. 이낙연에게 또 당해서야 되겠는가?     


경영실무를 하고 있을 때는 하도 바빠 나는 정치판에는 관심이 거의 없었다. 2014년 은퇴 후, 나라가 정말 개판이 되는 것을 보면서 이게 뭐지, 자세히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할 말이 많아졌다. 정치학자들은 자기들 밥그릇이라 제대로 말을 못하는지 모르겠으나 내 육체가 허락하는 한 할 말은 해야겠다. 나는 <국민의힘>이나 이낙연처럼 시민들의 일반의지를 배신하는 인간은 용납할 수 없다.     


할 얘기가 많으나 ‘경영학자가 보는 정치이야기’는 언젠가 본격적으로 할 때가 올 것이다. 그때 얘기하자.     


▶ 이제 그만 떠들고, 본론으로 들어가자     


일전에 어느 날 느닷없이 한국행정연구원의 부원장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다. 민주당의 머슴들이 하는 멍청한 짓에 답답해하고 있던 차였다. 국무총리 산하 〈경제인문사회연구회〉에서 발간하는 《경사연리포트》 2021년 2월호의 〈긴급진단〉 칼럼에 실릴 원고를 부탁했다. 그런 월간지가 있는지도 몰랐다. 과월호 몇 개를 읽어보니 내가 써도 되겠다고 생각해서 응했다.      


사법개혁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보여주고 개혁의 본질이 무엇인지에 대해 썼다. 원고지 43매의 글이다. 쓰는 내내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 이낙연과 그 똘마니들의 멍청한 짓을 생각하면 할수록 점점 게이지가 올라갔다. 이 멍청한 머슴들을 싸잡아 족쳐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내 맘대로 쓸 수 있는 개인적 공간이 아니라서 절제, 절제, 절제하면서 썼다.     


차분히 마음을 가라앉히고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개념으로부터 법원개혁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썼다. 그리고 그 시사점으로부터 우리가 배워야 할 개혁 포인트를 알 수 있도록 했다. 곧 나올 것이다. 청와대를 비롯한 정부요직에 두루 배포한다고 한다. 배포되는 대로 여러분에게 공유할 것이다. 민주당의 이낙연과 최고위원들은 이 칼럼을 보고 사법개혁과 행정개혁의 핵심이 무엇이지 제대로 이해하기를 바란다. 제발 정신 차리고 똑바로 일하기를 바란다.      


▶ 자, 이전 글에 이어서 진짜 시작하자     


《성취예측모형》에서 개인의 사회적 성취는 역량수준과 진단방법의 함수관계인데, 역량진단방법론은 세 가지라고 썼다.      


⚊ 첫째, 지금 시중에서 일부 상업적으로 유행하는 시뮬레이션 패키지(simulation package)는 시험상황에서 진단되는 것이라 타당성(validity)도 신뢰성(reliability)도 확보할 수 없다고 했다.      


⚊ 둘째, 행동사건인터뷰(behavioral event interview, BEI)는 비교적 괜찮은 방법이지만 〈STAIRS〉를 제대로 파악해서 진단할 만한 역량전문가가 거의 없다는 점에서 현실적으로 활용되기 어렵다고 했다.      


그래서 이제부터 나의 역량진단방법론을 설명하려고 한다. 그게 바로 세 번째 방법론이다.     


⚊ 셋째, 《성취예측모형》은 과거의 직무성과와 인사에 관한 세세한 기록, 즉 〈STAIRS〉*로 역량을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가장 확실하고 정확하기 때문이다. 정확하다는 말은 예측력이 비교적 높다는 뜻이고, 전문적인 용어로는 타당성(validity)과 신뢰성(reliability)이 높다는 의미다. 독일어권 국가에서의 역량진단과 인사평가는 대부분이 이런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 이 글을 처음 읽는 독자들은 〈STAIRS〉가 뭔지 모를 텐데, 이전 글에서 자세히 설명하였으니 아래 링크를 참고하기 바란다.


https://www.facebook.com/dongseok.tschoe/posts/10214267588963410     


그러나 우리나라 인사기록에는 조직 내의 성취에 관한 〈STAIRS〉를 거의 찾을 수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행동사건면접(BEI)를 통해 확인할 수밖에 없지만, 우리나라엔 이것도 제대로 할 수 있는 환경조건이 갖추어지지 않았다. 물론 민간기업도 이런 컨설팅서비스를 필요로 하지도 않는다. 헤드헌팅회사들도 학벌과 어디에서 근무했는지의 회사브랜드와 경험한 직위만으로 평가하고 만다. 그냥 주먹구구로 인사를 한다.      


민간기업이야 주먹구구로 하든 원시적으로 하든 그들의 책임이지만, 공적기관에서 일꾼을 선발할 때 절대로 그래선 안 된다. 공무원들의 인사기록카드를 보았는가? 혹시 공무원들이 이 글을 읽는다면 금방 무슨 얘기를 하려고 하는지 알 것이다. 인사기록 서류에는 개인의 역량을 진단할 수 있는 정보는 하나도 없다.      


인사기록카드가 10년간 쌓여도 이 사람이 도대체 어떤 역량요소를 어느 수준으로 발휘할 수 있는지 알 수 있는 어떤 정보도 없다. 매년의 근무평가 점수와 S,A,B,C,D 정도의 등급만 있을 뿐이다. 이제 왜 공직자들의 역량진단을 현장시험방식으로 바꾸었는지 알겠는가? 〈STAIRS〉가 없기 때문이다. 그저 시험 보는 게 가장 객관적이라고 믿는 것이다. 그러니 무슨 수로 역량진단을 하겠는가?      


간단히 정리하자. 〈STAIRS〉가 없다면 역량진단은 불가능하다. 공직사회에는 〈STAIRS〉가 없다. 공무원들이 승진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요령은 권력자에게 예쁨 받는 것뿐이다. 공무원들은 상관에 대한 의전행위가 업무량의 1/3을 차지한다. 나머지 2/3는 자신이 얼마나 열심히 일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느라 애쓰는 일이다. 자신이 맡은 직무의 본질이 뭔지는 아무 상관도 없다. 인사고과, 근무평가, 성과평가, 역량평가 등 허울 좋은 용어를 사용하지만 어차피 상관의 일방적인 평가일 뿐이다. 전혀 타당하지도 않고 신뢰할 수도 없다. 공무원들은 알 것이다. 그게 아무런 의미 없는 행위라는 것을. 어차피 인사고과등급은 이미 상대평가로 정해져 있다는 것을.     


▶ 내가 진단하려는 고위공직 후보자들의 〈STAIRS〉 자료는 과연 믿을 수 있는가?     


내가 《성취예측모형》을 통해 고위공직자나 그 후보들의 역량을 진단할 수 있다고 생각한 근거는 과거의 커다란 사건일수록 언론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어 〈STAIRS〉를 분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언론사의 편향성을 감안하더라도 〈STAIRS〉를 확인하는 데는 크게 어려움이 없다. 요즘은 기존의 대형언론사도 있지만, 워낙 좋은 팟캐스트와 유튜브 방송도 많고, 믿을 만한 인사들이 개인적으로 하는 SNS와 블로그도 많아서 기록자료는 풍부하다.      


더구나 하나의 사건만을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후보자가 그동안 다양한 사건 속에서 처신했던 기록과 그 성과를 파악할 수 있다. 여러 사건을 보면 후보자의 행동패턴의 일관성을 파악할 수 있어 역량요소와 그 수준을 코딩하는 데는 어려움이 없다.      


이 《성취예측모형》 자체의 타당성(validity)과 신뢰성(reliability)은 이미 여러 컨설팅회사를 통해 검증되어 왔다. 이미 서구의 컨설팅회사에서는 학문적으로도 상업적으로도 확인되어 널리 활용되고 있다. 특히 역량요소별 정의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현실에 부합하도록 미세조정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왔다. 다만, 국내의 낙후된 인사시스템과 관행 때문에 학문적 수요는 물론 상업적 시장도 활성화되지 않았을 뿐이다.     


아무튼 《성취예측모형》 자체는 내가 그동안 끈을 놓지 않고 지속적으로 업데이트하면서 한국화를 위해 노력해왔고, 세월이 흐르면서 데이터가 조금씩 쌓여 개념정의를 시대에 부합하도록 조정해왔다. 따라서 《성취예측모형》 자체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이 《성취예측모형》을 기반으로 처음 시도하는 고위공직자들에 대한 진단결과의 타당성과 신뢰성에 대해서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타당성(妥當性)은 역량요소에 해당하는 자료와 기록을 코딩했느냐의 문제라서 내가 직접 역량사전과 개념들을 일일이 정의했고 그에 따라 〈STAIRS〉를 분석하고 있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 


코딩을 위해 많은 〈STAIRS〉 자료를 수집하고 분석해야 하는 노동량을 내가 감당할 수 있느냐가 더 큰 이슈다. 몇몇 제자들이 있으나 다들 현직에서 바쁘게 일하느라 일손을 빌릴 수는 없어서 내가 시간 나는 대로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하고 있다. 이건 걱정할 필요가 없다.     


다만, 신뢰성(信賴性)이 고민이긴 하다. 신뢰성이란 내가 아닌 다른 전문가의 코딩으로도 동일한 결과가 도출되느냐의 문제다. 고민인 이유는 국내에서 역량요소를 제대로 코딩할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현직에서 바쁘게 일하는 몇몇 제자들에게 부탁할 수도 없는 실정이라 현실적인 고민이긴 한데, 하나의 해결책으로 후보자들과 전혀 관련이 없는 일부 지인들에게 코딩결과를 보여주고 피드백을 받는 방법을 현재 생각 중이다. 


이 방법은 역량진단을 전혀 모르는 일반인들의 직관적 판단과 과학적 역량진단 결과 사이에 괴리가 왜 발생하는지 그 원인을 찾음으로써 신뢰성 이슈를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나는 생각한다. 아무튼 시도해볼 예정이다.    

 

▶ 여담으로 아주 오래된 경험 이야기     


1980년대 나의 석사와 박사학위를 지도해준 크뤼거 교수는 개인의 역량진단모형을 기업조직으로 확장하여 활용할 수 있는 콤파스(KOMPASS) 모델을 만들었는데, 이것을 실제 기업실무에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당시 이 모델의 실무적 응용 과정에 나도 손톱만큼 참여했었다. 내가 여기에 참여시켜달라고 요청했고 기꺼이 허락해주었다.      


핵심은 이렇다. 언론보도는 기업으로서는 매우 중요한 홍보자료이자 기업의 사회적 위상 또는 조직역량을 언론인의 시각에서 소비대중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독일 언론사들은 기업과의 유착관계가 거의 없기 때문에 기업에 대한 객관적 시각을 제공한다. KOMPASS는 기사내용에 따라 기업의 전략적 선택을 어떻게 할 것인지를 참고하도록 돕는 모델이었다.      


내가 예상했던 대로 기사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노동량이 제일 많았다. 역시 독일인들답게 모델변수들에 비해 기사 내용이 빠지지 않으면서도 겹치지 않도록 모델 자체를 조정하고 응용하는 과정을 체험할 수 있었다. 나도 교수의 여러 제자들과 함께 타당성과 신뢰성을 검증하는 작업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Wilfried Krüger, KOMPASS: ein Konzept zur mehrdimensionalen Planung und Analyse strategischer Erfolgssegmente 1986 참조.)       


그 때의 경험이 〈STAIRS〉가 실린 언론기사내용만으로 고위공직자 또는 그 후보자들에 대한 역량진단을 하도록 나에게 용기와 영감을 주었다고나 할까, 나를 이 길로 이끌었다고나 할까. 김대중 정부시절 중앙인사위원회 위원장 정책자문관으로 공무원들을 가르치면서 이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한지 20년만에 본격적으로 시작한 일이다. 정말 오래된 얘기다. 귀차니스트인 내가 이 일을 얼마나 할 수 있을지 나도 모르겠다. 아무튼 그렇게 시작되었다.      


***     


아이고, 또 길어졌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퇴근한다. 2021.01.31., 23:32 오타와 비문은 내일 수정 예정. 이렇게 2021년 1월이 지나가고 있다. 아무쪼록 편안한 밤 되시길.     


2021.02.01., 11:47 수정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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