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명의 뜻 바로 잡아야... 자신의 생각과 입장을 당당히 밝히는 삶 필요
문뜩 책 한 권을 읽다가 변명이란 단어에 대해 잠시 생각해 봤다. 왜 누구나 이런 소리를 들어봤을 테다. 자기가 내게 물어놓고는 "변명하지마" 연애싸움을 해도 "변명하지마" 그런게 아니라며 설명해도 "그런 변명이 내게 통할 것 같아?" 답답하고 미칠 노릇이다.
그 누구보다도 이 변명(辨明)이라는 단어가 제일 억울할 듯 싶다. 변명이라는 뜻을 사전에 잠시 찾아보면 이렇게 나온다. 1) 옳고 그름을 가려 사리를 밝힘 2) 잘못이나 실수에 대해 그 까닭을 말함
변명이라는 단어는 오늘 날 우리가 쓰는 것처럼 절대 부정적인 어감을 가진 단어가 아니었다. 말 그대로 '사실과 입장을 말과 글로 명백히 밝힌다는 의미다. 故 이규태 선생이 쓴 <된장 속의 고깃덩이>를 보면 옛날 <주역>에도 '아주 조그마한 일이라도 변명이 있어야 한다'고 했고, <관자>에도 사물이나 이치, 사리를 정하는 데 있어 변명은 예의다'까지로도 말하고 있다. 그만큼 우리가 공동체에서 살아가는 데 있어 변명은 필수적인 요소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왜 변명이 이처럼 절대 해서는 안 될, 하지 않으면 본전이고, 하면 본전까지 까먹을 수 있는 입장으로까지 내쳐지게 됐을까? 우리나라 고유의 유교문화와 사회적인 의식구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흔히 우리는 변명을 긍정적으로, 당당히 사용하기 보다는 자신의 죄과를 덮거나 불리한 입장을 유리하게 전환하기 위해, 또 진실이나 사실을 왜곡해 자신에게 불리하지 않도록 전개하기 위해 이 좋디 좋은 변명을 '변명거리'로 만들어 버렸기 때문이다.
서양문물이라고 해서 무조건 좋고, 우리 것이라고 해서 무조건 후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지만, 우리 것이라도 잘못된 것은 바로 잡고 시대의 흐름에 순응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자신의 입장을 명백히 밝히고, 상대가 사실을 있는 그대로 인지해 서로 오해가 없도록 하도록 하는 것이 바로 변명의 역할이다.
우리는 직장이든 어디든 어떠한 원치 않는 결과가 나왔을 때, 내 생각과 내 입장을 명확히 밝히지 않아 오래도록 속앓이를 하는 경우가 많다. 그건 미덕이 아니다. 그 죄과는 고스란히 자신에게 돌아온다. 그때는 이미 늦는다. 뒤늦게 이제와 변명한다고 철퇴를 맞기 일쑤다. 그럴 바엔 차라리 처음부터 당당히 변명하는 습관을 들이자. 이는 핑계가 아니다. 핑계는 이미 일이 터진 후 수습하는 차원에서 입장처리인 반면, 변명은 사전에 입장처리다. 그 둘은 명확히 구분해야지 쌍끌이로 몰아가선 안 된다.
이제부턴 변명을 할 수 있는 삶을 살자. 내 생각을 명확히 밝히자. 쑥스러워서, 부끄러워서, 핑계같아서, 말이 많아 보여서 원치 않는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오히려 모두에게 마이너스이기 때문이다. 변명을 잘 할 수 있는 개방된 사회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