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주기, 안데르센의 어머니 이야기를 떠올리며
어린시절 초등학교가 그렇게 가고 싶었던 시간을 지나, 6년간의 긴 여정을 마치고 마치 다른 세계로 업그레이드라도 한듯한 중학교에 갈때까지의 14년의 시간은 그 작은 아이에게는 너무도 긴 시간이었을것입니다.
오랜 시간이 흘러 어머니를 잃고난 후의 14년의 시간은 너무도 빠르게 지나가 버립니다.
많은 남은것에 대한 회한이 얼룩져 그 시간이 이렇듯 짧게 느껴진지도 모르겠습니다.
프로이트는 애도를 부모와 같은 개인적 애정의 대상이 사라져버린 후 남은 자의 내면에서 나타나는 심리적 과정으로 설명하는데 그렇게 남겨진 불효자에게는 그저 정리하듯한 마음만으로는 설명하지 못하는 무언가가 오래도록 가슴을 파냅니다.
어머니를 잃는 경험을 떠올리며 해소되지 않은 찌꺼기 속으로 들어가 어떤 근본적인 방식으로 다시 아이가 됩니다.
안데르센의 동화 중에서도 뛰어난 작품성을 인정받은 숨은 명작으로, 아이를 데려간 ‘죽음’으로부터 아이를 되찾아오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내주며 동분서주하는 한 어머니의 절절한 모성을 담고있는 「어머니 이야기」가 유독 강하게 가슴을 울리는것은 속죄의 시간이 여전히 진행중이라는 뜻이 아닐까 생각하게 됩니다.
죽음이 언제 아이의 가냘픈 숨을 앗아갈까 공포에 떨며 침대맡에서 간절히 기도하는 어머니.
나는 이 여인을 알고 있습니다.
‘죽음’이 아이를 데려간 뒤 수많은 밤을 슬픈 기도로 지새우고, 고통의 가시를 품에 끌어안아 가슴에서 피가 흐르고, 두 눈이 빠져버릴 정도로 눈물을 흘리는 어머니.
나는 이 여인을 압니다.
나의 엄마.
자식을 위해서라면 어떤 고통도 달게 받아들이는 어머니의 사랑에 관한 「어머니 이야기」 속의 어머니는 바로 나의 엄마였습니다.
책에서는 어머니에게서 모성애의 두 가지의 상반되는 선택을 마주하게 됩니다.
“제가 우리 아가랑 계속 살 수 있겠지요?”
처음에 어머니의 단 하나의 소망은 아이를 살려서 같이 사는 것입니다.
아이를 죽음의 사자에게서 되찾기 위해 길을 떠나 온갖 고생을 이겨내는 어머니는 자기의 눈을 빼어가면서, 문자 그대로 맹목적 헌신의 모성애를 실천합니다.
“제 아이를 모든 불행에서 구해주세요, 차라리 데려가세요!”
이야기의 마지막에서 어머니의 기도는 돌변하며는 아이를 포기합니다.
자신의 죽음을 불사하면서 아이를 지키려던 어머니는 아이를 죽음의 세계로 놓아보내주는 어머니로 변화합니다.
어머니는 아이를 위해서라면 어떤 고통도-그것이 자식을 죽음으로 떠나보내는 고통이더라도-감수하려는 것입니다.
두 어려운 선택 모두 아이를 자신보다도 더 사랑하는 ‘엄마라서’ 가능한 것일것입니다.
「어머니 이야기」 는 이렇듯 “저는 엄마니까요”에서 출발하고, “저는 엄마니까요”로 마무리 지어집니다.
헤아리지 못한 남겨진 아들은 잊혀져 사그라들것 같은 통회함이 시간이 지날수록 깊고 진해집니다
올해는 갈길이 유난히 길게 느껴집니다.
심장 깊숙한 폐부를 지르는 아픔이 유난히 크게 느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