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작점의 이정 里程
A bookmark is a whisper that says, 'Come back soon.
책갈피는 ‘곧 돌아오라’는 속삭임이다.
- 서양격언
깊은 가을…
구태여 가을이 아니라도 책 읽기는 생활속에서 자리잡아야할것이지만 최근 한강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독서의 계절(?)에 집 나간 독자들을 다시 끌어들인것처럼 서양의 격언에는 bookmark가 그러한 역할을 했던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별도의 bookmark를 준비하지 않고 읽었던 자리를 표시하기위해 거추장스런 책갈피보다 훌륭한 역할을 해내기에 오랜시간동안을 명함을 한장씩 꽂아두곤 했습니다.
아, 구태여 bookmark라는 영어로 쓰는것은 표준국어 사전에 올라있는 책갈피라는 단어가 마음 한켠에서 조금은 불편하게 하기때문입니다.
우리말 ‘갈피’는 겹치거나 포갠 물건의 하나하나의 사이, 또는 그 틈을 뜻하니, ‘책갈피’는 책장과 책장의 사이를 가리켰지만 2009년 이후에야 국립국어원이 읽던 곳이나 필요한 곳을 찾기 쉽도록 책의 낱장 사이에 끼워 두는 물건을 통틀어 이르는 말을 추가 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가 알고 사용하던 bookmark의 의미로 옛날부터 써 오던 서표나 갈피표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書標 서표라는 용어를 사용했습니다.
서양에서도 1세기에 로마의 철학자 Plinius 플리니우스가 독서 장소를 표시하는 방법을 언급했는데, 이로 bookmark의 의미가 이미 고대부터 존재했다는것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유럽 수도원에서 책이 제본 사본으로 바뀌면서 수도사들은 양피지나 천 조각을 사용해 성경과 기타 종교 텍스트의 장소를 표시했습니다.
요즘 장식용으로 사용하기도 하는 쓰임새는 이미 빅토리아 시대에는 레이스, 가죽, 실크, 심지어 상아 같은 고급 소재로 책갈피를 만들기 시작하면서 작은 예술 작품으로 변모했습니다.
명언, 성경 구절, 꽃무늬 등을 수작업으로 수놓아 선물용으로도 인기가 많았습니다.
1854년 J.G. 베이커라는 사람이 탈착식 책갈피에 대한 최초의 특허를 출원하면서 책갈피의 휴대성과 소장 가치가 더욱 높아졌습니다.
인쇄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북마크 디자인도 발전하며 인쇄된 종이 책갈피가 저렴해지면서 출판사, 도서관, 서점 등에서 판촉물로 제공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책갈피에는 광고, 예술품, 영감을 주는 명언이 자주 등장했습니다.
그래, 몇해전 bookmark 전시가 있었는데 ‘give me liberty or give me death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는 Patrick Henry의 연설문이 적힌 당시의 책갈피도 전시 되었죠.
bookmark는 소설이나 영화에서도 가끔 주요한 요소로 등장하는데 히스토리컬한 배경과 풍부한 상상력으로 섬세한 글쓰기와 인물들의 감정을 다루며,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며 독자들에게 아름다운 문학적 경험을 주었던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의 걸작 소성 The Shadow of the Wind(바람의 그림)에서 책갈피는 제2차 세계대전 후 바르셀로나에서 한 소년의 삶에 깊은 영향을 미치는 신비한 책에 대한 이야기에서 상징적인 비중을 차지합니다.
주인공은 '잊혀진 책의 묘지'에서 소설을 발견하고 '입양'하는데, 이 책은 책갈피와 다른 표식들과 함께 그를 비밀과 잃어버린 사랑의 그물망으로 인도하는데 책갈피는 등장인물의 삶과 역사에 얽힌 미스터리를 풀 수 있는 열쇠입니다.
영화로도 잘 알려진 Audrey Niffenegger 오드리 니페네거의 소설 The Time Traveler's Wife 시간여행자의 아내에서 책갈피는 상징적인 역할을 하는데 시간 여행자인 주인공은 사랑하는 사람과 다시 연결하기 위해 자주 표시와 메시지를 남기는데 이는 내러티브에서 책갈피와 같은 역할을 하며 중요한 순간으로 돌아가도록 안내하고 예측할 수 없는 시간 여행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삶과 다시 연결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합니다.
해리 포터 시리즈, 해리 포터와 비밀의 방에서 마법 책에는 위험한 비밀이 담겨 있으며, 다양한 주문이 책갈피처럼 작용하여 페이지를 드러내거나 가리는 역할을 합니다.
톰 리들의 일기는 과거로 돌아가는 일종의 인터랙티브 '책갈피'라고 할 수 있는데, 글씨가 기억을 되살리는 역할을 하고 있죠.
1999에 제작되고 국내에서는 2000년에 개봉한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이 스릴러 영화, The Ninth Gate 아홉번째문에서 한 희귀 서적 상인은 신비한 책의 사본을 찾는 임무를 맡게 됩니다. 이 책에는 초자연적인 힘을 풀 수 있는 단서를 알려주는 것으로 추정되는 비밀 표시(책갈피와 같은)가 들어 있습니다. 영화는 희귀한 책과 숨겨진 상징, 어두운 비밀의 세계를 따라가며 이 표식들이 안내자 역할을 합니다.
늘 명함을 bookmark로 사용했지만 3년전부터는 늘 사용하는 책갈피가 생겼습니다.
어느 소소하고 일상적인 대화가 오간 어느 밤, 갑작스레 쥐어준 책갈피 하나가 자리를 잡았습니다.
책갈피 포장에 싯구가 눈에 들어옵니다.
가볍게 넘길 수 있는 흘리는 시 한소절에 한참을 골랐다는 정성이 크게 다가옵니다.
김소월의 첫사랑은 한국인이라면 한 번쯤은 읽어봤을 시.
아까부터 노을은 오고 있었다
내가 만약 달이 된다면 지금 그 사람의 창가에도 아마 몇줄기는 내려지겠지
사랑하기 위하여 서로를 사랑하기 위하여 숲속의 외딴집 하나 거기 초록빛 위 구구구 비둘기 산다
이제 막 장미가 시들고 다시 무슨 꽃이 피려한다
아까부터 노을은 오고 있었다
산너머 갈매하늘이 호수에 가득 담기고 아까부터 오늘은 오고 있었다 - 첫사랑, 김소월
서양 격언에 잘 닳은 책갈피는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정확히 알려준다(a well-worn bookmark knows exactly where to start)는 말이 있습니다.
대략 2백권정도와 지난 3, 4년간을 함께해온 인연의 고민이 뭍어나는 Bookmark는 내게 출발 이정표가 된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