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거스트 우라까이
딱 한 달 전, 게임계를 뒤흔드는 뉴스가 있었습니다. 바로 마이크로소프트의 액티비전 블리자드 인수죠. 액티비전 블리자드는 게임 스튜디오 액티비전, 블리자드, 그리고 킹으로 이루어져 있는 기업으로 북미와 유럽을 꽉 잡고 있는 콜 오브 듀티, 한국을 꽉 잡은 스타크래프트와 디아블로 그리고 모바일 게임의 글로벌 거성 캔디 크러쉬 사가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MS가 액티비전을 먹은 이유와 그 이후의 전략들을 좀 더 깊게 톺아보겠습니다.
오늘의 이야기
1. MS가 액티비전을 먹은 이유
2. MS는 누구보다 소비자 대면 서비스에 진심이에요
3.MS가 메타버스를 말한 이유
4. 사티아 나델라형 XBOX VR해줘
5. 기억해, 게임은 무적이고 게임 시장은 신이야!
MS가 액티비전을 먹은 이유
MS는 왜 액티비전을 인수했을까요? 뉴욕타임즈와 WSJ를 비롯해 국내외 언론사들의 분석은 갈립니다. 이럴 때 시야를 좀 넓혀보면 좀 더 뚜렷한 답이 보이기도 합니다.
MS의 액티비전 인수는 2020년 베데스다 인수의 연장선에 있습니다. 베데스다는 오픈월드형 서양 RPG 엘더스크롤과 아포칼립스를 배경으로 한 FPS RPG 폴아웃을 갖고 있는 유명 게임사입니다. 뛰어난 그래픽과 방대한 콘텐츠로 유명한 게임들이죠. 2년 전 MS는 베데스다를 75억 달러에 인수했는데요, 이를 통해 엘더스크롤, 둠, 이블위딘, 울펜슈타인, 디스아너드, 폴아웃 등을 엑스박스 게임패스에 포함할 수 있었습니다.
게임 개발과 유통은 자체적으로 키우기에 비용이 크게 듭니다. 모든 영역에서 파괴적 혁신을 일으키며 시장을 점령한 아마존마저 게임 분야에서는 아마존이라는 이름값에 비해 뚜렷한 족적을 남기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게임을 개발하고 유통하고 운영하는 데에는 각각 다른 분야의 공력이 들어갑니다. 개발을 잘해야 하고, 유통도 잘해야 하고, 운영도 잘해야 하니까요. 정말 뛰어난 그래픽과 게임성이 있더라도, 운영이 개편되면 순식간에 망하는 게 게임입니다.
MS 내부적으로 본다면, 이번 액티비전 인수는 엑스박스 퍼스트 타이틀 확보를 위한 포석이자 대규모 온라인 게임 및 모바일 게임 운영 노하우를 지닌 인력 인수입니다. 액티비전이 소유한 블리자드가 운영하고 있는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는 21세기 이후 가장 성공한 온라인 게임이자, 자체 경제 생태계가 있는 ‘원조' 메타버스입니다. 액티비전이 직접 개발 및 운영하고 있는 콜 오브 듀티도 전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FPS 게임이자, 멀티 플레이어용 온라인 게임입니다. MS는 액티비전 인수로 게임 개발부터 운영까지 한 번에 흡수한 셈이죠.
외부적으로 본다면, 소니 견제용 투구이기도 합니다. 작년 12월 ‘스파르타쿠스'라고 불리는 프로젝트명이 유출됐는데요, 이게 바로 엑스박스 게임패스에 대항하는 소니판 게임패스의 내부 코드명이라고 합니다. 기존 PSN(Playstation Network, 플레이스테이션 기반 온라인 서비스)과 PSP(Playstation PLUS, 플레이스테이션 기반 게임 유료 구독 서비스) 등을 업그레이드해서 새로운 게임 구독 서비스를 만든다는 거죠.
소니가 신규 게임 구독 서비스를 성공시키기 위해선 필연적으로 독점 타이틀이 중요합니다. 그렇다면, 자신들에게 최우선적으로 게임을 공급할 수 있는 우수한 게임 스튜디오 인수를 고민할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소니는 스파이더맨 등 퍼스트 타이틀로 크게 성공했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고려했을 겁니다. 실제로 MS가 액티비전를 인수할 때 소니는 헤일로 등을 제작한 번지를 인수했죠. 만약 액티비전을 인수하지 않았더라면, 소니의 품에 안겼을 수도 있습니다.
MS는 누구보다 다변화에 진심입니다
지난 몇 년간 MS는 서비스 포트폴리오 다변화에 진심을 보였습니다. 특히, B2B 이외에도 소비자를 직접 만나는 여러 플랫폼을 인수했습니다. 지난 2016년에는 게임 스트리밍 플랫폼 빔을 인수했고, 같은 해에 커리어 SNS인 링크드인을 합병했죠. 2020년에는 틱톡 인수에도 큰 관심을 보였습니다. 이렇듯 소비자 대면 플랫폼 인수에 적극적이었고, 해당 시장 진출에도 진심이었습니다.
MS라는 기업의 미래 성장을 위해서 엑스박스 생태계 확장에도 진심입니다. 최근 발매된 엑스박스 시리즈 엑스의 전작인 엑스박스 원은 시장에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습니다. 씨넷과 비즈니스 인사이더 등은 엑스박스 원을 실패라 묘사했죠. 이후 MS는 절치부심의 마음으로 엑스박스 시리즈 엑스와 엑스박스 게임패스를 성공시켰습니다. 엑스박스 게임패스는 벌써 2,500만 명의 가입자를 확보했고, 최저 요금제가 10달러인 점을 고려하면 한 달 매출이 최소 2억 5천만 달러입니다. 역사상 가장 성공한 게임 구독 서비스죠.
실제로 게임 구독 서비스는 많은 사업자의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애플도 애플 아케이드를 냈고, 넷플릭스도 자사 요금제에 게임을 추가했죠. 피파의 EA플레이와 아마존의 프라임 게이밍도 있습니다.
이 시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규모입니다. 넷플릭스가 한국 드라마에 수백억을 쓸 수 있는 이유는 막대한 가입자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드라마 하나에 들어가는 비용은 많지만, 이를 전체 구독자 수로 나눈다면 구독자 단위당 콘텐츠 제작 비용을 낮출 수 있죠. 결국, 더 많은 퍼스트 파티 타이틀을 확보해서 더 많은 가입자를 모아오고, 여기서 돈을 모아 더 큰 규모의 게임을 제작하는 방식입니다.
MS의 예측대로 게임도 단일 패키지 구매에서 구독 시장으로 변화하고, 엑스박스 생태계가 커진다면 필연적으로 크로스 플랫폼에 기반한 스트리밍 게이밍 시장도 열릴 수 있습니다. 거실에서 엑스박스로 게임하다가, 내 방으로 들어가 PC로 바로 게임하고, 화장실에서 핸드폰으로 게임하는 거죠. 콘솔 게이밍은 TV가 필요한 콘솔의 특성상 공간에 기반해 사용자의 시간을 점유했습니다. 하지만, 이젠 아닙니다. 공간의 한계없이 언제 어디서든 사용자를 유혹할 수 있죠.
끊김없는 경험을 위해선 클라우드 컴퓨팅 기술이 필요합니다. 거실에서 게임할 땐 스테이지 3에 있었는데, 방으로 옮겨서 할 때 스테이지 1에 있으면 안되니까요. MS는 이 점에서 강점이 있습니다. 애져라는 최고의 클라우드 서비스를 직접 운영하기 때문이죠. 이론적으로 애져에 기반해 끊김없는 엑스박스 기반 스트리밍 게이밍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 모든 것은 미지수입니다. MS에 인수된 이후에도 베데스다는 딱히 노선 변화를 보이지 않았고, 액티비전 역시 그럴듯 합니다. 갑자기 개발 중이던 액티비전의 오버워치 2가 중지되거나, 디아블로가 PS4에서 빠지지도 않을 것 같고요.
최근 구글이 윈도우에서도 구글 플레이의 게임을 즐길 수 있도록, PC버전 구글 플레이 스토어 베타 서비스를 발표했습니다. 이렇게 여러 플랫폼들이 크로스 디바이스 전략을 취하고 있습니다. 그 점에서 어쩌면 PC의 MS게임 스토어도 엑스박스와 합쳐지지 않을까 싶네요.
모바일은 잘 그려지지 않습니다. 우선, MS와 경쟁사 소니 모두 모바일 기기 및 OS 시장에서 강점이 없습니다. 더불어, 스마트폰이 발전하긴 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PC 및 콘솔기기와 차이가 어마무시하기 때문에 해당 게임을 구현하기도 어렵겠죠. 특히 MS와 소니가 인수한 회사들이 현재 모바일 시장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가챠형 비즈니스 모델에 기반한 게임을 개발하거나 운영한 경험이 적기 때문에 빠르게 이 시장에 진출할 거라고 예측하기도 어렵습니다.
MS가 메타버스를 말한 이유
그렇다면, 대체 MS는 왜 메타버스를 이야기했을까요? 리나 칸의 무서운 맴매를 피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싶습니다. 리나 칸은 최근 빅테크 규제의 실행력을 가장 선두에 내세워 논리가 어찌 됐든 뭐 하나 조져보자라는 기조를 보이고 있습니다. 어쩌면 MS의 액티비전 인수 역시 리나칸의 살풀이에 정리당할 수도 있죠.
하지만 만약 이 인수가 ‘신산업'을 위한 포석이라면 어떨까요? 그러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기존 생태계를 독식하려는 포악한 탐욕에서 미래를 도전하려는 개척정신으로 포장되죠. 만약 MS가 메타버스에 진심이었다면, 일찍이 인수한 베데스다를 통해서라도 뭐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하나 확실한 것은 메타버스는 하나의 회사가 독점할 플랫폼은 아니란 겁니다. 하나의 영화 시장을 두고 CGV, 롯데시네마가 경쟁하고 넷플릭스와 HBO MAX와 디즈니가 싸우듯 여러 메타버스 플랫폼이 등장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렇다면 MS는 가장 유리한 플랫폼에 IP를 기반으로 치고 들어갈 수도 있겠죠.
예를 들어, 페이스북 오큘러스를 활용한 스타크래프트 게임이 나온다거나 MS VR에 엘더스크롤 게임이 나온다는 상상을 할 수 있습니다. 요지는, 메타버스 플랫폼을 직접 만들진 않더라도 게임 IP를 활용해 적응할 수 있다는 거죠. 게임이야말로 가장 원조 메타버스니까요
사티아 나델라형 XBOX VR해줘
제가 한 가지 궁금한 점은 엑스박스 VR입니다. 사실 MS는 미국 국방부와 공급을 논의할 정도(현재 중단된 것으로 알려짐)로 수준 높은 AR헤드셋인 홀로렌즈를 갖고 있습니다. 물론, 군용과 게임용은 다르겠지만 충분히 도전할 역량이 있다는 거죠. 얼마 전 사업 철수에 대한 기사가 나온 것을 고려하면, 역량과 의지는 별개인가 봅니다.
PSVR은 역사적으로 가장 대중화에 성공한 VR일 겁니다. 2016년 이후로 무려 500만 대를 판매했죠. 단일 기기로 치면 페이스북의 오큘러스보다 적은 판매량이지만, 가격 차이와 VR 친숙화 정도를 고려하면 결코 적다고 판단할 수 없습니다.
실제로 제가 직접 체험해본 VR 중에 가장 쇼킹했던 경험은 PSVR입니다. PSVR로 레지던트 이블 7을 해봤는데, 문자 그대로 기절할 뻔했습니다. 만약 소니가 PSVR로 스파이더맨을 내놓는다면, 뒤도 안 돌아보고 바로 구매할 듯합니다.
엑스박스는 지난 2009년에 키넥트를 내놓았는데요, 분명히 많이 팔았지만 성공이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아직 엑스박스 VR에 대한 그림은 보이지 않는데요, 만약 홀로렌즈 기술력 + 엑스박스 퍼스트 타이틀 콘텐츠가 합쳐진 엑스박스 VR이 나온다면 새로운 충격이 아닐까 싶습니다.
기억해, 게임은 무적이고 게임 시장은 신이야!
물론, 지금까지 제가 써내려간 글들은 하나의 뇌피셜이자 상상입니다. 말씀드렸듯 베데스다 인수 후에도 이렇다 할 움직임은 보이지 않으며, 무엇보다 뭘 제대로 하려면 엑스박스 생태계가 지금보다 더 확대되기 위해서는 엑스박스의 최신작인 엑스박스 시리즈 엑스의 보급이 늘어나야 하는데, 현재 그래픽 카드 부족으로 인해 공산품 주제에 싯가로 거래되고 있기 때문이죠. 경쟁사인 소니도 신작인 PS5 대신 PS4를 내놓는 마당이니 어쩔 수 없지만, 공급사와 게이머 모두 속이 타는 상황입니다.
그동안 게임 시장은 역동적으로 변했습니다. 싱글 플레이 시장에서 PC 온라인으로, 패키지 시장에서 디지털 구매 시장으로, 콘솔과 PC 그리고 모바일 기기가 각축전을 펼치고 있죠. 이 모든 그림을 아울러서 게임 구독 시장과 스트리밍 게이밍 시장이 발전하고 있습니다. 기업 입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플랫폼과 디바이스 그리고 콘텐츠일 겁니다. 플랫폼은 크로스 플랫폼이 기본값이 될 것이며, 디바이스는 구독제와 함께 갈 것이며, 콘텐츠 스튜디오들은 더 비싼 값에 팔릴 수 있습니다.
우리 같은 게이머요? PC와 엑스박스 시리즈 엑스 그리고 플레이스테이션을 모두 구비해서 아름다운 게임 환경을 구축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 그래픽카드의 가격 인하를 기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