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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엄마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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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이 보낸 마지막 시간

"함께" 였다고 말하고 싶은 그 시간

엄마, 

심장이 멎어버린 엄마의 몸에서 주렁주렁 달려있던 기계들을 정리해 준 간호사들은

6인실이었던 중환자실에 엄마를 계속 모실 수 없어서, 복도에 있는 방으로 엄마와 아빠 그리고 나를 안내해 줬어요. 


이해하시죠? 밤 11시간 다 되어 가던 시간에 다른 사람들의 잠을 방해할 수는 없었거든요. 

동생(남동생)이 회사를 통해서 상조에 연락을 하고, 이미 가족끼리 상의했던 이대서울병원의 장례식장에 자리가 있는지 알아보고..

강남의 회사 사무실에서 야근을 하다가 연락을 받은 동생은 혼자서 참 많이 바빴을 거예요. 

누나로서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더라고요. 내 삶이 한국이랑은 너무 멀어져서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천치가 된 기분이었거든요. 


엄마를 이대서울병원의 장례식장에 모시기 위해 상조회사에서 보내준다는 사설 병원차를 기다리며, 

에어컨 소리가 유달리 크게 들렸던 그 방에서 엄마는 병원 침대 위에서, 아빠와 나는 엄마의 머리맡에 앉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우리는 마치 그곳에서 엄마가 함께 이야기를 한다는 듯, 두런두런 이야기를 했어요. 


엄마 이야기... 아빠가 말하는 엄마 이야기... 내가 말하는 엄마 이야기...

밤 12시가 넘어선 그 적막하고 고요한 요양병원의 방 한켠 안에서, 아빠와 나는 그렇게 엄마를 바라보며 엄마를 이야기했어요. 


그 시간이 내가 엄마, 아빠의 딸로서, 셋이서 함께 나눈 마지막 시간~


아빠가 기억하는 엄마를,

내가 기억하는 엄마를, 

조용히 나눴던 그 시간..


아마도 엄마가 이제는 우리 곁에 없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던, 현실로 느껴지지 않았기에 눈물조차 흘러내리지 않았던 시간, 아빠와 나는 그렇게 눈물 없이 담담히 엄마와 함께하는 그 시간을 보냈답니다. 


근데 엄마, 그날 빨리 요양병원으로 달려오지 않았던 동생 때문에, 그 자리에 없었던 동생에게 화가 났고 서운했어요. 우리 가족이 온전히 함께 모일 수 있었던 그 시간에 결국 오지 않았던 동생을 이해할 수 없었어요. 


엄마가 너무나 사랑했던 그 아들이 빨리 와서 아직 온기가 남아있던 엄마를 안아주길 바랐던 제 마음을 그 녀석은 아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나한테 이해하라고 하실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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